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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기 Jun 23. 2023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에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소설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집필 후기



20대가 시작될 무렵부터 유독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억지로 어려운 말을 쓰지도 않고 문장을 꼬지도 않지만, 

특유의 감칠맛 나는 글과 조금은 몽환적이기까지 한 분위기가 특히 좋았습니다.


하루키의 글을 읽다 보면,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늘 거대한 벽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이 사람보다 글을 잘 쓸 수는 없겠구나.' 하는 벽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나를 좌절하게 하는 '절대적 절망감으로서의 벽'이 아니라,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은 벽'으로서 다가왔습니다.




하루키의 팬으로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도쿄 와세다 대학교의 '하루키 기념관 (국제도서관)'입니다.


365일 추리닝 바지에 흰 티셔츠만 입고 살다가 나름 멋을 부렸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교인 와세다 대학교 지도입니다.


하루키 기념관입니다




각 층별 지도입니다



기념관의 로비 

(실제로 하루키가 자택에서 애용하는 것과 같은 모델의 스피커로 그가 즐겨 듣는 재즈와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하루키의 작품 연대표.

이렇게나 다작을 한 작가였을 줄은...




오! 좋은 말입니다(1)


크으 좋은 말입니다(2)



무척 좋은 말입니다(3)




하루키의 실제 집필실을 재현한 공간입니다.

일부 소품은 하루키가 실제로 쓰던 것을 기증받았다고 하네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젊은 시절(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 운영했던 재즈바(피터캣)에 있었던 그 피아노



'양 사나이' 일러스트



하루키의 작업 책상


아무리 봐도 콘셉트사진 같은데...


기념관의 외부 전경입니다.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건축가 분께서 리모델링했다고 합니다.



와세다 대학교 풍경 (주변 건물)



와세다 대학교 풍경 (나무를 베어버리지 않고 설치한 담벼락)



지상철로 운영되는 와세다 역입니다










다시 일본을 방문해, 

도쿄 인근 후지산 관광과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있을 때였습니다.



문득,

'하루키는 어떤 곳에서 살까? 어떤 풍경을 매일 같이 보고 살면, 그런 글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글링으로 그의 현재 자택이 있는 동네를 찾아 방문했습니다.

오다와라 역입니다. 

도쿄나 다른 지역에서 하코네 온천마을을 방문할 때 거의 필수적으로 들리게 되는 곳입니다.

(신칸센, 신주쿠 로맘스 열차 등 여러 노선이 지나는 꽤 큰 규모의 역입니다. 주말은 관광객으로 매우 붐비죠)


참고로 오다와라 역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 장편 소설인  『기사단장 죽이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자

<에반게리온>이라거나 다른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지역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현재 거주지(2023년) 근처 오이소 역입니다. 정말 작은 시골 역 느낌이에요. 


2023년 1월 연초에 방문했는데, 날이 꽤 따뜻했습니다.

나뭇가지도 파릇파릇하게 잎이 많이 올라왔고요. 


이런 둑길을 지나면 (분명 더 넓고 제대로 된 길도 있었을 텐데...)


고급 주택들이 언덕 위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이 정자 근처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현 자택이 있습니다.

저는 마을 주민분들께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거의 모두들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나 집 사진은 생략하겠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집은 생각보다 창문이 적었고, 크지 않고 소박했습니다. 


하루키가 지금도 매일 같이 '달리기'를 하는 그 거리입니다. 



오이소역에서 하루키의 자택이 있는 언덕 쪽 말고, 

그 반대편인 해안 마을 방향으로 산책을 했습니다.


해안 마을의 전경입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오이소 도서관입니다.


그래도 세계적인 소설가가 오랫동안 살고 있는 마을의 도서관인데,

하루키와 관련된 이벤트가 열리거나 별도의 전시관 같은 게 따로 있나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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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모델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우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20대 이후로 줄곧 저에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대략 4살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크리스마스 날 (방송국에서 드라마 막내 작가를 하던) 이모의 손을 잡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비디오게임, 유튜브, 스마트폰 같은 게 없던 시절이라

텔레비전을 보거나 서점에서 책을 사거나, 친구들과 공터에 모여 공놀이를 하는 게

아이들한테 유일한 낙이었죠.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옛날 사람 같은데, 저도 나름 MZ세대입니다....)


유일한 놀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책'이 모여 있는 대형 서점에 처음 갔을 때,

아직도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책장에 꽂혀 있던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도서들, 

누군가는 앉아서, 누군가는 서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던 어른들.



저는 그날 이후로 학창 시절 내내

늘 장래희망에 '작가'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큰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21년 연말,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어차피 영업시간제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운영하던 사업체를 임시 휴업해야 했고)


이제 내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글,

'소설'을 쓰자고 다짐했습니다. 


(다들 별로 안 궁금해하시겠지만...)

강원도 원주의 제 집필실입니다. 

월세 20만 원짜리 방입니다.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 비용 포함)



짐을 풀고...



정리 끝

이 7평 남짓 작은 공간에서 2022년 1년 동안 지냈습니다.

(참고로 저는 11년 간 출간한 3권의 책을 모두 여기서 집필했습니다)


소설가를 꿈꾸며 그동안 조금씩 써왔던 글을 모아서

읽고 쓰고, 읽고 쓰고를 무한히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21년 연말에 

마인드셋, 모모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원고 작업입니다.

앉아서 읽고 쓰고


허리가 너무 아플 땐 누워서 읽고 쓰고


친구들과 한잔하러 가서도 구석에서 읽고 쓰고

(아주 유난을 떤다고 엄청 뭐라 한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정말 절박했습니다) 


잘 때도 읽고 쓰고 고치고


등산을 가서도 읽고 쓰고 고치고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인 '교정지'가 나온 후에도 교정지가 인쇄소에 갈 때까지 

한 달 내내 퇴고를 했습니다.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 문장... 


이렇게 100년을 꼬박 써도

하루키가 29살에 쓴 첫 그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넘지 못할 것만 같다는 불안감. 절박함.


인쇄소에 들어가는 날 새벽


인쇄소에 파일을 보내기 직전에 마무리...





아무튼 이런 과정 끝에 18만 자에 달하는 402페이지짜리의 소설이 완성되었습니다.



지난 10여 년 간 제가 집필한 책입니다. 

가장 쉬운(?) 에세이부터 자기 계발서 그리고 소설...


3번째 책이지만,

첫 소설이라 그런지 정말 정말 힘들었습니다.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난 느낌이랄까요. 100m 전력질주를 1년 간 지속해 온 기분이었습니다.

집필을 끝내자마자, 몸 여기저기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각 진료과 별로 병원 순례를 다녀와야 했습니다(...) 




원고를 살짝 보여드리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일본을 배경으로 완전히 다른 환경에 처해 있는 4명의 남녀 주인공 각자의 시점으로 

그들의(결국은 우리의) 결핍과 상처를 다뤘습니다.


그리고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새로운 사랑과 만남, 성장... 



막판, 원고를 탈고할 시점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문장력 보다

그의 꾸준한 에너지가 더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짓(?)을 40년 넘게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

(에세이는 제외하더라도) 지치지 않고 단편, 중편, 장편 소설을 써나갈 수 있는 것인지,

그 꾸준함 만으로도 하루키는 역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중에 한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원고를 수십, 수백 번 읽었는데도 안 보였던 오탈자나 비문이

종이 책으로 완성된 이후에야 갑자기 보이는 것도 무척 괴로운 일입니다.


프롤로그에 있는 치명적인 오타

'염두하고'.... ('염두에 두고'가 옳은 표현입니다)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지만

그래서 여전히 나는 아직 스스로를 '작가 지망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불혹이 되지 않은 나이에 어릴 때부터 꿨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갈 수 있고,

또 (비록 돈은 절대 안 되지만) 그 꿈을 위해 읽고 쓰고 달려가는 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살아있다는 체감을 그 어느 때보다 확실히 했다고 해야 할까요.


5년, 10년, 20년, 30년 뒤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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