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시험 제도
어라? 자꾸 기침이 나고 열이 좀 있는 것 같다. 옆에 있던 남자 친구도 같은 증상이 있었다. 결국 코로나에 걸려 버렸구나 생각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 내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가까운 동네 약국에 가서 코로나 자가 검진 키트를 구매했다. 다행히도 음성이 나왔다. 그냥 독감이었구나.
그리고 일주일을 내내 아팠다. 아마 스웨덴의 바이러스는 나의 면역체계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건강이 최고임을 확인하고 나니 어느새 시험을 고작 3일 앞두고 있었다. 내가 재학 중인 룬드대학교의 시험 수준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나는 시험 통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한국인이고, 이왕이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3일의 남은 기간 동안 그 많은 양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중압감이 컸다. 길게 아프고 나니 체력과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스웨덴의 재시험 제도였다. 스웨덴의 교육 방식은 학생들이 수업의 내용을 이해하고 과목을 통과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엄격한 시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F를 받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이 학생들은 한 달여간의 기간을 거친 후에 다시 한두 번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신기한 것은 재시험을 응시해도 A-B등급의 고득점이 가능하다. (이곳에서는 C등급이 한국의 B등급과 유사하다)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은 명절이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자기네 나라로 돌아간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후로 시험 날짜를 설정하는데, 일정(이나 마음이) 너무 바쁘면 다음에 재시험을 보라는 식이다. 지난 수업에서는 첫 시험을 신청하지 않은 절반 정도의 학생이 재시험을 치렀다.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각해보면 시험은 내가 공부한 것을 확인하는 수단인 것이지,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하는 목적은 아니다. 그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지만.
하지만 나는 이제 건강을 챙겨야 하는 삼십 대이고, 스웨덴에 거주한 6개월 동안 '스웨디시 웨이'를 체득했기 때문에 한 템포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간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며 다시 활력을 회복했다. 코로나 규제가 풀려 오프라인으로 전환된 학교로 돌아가니, 아팠던 친구들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자기도 아팠고 시험을 안 봤다며, 우리에겐 기회가 또 있으니 잘해보자고 한다. 아, 쉼표가 있는 이곳은 유럽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