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누 Mar 31. 2024

나 다시 싱글로 돌아가고 싶어

살림과 육아에서 해방되고 싶은 애엄마의 멍청한 상상

울적한 요즘. 직장인들이 늘 퇴사를 꿈꾸듯이, 아니 하다못해 이직이라도 꿈꾸듯이. 나도 지긋지긋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꿀 때가 많다.


만약 남편과 이혼한다면? 남편에게 양육권 친권 다 넘겨주고 다시 홀가분한 싱글로 돌아간다면.. 하는 상상. 일단 먹고살아야겠지. 직장 경력 5년. 공백기는 2년 정도. 다시 직장을 구한다면 공장 경리정도의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평생 그 일에 머물진 않을 것이다. 난 또 뭘 배우겠지. 아기 키운다고 포기했던 공부를 시작하고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애 딸린 이혼녀 딱지를 붙여도 생각보다 꿋꿋하게 또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더 성숙해져 있겠지.


은근히 갈증이 있었는지 마침 그런 꿈도 꿨다. 남편이 외도를 했고(깨고 나서 생각해 보니 누구신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나에게는 떠날 기회가 주어졌다. 자유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혼자 있는 시간을 이제 마음껏 가질 수 있고, 나만을 위해 미래를 계획할 수 있고, 지긋지긋한 육아도 살림도 이제 끝이다. 홀가분하게 떠나려는 그 찰나, 나는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머뭇거렸다. 서성거렸다. 마침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내 앞으로 딸아이가 다가왔고 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내 아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얼른 아이를 안고 뒤도 안 돌아보고 뛰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 졸릴 텐데, 졸릴 시간인데… 엄마랑 가자. 엄마한테 안겨서 자면서 가자… 중얼거리면서.


이별이라는 것이 힘들다. 직장은 조건만 맞으면 쉽게 버리고 새 직장에 출근할 수 있었는데, 사람 간의 인연은 그렇지가 않다. 남편과의 이별도 어려운데, 하물며 자식과의 이별이 그렇게 홀가분하게 받아들여질까.


아직도 나는 어리고 미숙한 존재인데, 엄마가 되었고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다. 내 아이와 남편의 의식주가 내 손에 달려있다. 둘째 만삭인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오늘도 나는 가족들을 위해서 하루종일 움직였다. 밑 빠지는 느낌과 골반 뒤틀림이 심해져 가는 와중에 한창 왕성한 체력의 첫째를 보면서 남편이 평일에 입고 출근할 옷을 빨았고, 배달음식 안 시켜 먹고 꼬박꼬박 집밥도 해줬다.


입맛 까다로운 남편이 내가 만든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준 것, 날이 좋아서 아이와 다 같이 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 만삭이라 부대끼는 속에 시원하고 달달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오늘의 행복이었다. 다만 나를 챙기지 못해 채워지지 않은 허탈한 마음은 철없는 글쓰기 한편으로 채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작가의 이전글 용광로에 달구어진 나의 출산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