가족사를 통해 본 민초의 삶과 2030 청년들의 과제

세대의 기억을 잇는다는 것: 연대, 책임, 결정, 창조의 주체로 서기

by 순주씨

한때, 여성 구술사 연구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과거를 돌아보며 그 의미를 정리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앞으로만 나아가는 삶을 살며 과거로부터의 어떤 연결이 끊겨가고 있다는 미묘한 공허감과 연결에 대한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전 세대가 물려줄 수 있는 정신적인 유산을 지금의 청년들이 과연 잘 이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됐다. 그때 연구계획서를 준비하면서 윗세대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몇가지 느낀바가 있다.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버텼던 조부모 세대

나의 할머니의 삶을 생각해본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올해 100세가 되셨을 것이다. 할머니는 1925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시고, 열아홉에 중매 결혼을 하셨다. 그때는 결혼하지 않으면 일본군에게 잡혀갈 위험이 있어서 신변의 위협을 피하기위해 결혼을 하던 때였다. 당시 모든 선택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고, 결혼 또한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결혼하고 살다보니 시간과 정이 쌓여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구조였던 듯하다.


그리고 20대 중반에 한국전쟁을 겪으시면서, 피난길에 어린 아들과 딸을 잃으셨다.

난 이 사실을 어린 시절에 듣고, "할머니는 슬퍼서 어떻게 사셨을까?"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고통이었기 때문에, 어린 나는 그 사실을 전해들은 것만으로도 매우 큰 충격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인천에 정착하셔서, 딸 넷과 아들 하나를 건실하게 키워내셨다. 그 하나 남은 아들이 우리 아빠였다.

할머니는 원칙주의적이시며 성실하신 분이셨다. 다정다감한 스타일이시기보다는 다소 까다로운 여장부같은 느낌이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쉬지 않고 계속 부지런히 일을 하셨다.


할머니는 가정의 전통을 지켜내고 싶어하셨다. 조상에 대한 제사 의식이라든지, 명절 때마다 지내는 차례와 같은 의식에 정성을 다하셨다. 그에 발맞추려 엄마가 꽤 고생을 하셨지만, 그 의식과 과정에 나도 참여하며 조상이 일궈온 삶에 대한 감사함을 어렴풋이나마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할머니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이전 세대가 일궈온 삶과 노고, 그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셨을 것 같다. 또한, 할머니는 독실한 불자셨다. 나에게도 마음이 불안하면 '관세음보살'을 되뇌며 기도하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 길은 부처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러지 않고는 척박한 현실을 감내해내기가 어려우셨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전쟁과 같은 사회적인 상황속에서 개인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면, 이북에서 내려와 가족, 친척과도 끊어지고 홀홀단신으로 연고 없는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신 분도 계시고, 전쟁통에 남편 혹은 자식을 잃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러한 아픔과 역경에 꺾이지않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버텨온 우리내 조부모님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존을 넘어 성장과 자유의 서사를 쓴 부모 세대

우리 부모 세대는 전쟁을 몸소 겪어낸 조부모 세대의 자녀들이었다. 가난하고 먹을 것도 자원도 부족한 환경속에서 그래도 교육을 받으며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자란 세대. 전쟁 통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저 생존을 위해 애쓰는 자신의 부모를 보며, 교육을 받은 당신들이 나라의 성장과 발전을 이뤄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쓰셨다.


동시에, 자유로운 세상을 위해 학업과 더불어 민주화 운동에도 뛰어들어 최루탄을 맞아가며 데모를 한 세대이기도 하다. 나의 부모님도 그런 민주화의 현장에서 최루탄 가스를 맞아가며 눈물 콧물을 흘리고 데모에 나가고 공부도 하며 대학생활을 하셨던 분들이다. 만약 이때 '나 하나쯤이야 민주화 운동 참여하지 않아도 세상은 굴러가겠지'하고 다들 뒤에 숨고 참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과 같은 자유를 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이름모를 수많은 사람들, 그 틈에 우리내 부모님이 계셨다.


주 7일, 주 6일 쉴새없이 일하며 급속도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그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는 더이상 먹을 것이 부족해서 걱정할 일은 없어졌다. 우리 부모세대는 20대 중후반쯤, 가진 것이 없더라도 사랑, 낭만,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결혼하던 세대이기도 하다. 가진 것 없이도 결혼해서 삶을 개척하고 아이를 낳아 길렀다. 조부모 세대는 자식이 곧 노동력이었기에, 생산성과 생존을 위해 많은 자녀를 두었지만,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식을 노동력 및 생산성의 목적이 아닌 대가 없는 사랑의 대상으로 낳는 첫 세대이기도 했다.


우리 부모세대에게는 자식은 더이상 노동력의 증대가 아니었고, 자녀 양육의 책임과 함께 노쇠한 부모 봉양까지 떠안은 세대이기도 하다. 갖춰진 사회적 인프라 및 복지 제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개인이 떠안고 고군분투한 세대. 위로는 노쇠한 부모님을 봉양하랴, 자식들 키워내랴, 주 6일이상 일하랴 쉴 틈도 없었다. 그렇게 뼈빠지게 일하고 부모 봉양하고 자식들 독립시키고 나니,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 고생고생하고나니 듣는 소리가 이 베이비붐 세대에 들어갈 세금때문에 생산인구 청년들 등골이 뽑힌다라며 짐짝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부모세대는 정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쉬지않고 일하고 있다. 부모 봉양과 자녀 양육으로 인해 노후 준비가 온전히 되지 못한 면도 있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또 남은 삶을 자신의 부모세대보다는 보다 낫게 살아가기 위해서 쉬지 않고 활동한다.



연대와 희망, 주체성과 씩씩함의 상실로 인해 서사를 잃어가고 있는 2030 세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족함과 편안함, 편리함은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속에 희망의 싹을 틔워 생존해낸 조부모 세대, 그리고 성장과 발전과 자유로운 삶을 위해 애써온 우리 부모 세대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점점 각자도생화되고, 경쟁이 심화되는 통에 이러한 유산에 대해서 간과할 때가 많다. 나만 해도, 내가 살아오면서 진정 감사함을 느끼며 살았는가하면 그렇지 못했다. 내가 누리는 것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또 한편으로는 나의 경험에 국한된 좁은 시야로 바라보며 우리 청년세대가 겪는 고통에만 매몰되곤 했다.


청년 세대도 청년 세대만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저성장에 접어들며 극도로 경쟁이 심화된 것, 양극화 현상 그에 따른 저출생 문제, 군대 문제, 임출산 육아에 대한 문제, 정치권의 여론 몰이로 인한 남녀갈등 문제, 그리고 이전 세대와의 문화 차이로 인한 세대갈등 등이 있다. 이러한 문제 속에서 우리 세대는 가히 '절망과 우울, 그리고 속물의 세대'로 전락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우리 세대에는 자신이 삶에서 겪는 문제들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신화가 자리했고 다들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문제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많다. 사회속에 개인이 존재하고 사회적인 흐름속에 개인이 살아가기에, 개인으로서는 문제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개개인이 모여 '우리'가 되어 힘을 합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만 한다.


나를 포함한 2030 청년 세대는 주체적으로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여전히 기성세대에게 사회적인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전가하고 있는 면이 많다. 이렇게 주체성과 연대, 씩씩함을 잃어버린 데에도 개인의 안위만을 중시하는 입시 교육 등의 여러가지 연유가 존재하겠으나... 그 원인분석은 차치하고 서라도, 더이상 개개인이 각자도생하며 문제 해결은 다른 세대에게 맡겨놓는 것으로는, 우리 세대의 미래를 더 낫게 만들어나가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윗세대의 희생의 지층위에 자라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주체성과 연대의 회복

청년들이 겪는 문제는 청년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기성세대는 우리 세대로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할만큼 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감사할 줄 알아야겠다. 이제는 기성세대로부터 바통을 이어받고, 우리 청년들의 미래는 우리가 스스로 책임지고 우리의 희망의 싹은 우리가 스스로 틔워내겠다라는 결단으로, 청년 세대가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치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통합과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미래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청년들이 이루었다. 이제는 우리 세대도 연대하고 문제해결의 주체로서 서야한다. 또한, 기성세대도 진정으로 청년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한다면, 고집스럽게 결정권을 쥐고 놓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청년 세대에게 결정 권한을 넘겨주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윗세대의 긍지와 끈기를 이어받아서 우리 세대도 우리의 미래를 더 낫게 만들어갈 수 있다. 보다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의 서사는 우리가 써내려가야한다. 그러한 결단이 섰을 때에 우리가 겪는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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