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솔TESOL과의 만남

[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by 선경지명


2010년 2년간의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하면서 달라진 학교 시스템 적응에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된다. 학급경영이나 생활지도보다는 교과 전문가로서 특히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아무래도 영어 교과이다 보니 시대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잊히는지라 2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2010년,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테솔 연수 과정을 신청했다. 이 연수가 나에게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복직 전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영어교사 대상 테솔 연수과정이 새로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다수 영어 교사들이 기피하는 연수였다. 그 연수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음, 될 수 있으면 피해야겠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2년간의 휴직 공백은 심리적으로 나를 위축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교직을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정년 할 때까지 어쨌든 적응을 해나가야 한다. 이왕 할 거면 어차피 겪을 거라면 지금 당장 시작해보자, 복직 후 학교 적응의 두려움을 이 연수를 듣고 이겨 내보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복직 첫 해 여름방학에 180시간 테솔 연수를 신청하게 되었다.


테솔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교수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즉, 영어교사 양성 과정이다.(www.tesol.org) 대한민국에서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처음으로 테솔을 도입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교육청에서는 2008-9년쯤 교원 연수 기관(http://www.eucc.or.kr)을 통해 SIT TESOL이 처음 도입되었다. 내가 접한 것도 바로 SIT TESOL이다.


이 프로그램은 트레이너trainer 라고 불리는 원어민 교사가 진행한다. 연수 과정을 이끌어가는 원어민 트레이너들은 철저하게 학생활동 중심 수업을 보여주었으며, 연수 참가자인 나에게도 그런 수업을 요구하였다. 연수 과정 자체가 참여자들이 중심이 되어 사고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특히 교사의 성찰(Reflection)을 중요시하는 부분,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ELC(Experiential Learning Cycle) 기법을 접하고 개인적으로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한 시간의 수업이 한 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업을 잘 분석하여 다음 수업의 발전을 위한 거름으로 삼는다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트레이너들은 일종의 멘토가 되어 참가 교사들을 지도한다. 영어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기능을 잘 가르치기 위한 교수방법을 배울 뿐만 아니라 실제 수업을 위한 지도안을 작성한다. 트레이너들은 지도안 형식도 보지만 얼마나 창의적이고 적절한 활동들로 한 차시 수업을 구성하는지를 살펴보고 필요한 도움을 준다. 테솔 교육과정에서 가장 실질적인 부분은 참가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45분간 수업을 한다는 점이다. 동료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원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짠 지도안으로 수업을 한다. 이 부분이 여러 영어 교사들이 테솔 연수 과정을 꺼렸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수업을 공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45분간 수업을 공개한 후에는 협의회가 진행이 된다. 이 협의회를 피드백 타임feedback time 이라고 부른다. 테솔 연수 과정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 피드백 과정이다. ELC에 따라 피드백이 진행된다. 우선, 수업자가 수업 소감을 이야기 한다. 수업 후 느끼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주로 수업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잘 된 점 등을 이야기 한다. 다음으로 참관자들이 피드백을 시작한다. 이 때 원어민 트레이너들로부터 제대로 된 피드백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단순히 수업을 잘 한다 못 한다가 아니었다. 트레이너들은 수업을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반문할 정도로 잘 한다 못 한다의 개념이 없었다. 그냥 수업을 한 것이고 자신이 수업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배움이 일어났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수업을 관찰할 때도 교사가 얼마나 화려하게 수업을 잘 하느냐가 아니라 교사의 발문, 학생의 반응, 학생 활동 등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교사나 학생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학생들의 배움으로 이어지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보통 트레이너들은 속기사 못지않게 교사와 학생들의 발문을 낱낱이 기록한다. 그 기록을 피드백의 객관적인 근거로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처음에 그냥 수업이 잘 된 것 같다, 학생들이 수업에 잘 참여한 것 같다라고 막연하게 피드백을 제시하던 참가자들도 이후에는 객관적이고 제대로 된 피드백을 주기 위해 동료교사의 수업을 자세하게 기록하게 되었다.‘교사가 설명(instruction)을 했을 때 학생들이 활동에 바로 들어갔고 활동지에 있는 문제를 짝과 이야기를 하며 해결한 것을 관찰하였다. 교사의 발문과 과제(task)의 난이도가 적절했던 것 같다.’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장면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판단의 근거를 대는 것이다. 수업자의 경우 성찰일지(reflection paper)를 작성한다. 성찰일지에는 다음의 내용을 기록하게 되어 있다. 1. 수업을 끝낸 지금의 기분은? 2. 수업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그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 3. 그 상황을 분석한다. 4. 앞에서 분석한 상황을 일반화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교수 학습에 도움이 되는지를 적는다. 5. 액션 플랜(다음 수업에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분석적으로 한 차시 수업을 되돌아본다. 수업이 잘 된 순간뿐만이 아니라 반대로 수업이 잘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분석한다. 그냥 수업이 안 되서 망했다가 아니라, 이런 분석을 통해 다음에는 어떤 점을 보완하여 수업에 적용해야 할지를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배워가는 것이다. 피드백 타임이 좋은 것은 교사 스스로 이러한 성찰을 끌어낼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도와준다는 것이다. 트레이너가 절대로‘너는 이런 부분이 잘못됐어, 이건 고쳐야 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동료교사들도 ‘선생님,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라고 섣불리 조언하지 않는다. 다만 수업자가 ‘다음에 이런 수업을 할 때 이 부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질문을 하면 그 때는 피드백에 참가하고 있는 모두가 의견을 낼 수 있다. 참가자들이 서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수업자 스스로가 자신의 수업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이 성찰 과정은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 테솔 과정 이후에도 이런 성찰을 수업에 끊임없이 적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너무 좋아서 2011년에는 6개월 심화연수를 신청했다. 5개월은 파견 형태로 연수를 받고 한 달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생활하며 어학원 수업을 듣는 과정이다. 참가한 선생님들의 다양한 수업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고, 미국 연수를 통해 견문도 넓힐 수 있었다. 2013년 1년 과정인 교사교육자과정(TEC, Teacher Education Consultant)을 이수하면서 영어과 연수 최고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 과정 역시 도움이 많이 되었다. 특히 온라인으로 글을 써서 올리는 과제가 있었는데, 이를 통해 영어 쓰기 능력이 많이 향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졸업 워크숍(Capstone workshop)때 영어로 워크숍도 진행해 보았다. 무엇보다 나의 수업을 돌아보는 과정을 한 순간 집약적으로 배우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서 도움이 되었다. 방학 때 연수를 받고 학기 중에는 실천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방학 때 연수를 받는, 이론과 실제를 동시에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서 좋았던 것 같다.


2015년부터 수업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면서 성찰 과정을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 내가 한 수업의 흐름을 쭉 정리하다보면, 잘 된 부분은 다음에도 적용해야지 좀 아쉬운 부분은 다음번에는 보완해야지라는 성찰이 저절로 일어난다. 기록해서 좋은 점은 성찰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서 잊고 있었던 수업에 대해 찾아보며 앞으로 할 수업에 참고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며 수업을 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다.


테솔 연수에서 배운 것 중에 성찰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과 함께 지금까지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발전의 조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발전은 적절한 자신감과 적절한 난이도에서 일어난다. 자신감이 지나쳐도 완벽하다고 생각해도 더 이상 발전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에 진전이 없다. 주어진 과제가 너무 어려워도 감히 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아, 저 정도면 내가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발전이 있다. 그래서 내 경험담을 듣고 ‘아, 저 정도면 할 수 있겠네, 한 번 해 봐야겠네’라는 생각을 가지고 바로 실천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연수 때마다 또는 만나는 분들한테마다 드린다.


테솔 연수에서 배워온 다양한 활동들을 수업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잡무로 인한 수업준비 시간 부족과 학생들의 싸늘한 반응 등이 그 요인이었다. 분명 연수 때 선생님들 대상으로 혹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정말 의미 있고 잘 되던 활동들이 왜 학교로만 가지고 오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적용하면 정작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걸까?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덧 테솔에서 배운 다양한 활동들도 그냥 파일 속에 묻히고, 책꽂이에 꽂힌 채로 잊히는 신세가 되었다.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2.2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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