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중학교 1학년 입학 후에야 알파벳 A,B,C를 처음 접했다. 당시에는 교육과정상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게 되어 있던 시기였다. 그 때까지 사교육이라고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말 그대로 수업시간에 영어 알파벳을 처음 익혔다. 칠곡 읍내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6학년 2학기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시내로 이사를 나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말수가 적고 발표하기를 주저할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던 나는 학년이 올라가면서는 친구들을 사귀며 성격이 많이 활달해 졌었다. 매 학년 올라갈수록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생활했다. 5학년 학급 구성원 그대로 6학년으로 올라가는 전통이 있던 학교라 특히 6학년 때 같은 반 아이들과는 정이 많이 들었었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졸업하고 싶어서 이사를 간 후에도 버스로 편도 40분 거리를 통학하며 다녔다. 워낙 멀미가 심한 체질이라 아침마다 버스에서 멀미를 하면서도 6년간 다니던 학교를 끝까지 다녔다.
막상 중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는 진작 전학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배치고사를 치러 갔을 때 감독 교사가 내가 적은 초등학교 이름을 보고, 거기 어디냐고, 어디서 왔느냐고 신기해하며 물어본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뭔가 어색하고 소외된 느낌을 중학교 다니면서 한동안 느꼈던 것 같다. 전교에서 나를 아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고 소심한 성격이 다시 나를 주눅 들게 했다. 특히 영어시간에 영어 알파벳을 모르는 아이들이 나를 포함해 몇 명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적지 않은 문화충격을 받았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찾아올 때까지 동네 어귀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는데, 시내 아이들은 그 당시에도 학원에 다녔던 모양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대회에도 나가던 나는 음악 수업 시간 반주를 맡게 되었다. 무척이나 소심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떻게 그런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도 그 용기가 가상하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바이올린을 전공한 음악 선생님이었다. 음악 수업 첫 시간에 피아노 학원 다니는 사람이라고 했는지, 음악 시간에 반주할 사람이라고 했는지 아무튼 어떤 질문을 던지셨는데 내가 손을 들었다. 아마 손 든 사람이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보통 초등학교 때까지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중학교 때는 잘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인 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고 하니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면서 반주를 맡기셨다. 담임선생님 바이올린 연주에 내가 반주를 넣으며 공연했던 기억도 있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무척이나 예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과는 서먹하고 뭔가 어색하고 나만 소외되는 그런 느낌이었지만, 다행히 선생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중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첫 영어 수업이 생각난다. 선생님이 알파벳을 가르쳐주신 후에 자기 이름을 영어로 적어보게 했다. 다른 아이들은 무척이나 쉽게 자기 이름을 영어로 쓰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쓴 스펠링에 자신이 없었다. 물론 이후 수업을 잘 따라가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느꼈던 당혹스러운 감정들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학기 초마다 학생들에게 영어 로마자표기법을 가르친 후,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꼭 써보게 한다. 그것이 영어 공부하는데 꼭 필요한 기초근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영어 선생님이 영어로 판서하고,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를 말하는 것을 보고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별히 사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수업시간에 열심히 참여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 서서히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영어 시간에 징글벨이라는 캐롤을 배운 적이 있다. 영어로 노래를 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얼마나 신기하던지! 수업시간에 영어를 접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정말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고 모든 것이 흥미롭기만 했다. 영어로 문장을 쓰고 말을 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니! 또 다른 자아가 탄생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좋았다.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공부에 집중하기로 엄마와 약속한 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많이 향상되었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성적이 1학년 때부터 꾸준히 향상되는 것을 칭찬하셨다. 우수상을 여러 번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영어 수업은 중학교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영어 지문도 많이 어려워지고 독해 위주로 수업이 흘러갔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들이 주로 번호대로 아이들을 지적해서 해석을 시켰다. 내 번호가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영어를 좋아하던 나도 그 정도였는데 영어에 흥미가 없던 아이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영어 수업에 대한 기억은 선생님들이 문장을 분석하며 해석해 준 후, 나머지 지문을 우리에게 해석해보게 하고 문제를 풀게 했다. 학력고사에 맞는 수업방식이었을 것이다. 학력고사의 영어 지문은 어휘가 정말 어려웠고 문장 구조도 복잡했다. 학력고사 시험에는 문법 문제가 많이 나왔다. 지문 수준이 어려웠기 때문에 학력고사 문제 유형에 맞춰 기계적으로 문제를 많이 풀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학력고사를 준비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던 해에 갑자기 교육정책이 바뀌었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도입된 것이다. 학력고사 영어 시험 문제유형과 수능 문제유형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문법 위주의 문제에서 내용 파악 위주로 바뀌면서 문법보다는 독해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수능 영어 문제집을 거의 한 달에 한 권 정도 풀었다.
학력고사를 준비할 때도, 수능을 준비할 때도 영어 수업 진행 양상은 비슷했다. 독해집을 주로 풀고 문법사항을 익히고 단어를 노트에 쓰거나 단어장을 만드는 등 말하기 보다는 읽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소위 말하는 영어의 4가지 기능(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 중에서 읽기에 집중된 수업이었지만, 워낙 많은 양에 노출이 되다보니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3학년 때 내 영어 실력이 최상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대학교 입학 후 어학원을 다니기 위해 레벨테스트를 하였는데 상급반에 배정을 받았다. 당시 강사 선생님이 나의 영어 실력을 많이 칭찬했다. 한 가지 방식이라도 어느 수준 이상 하다 보면 그것이 다른 영역에도 자연스럽게 전이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영어 사교육을 받은 것은 중학교 때 빨간 기본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 달 정도 학원을 다닌 것과 고등학교 때 성문 기본 영어, 종합 영어 학원을 방학 때 다닌 경험뿐이다. 요즘 학생들이 학원을 다니는 양에 비하면 학원을 다녔다고 말하기도 우스운 정도이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수업 내용에 집중하고 복습을 철저하게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직접 단어를 적어가며 단어장을 만들었다. 문장도 손으로 많이 적어보면서 온 몸으로 영어 공부를 했다. 시간을 투자하면 투자한 만큼 실력 향상이 보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이후 내 영어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느낀 때가 한 번 더 있었다. 바로 영어교사 선발을 위한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때였다. 대학교 3학년 때 선배들을 따라 토익시험을 친 적이 있었다. 첫 토익시험 점수는 정말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였다. 주위의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대기업 취업과 기타 필요에 의해서 토익을 공부하니까 나도 덩달아 토익을 공부했다. 학교 안에서 하는 토익 특강을 듣기도 하고, 토익 문제집을 사서 열심히 풀기도 했다. 몇 차례 더 토익 시험을 쳤지만 성적이 그리 많이 오르지는 않았다. 토익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고 나한테는 꼭 필요한 점수도 아니라서, 한동안 토익시험 응시는 생각하지 않았다.
영어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영어 스터디를 했다. 임용 관련 전공서적을 나누어 읽고 번역을 하였다. 내용 요약을 하고 예상문제를 만들어 서로 교환해서 풀어보는 활동을 했다. 이렇게 1년 가까이 영어에 많이 노출되고 나니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 해 말에 토익시험을 쳤는데 놀랄 정도로 성적이 올랐다. 300점 가까이 토익 성적이 올랐던 것 같다. 토익시험 유형에 익숙해지고 그 유형에 맞게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어 원서를 많이 읽고 정리하고 영어 노출 양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험 성적도 올랐던 것 같다. 이 경험을 통해 영어 공부하는 법을 제대로 터득하게 된 것 같다. 학생들도 정답을 찾는 공부만 할 게 아니라, 필요한 내용을 스스로 찾아보고 정리하는 공부가 진정한 공부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나는 해외유학은커녕, 그 흔한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온 적도 없다. 하지만 영어 임용고시를 통과했다. 발령을 받은 후에 영어 교사 대상 직무연수로 1달간 미국에 다녀오고, 테드TED 초청으로 테드 컨퍼런스TED Conference에도 참가했다. 또한 번역 책을 2권이나 내기도 했다. 영어 실력만을 놓고 본다면 불가능한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심 있는 분야를 찾고 꼭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일들에 도전하고 성과를 이루었던 것 같다.
영어 공부든 어떤 공부든지 간에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고, 목표를 세우고 끝까지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영어 공부에도 왕도가 없다. 그저 최대한 많은 시간 영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흥미 있는 분야에 대해 영어로 듣고 읽고 써보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영어실력도 향상되지 않을까?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2.2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