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채널, 100만 채널 합방, 콜라보를 해봤습니다
육아휴직 일 년 만에 복귀한 후 석 달만에 처음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시청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담은 컨텐츠를 엣지있게 잘 만들고 꾸준하게 하겠다는 기본 전략 위에 다른 한 가지 전략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유명 유튜버와의 콜라보(를 통한 업혀가기)였다.
우리 채널(공원생활)을 열기 전부터 함께 했으면 하는 채널로 50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인 아리 집사 남기형씨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론 남기형씨는 몰랐겠지만)
고양이 집사 채널로 유명한 '아리랑은 고양이들 내가 주인' 채널의 크리에이터 남기형씨의 본업은 배우이다.
(이 분이시다)
과거에 남기형씨가 대학로에서 '호외'라는 연극을 할 때 플레이디비에서 인터뷰를 한 바 있는데, 그 인연(사실 딱히 인연이랄 것도 없다)을 들먹이며 우리가 채널을 만드는데 '좀 도와줍쇼' 한 거다. 남기형씨는 흔쾌히 정말 흔쾌하게 오케이 했다.
누가 봐도 밀리는 장사에선 상대를 너무 꼬시려 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 상대가 선수라면 어설프게 머리 굴리기보다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것이 승률이 높으며 결과가 좋으면 상대 덕분에 감사한 거고 결과가 안 좋으면 내 탓이니 미안하지만 상대에게 해가 된 건 아니다.
연극 '호외' 출연 당시 배우 남기형 인터뷰 - 플레이디비
http://www.playdb.co.kr/magazine/magazine_temp_view.asp?kindno=8&no=2944&NM=Y
회사 유튜브 채널의 컨텐츠 정체성은 '펫' '여행' '책'이었는데 컨텐츠 만들기는 맨땅에 헤딩이었다. 우선 팀 내에 진행을 잘하고 관종끼가 있는 직원과 8개의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펫 상담전문가인 직원이 자의반 타의반 진행을 맡아 반려동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코너인 '집사들의 집사'라는 컨텐츠를 기획했다. (나는 유튜브를 하기 전까지 관종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어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종은 내성적이야, 외향적이야 라는 성향만큼이나 성격을 정의하는 하나의 표현이고 우리 팀 모두에게 절실한 성향이기도 했다)
반려동물 유튜버 가운데 가장 잘 나가는, 구독자가 많은 아리랑 채널과 함께 할 수 있다니.. 함께 합방만 한다면 금세 영상 조회수도 몇만대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럼 그중에 일부는 우리 채널 구독자도 되겠지..
그렇게 흑심(!)을 품고 아리랑 채널의 아리랑 집사 남기형씨와 함께 합방이 결정됐다. 팀은 기획회의에 들어가 어떻게 에지 있는 컨텐츠를 만들지 머리를 모았다. 우리는 아리랑 집사 남기형씨와 함께 반려묘를 위한 수제 간식을 만들기로 컨텐츠 기획을 하고 요리하며 촬영할 수 있는 오픈 키친을 빌렸다. 모든 준비가 순조로웠다.
심지어 영상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기쁜 마음을 제목에도 숨기지 않았다.
결과는?
내 맘 같지 않았다. 정도로 표현하기엔 당시 실망감이 컸다.
조회수가 아마 한 달이 지나도 1~2천대?
아니, 50만 구독자 채널의 크리에이터 남기형씨 아닙니까.
웬만한 영상들은 100만이 육박하는 조회수를 자랑하는.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원인은 남기형씨에게 있지 않았다. (네버)
우리에게 있었다. 우리 채널이 문제였다.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에게 콩고물을 얻어먹으려고 한 자체가 문제였고, 실질적으론 우리 채널이 아직 그들과 합방을 하기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 먼저 내 채널을 성장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1부 아리랑을 위한 수제 간식 만들기
2부 수제 간식 먹은 아리랑 반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널이 생긴 지 석 달도 안되어 초대형 유튜버와 함께 할 수 있는 감사한 기회가 다시 생겼다. 틱톡에서 유명한 옐언니가 책을 냈는데 해당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연결될 수 있는 데는 우리 팀에 북디비라는 도서 전문 매거진(온라인 매체)이 있기에 가능했다. 보통은 저자 인터뷰 기사가 나왔겠지만 영상 컨텐츠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책이나 저자는 영상 컨텐츠 제작으로 연결시켰다. 감사하게도 신생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저자분들이 촬영에 응해주었다.
옐언니에게 초스피드로 틱톡을 배워보는 하우투 영상으로 만들기로 했고, 팀원 중 가장 틱톡스러운(?) 팀원이 함께 출연하기로 했다. 틱톡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5년 차 회사원이 틱톡 고수 옐언니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컨셉이었다. 영상은 꽤 재미있게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남기형씨와 합방을 할 때보다는 그간 채널이 좀 컸기 때문에 옐언니와 함께 한 영상 반응이 조금 더 높아졌으나 폭발적이진 않았다. 문제는 역시 우리 채널이었다.
당시 우리 채널의 구독자가 1만 명 내외였는데 틱톡의 주요 사용자 또는 관심을 가질 만한 연령대 혹은 관심사 타깃이 구독자 중에 없었다. 채널 구독자 층과 틱톡 사용자 간의 공통분모가 0인 상태에서 채널에 틱톡 컨텐츠가 나와버리니 틱톡계의 여신인 옐언니가 나와도 저조할 수밖에. 그래서 조회수나 초기 시청시간이 충분히 나오지 않았고 알고리즘이 돌지도 않아서 추천 영상으로 피드에 뜨는 행운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우리 같은 신생 채널이 만나기 힘든 초대형 유튜버와 함께 할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구독자 수로 따지면 아찔한 숫자인 100만도 넘어 144만 구독자를 가진 초대형 유튜버 아리 키친의 아리 님이었다. 역시 책의 도움이 컸다. 아리 키친의 아리 님이 쿠킹 책을 출간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우리 팀에 인터뷰 요청이 왔고 얼씨구나 감사합니다 하고 영상 인터뷰로 진행하게 되었다. 아리 키친의 샵이 있는 광교로 회사 차량을 빌려 들뜬 마음으로 한 시간 걸려 운전을 하고 갔다.
우리 채널의 집사들의 집사 코너 진행자가 아리 키친의 아리 님에게 쿠킹을 배워보는 방식으로 키친 인터뷰를 하는 컨셉으로 컨텐츠를 기획했다. 촬영 날 만난 100만 유튜버 아리 키친의 아리 님은 존경할만한 유튜버다.
많은 성공한 유튜버들에게 보이는 자세인데, 이들은 컨텐츠 하나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 진정성을 담는다. 컨텐츠 한 개를 기획하고 촬영하기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완벽한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아리 님은 기발하고 맛있는 완벽한 쿠킹은 기본이요, 멘트 하나도 즉흥이나 애드립보다는 철저하게 준비하여 말하는 스타일이다.
결과만 보고 그들의 명성에 업혀가려 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결국 아무리 잘 나가는 유튜버, 인플루언서와 함께 합방하더라도 우리 채널 (또는 개인)이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한다. 기본이란 채널의 영향력(구독자 또는 조회수)이 합방하는 인플로언서, 유튜버와 어깨를 견줄 만큼 성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채널의 특성이 확실하고 소구점이 분명해서 구독자가 많지는 않더라도 서로 주고받으며 시너지를 낼만한 확실한 엣지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성공적인 콜라보를 위해서는 서로가 가진 장점을 주고받아야 한다. 장점이 믹스가 되어 화학작용을 해서 부풀어 올라야 한다. 우리는 줄게 없으니 너의 명성을 얻고 가겠다는 건 애초에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신생 채널인 우리 채널과 합방(정확히는 출연)해주신 유튜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유명세에 기댄 콜라보가 아닌 장기적으로 채널 간 콜라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