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에 젖은 생계형 프로회사원러, 퇴사할 수 있겠죠?
#1.
안녕하세요~ 저는 20년 차 직장인입니다. 20대에는 망해도 젊을 때 망하자는 생각으로 창업에 도전해 디자인 회사와 홍보에이전시 두 개의 회사를 창업해서 4년간 운영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다 한 회사에 들어가서 16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16년이라는 시간만큼이나 이 회사에서 경험한 것도 많습니다. 공연유통과 공연장 일을 10년 넘게 가장 많이 했고요. 공연 매거진 편집장, 유튜브 콘텐츠 제작과 채널 운영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었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네요.
그런 저의 올해 목표는 퇴사입니다. 올 상반기는 아마도 퇴사 준비의 기간이 될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저는 어느 정도의 성장도 이룰 수 있었고 프로젝트를 통해 성취감을 얻기도 했고 좌절감이나 실망감을 겪을 때도 많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저를 이룬다고 생각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어느 순간부터 그 긴 회사에서의 시간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회사에서의 하루하루가 제 인생에서의 시간들을 모두 잠식하는, 그래서 죄책감 마저 드는 기분이었습니다. 회사 외의 시간에서 개인적인 다른 일을 찾고 싶었지만 아무런 에너지를 쥐어짤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번아웃이 온 거죠. 아주 깊은 번아웃이 왔습니다. 원인을 찾자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원인을 찾고 해결해서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쩔 때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와 책상 밑으로 숨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갑자기 좁고 어두운, 아무도 없는 공간에 들어가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회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두근 뛰다 못해 통증이 느껴지는 일이 거의 매일 아침 반복되자 저는 결심했습니다.
퇴사하기로 말이죠.
저는 20대에 창업으로 고객사 영업부터 크고 작은 자잘한 업무를 모두 혼자서 해왔고 창업전 짧지만 다양한 회사 생활에서 회사가 망하거나 월급이 밀리는 경험도 해봤기 때문에 지금 현재 오래 다닌 회사에서 고비나 어려움이 생길 때 상대적으로 견디기 쉬웠습니다. 웬만한 어려움들은 퇴사라는 고민으로 이어진 적이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누구 때문에’ 하는 사람 문제는 저한테는 없었습니다. 행운이었죠.
회사에서 두 번의 IPO를 겪었고, 한 번의 피인수합병을 겪었으며 세 번의 겸직을 한 적이 있고 한 번의 대기발령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공연장에서 일하면서 피케팅 공연들을 원 없이 보았고 배우들도 가까이서 만나고 인터뷰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 일을 부러워했습니다. 역시 행운이었죠.
그래서 월급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과 연봉을 제때 잘 못 올렸다는 현타는 한창 일하는 동안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일에 절어서 감각이 마비되었던 것 같아요. 요즘 중시하는 자기 계발이나 성장을 주는 일인가.. 하는 생각은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일 자체가 재미있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회사원치고는 꽤 행복한 사람이었네요.
즐기는 사람은 정해진 시간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돈이나 복지와 같이, 주어진 조건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이용당하기 쉽습니다. 흔히 말하는 열정페이에도 무감각해지는 거죠. (여러분은 그러지 마십시오. 돈도 중요합니다)
여하튼 좀 그런 종류의, 요즘 기준으로 따지면 좀 어리석은 사람이었네요. 후훗
갑자기 닥친 번아웃은 그래서 더더욱 깊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졌고 무엇도 하기 힘들었습니다.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하고 버티기도 했죠. 시간이 치유해 줄 거라고요. 하지만 점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일도 잘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저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나 봅니다. 일처리가 빠른 편이고 주어진 일을 하기보다는 벌리는 쪽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과 시간은 버틴다고 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생계를 고민하고 미래를 대략적으로 건설하고 싶습니다. 평소에 호갱노노에서 서울경기 부동산 실거래가를 확인하고 주식 열풍일 때는 주식투자를 소액 하기도 하고, 또 NFT가 한창 유행일 때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NFT를 발행해 오픈씨에 올린 적도 있습니다. 경험차 코인을 아주 소액 해보기도 했습니다. 서울에 아파트도 갖고 싶고 가끔씩 여행도 다니고 싶은 정도의 여유 자금도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퇴사라니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할 수 있을까요?
(2회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