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사로서의 정체성

[나는 중학교 영어 교사입니다] 1장. 나는 왜 영어 교사가 되었을까

by 선경지명

[나는 중학교 영어 교사입니다]

1장. 나는 왜 영어 교사가 되었을까

1. 어린 시절 나의 꿈

2. 중학교 영어교사가 되다

3. 첫 수업, 그리고 신참내기의 고군분투

4. 지금도 기억나는 실수

5. 영어 부전공자의 열등감 vs 노력

6. 영어 교사로서의 정체성


영어 교사로서의 정체성


나는 영어교사이다.

신규교사 시절에는 영어 교과서 내용을 학생들이 완전히 이해하고 머릿속에 넣게 하는 것이 영어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과서 내용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했고, 학생들이 배운 표현들을 익힐 수 있도록 완전히 암기하도록 했다. 외우지 못하면 방과 후에 남아서라도 내용을 다 외우고 가게 했다.

학생들은 힘들어하면서도 그렇게 영어 공부를 하니 성적이 오른다고 좋아하기도 했다. 특수반 학생도 본문 암기를 해냈다는 경험을 통해 영어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많이 올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학생이 본문 암기를 통해 여러 문장을 암송했다는 사실보다는, 이 학생이 그런 과정을 통해 영어를 좋아하게 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영어를 잘하려면 매일 꾸준히 공부하면서 영어에 최대한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는 것, 귀찮지만 외워야 한다는 것, 꾸준히 하다 보면 발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부모들도 내 지도를 신뢰했다. 내가 만든 학습지는 체계적이라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으며, 다른 학교에서도 활용될 정도였다.


두 번째 발령 받은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외국 체류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꽤 있고 영어 실력도 높은 편이라서 암기 중심에서 활용 중심으로 수업 방식을 바꾸었다. 실용적인 영어 표현을 익히도록 다양한 읽기 자료를 활용했다.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영어 표현을 잘 활용하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고, 교과서 내용 외에 다양한 읽기 자료를 제공하여 학생들이 실제적인 영어 표현에 많이 노출되도록 했다.


예전에 가르쳤던 영어 기초반 학생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을 때, 밝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인사하는 그 학생의 변화에 감동받았다. 영어를 못한다고 다그쳤던 자신을 돌아보며, 모든 학생이 영어를 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자신의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를 강조해 왔는지 회의가 들었다. 이 경험은 모든 학생들이 영어를 꼭 잘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을 조금은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후 복직한 학교에서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만나, 교과서 설명과 복습을 철저히 하며, 돌봄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때로는 수학까지 지도하며 학생들을 챙겼지만, 엄격한 교사로 비쳤다. 초임 시절에는 학생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 일부러 웃지 않고 무섭게 대했지만, 결혼 후에는 여유를 잃고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다.


영어교사는 단순히 언어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협업능력,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의사소통력 등 다양한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2014년 이후에는 영어지식보다 역량 중심 수업에 관심을 두었고, 2016년부터 PBL 수업을 적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영어 수업의 본질과 목표에 대한 고민은 계속된다.


흔히 영어 교과의 목표를 영어로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4 Skills)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영어과 교육 목표를 보면 문화 이해나 의사소통도 강조되고 있다. 중학교 영어의 목적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토대로 학습자들이 기본적인 일상 영어를 이해하고 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름으로써 외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고등학교의 선택 교육과정 이수에 필요한 기본 영어 능력을 배양시키는 데 역점”을 둔다. 또한 외국의 문화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및 글로벌 시민 의식을 함께 기르고, 우리 문화를 외국인에게 소개할 수 있는 의사소통능력 배양을 유도한다.


영어는 도구 교과이다. 어떤 원리나 이론을 깊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영어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특히 학생들에게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영어 수업의 하나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영어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고, 영어가 자기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때 비로소 공부는 살아난다. 영어를 단순히 책으로만 배우고 익히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교과목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하고 영어에 대한 성취감과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영어 교사로서의 목표 중 하나이다. 영어를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배움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진정한 영어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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