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공동체와의 만남

[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by 선경지명

2014년 3월, 처음으로 배움의 공동체를 접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있었던 교수방법이겠지만 내가 처음 접한 것은 그 때였다. 2년간의 육아휴직이라는 공백이 나에게는 교사로서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그 불안감은 테솔 등 각종 연수를 찾아듣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의 경우, 내가 신규 때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분이 연구회 회장을 맡고 계신 것을 알고 반가운 마음에 선뜻 신청하게 되었다. 세미나에서 영어 교과 외의 사람들과도 학생활동 중심 수업, 수업 중 교사가 아닌 학생의 배움 관찰, 교사의 수업 성찰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기뻤다. 교사의 역할이 단지 영어 교과 지식의 전달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길러내기에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건 바로 내 수업에 적용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추천받은 책도 사고 관련 원격연수도 신청했다. 테솔 연수에서의 한계를 배움의 공동체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초, 심화 연수도 이수하였다. 1학기 중간고사 이후 4월부터 바로 ‘ㄷ자’로 자리 배치를 하고 배움의 공동체식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왜 이걸 진작 몰랐을까, 이런 수업방법이 다 있었나?’라고 놀라기도 하면서 기뻤던 포인트가 몇 가지 있었다. 당시 함께 간 동료 교사에게 흥분해서 이것저것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우선 수업 관찰 방법이었다. 2010년 처음 접한 테솔 과정에서 트레이너들에게 배운 수업 관찰방법과 배움의 공동체 세미나에서 알려준 수업 관찰방법이 너무나도 비슷해서 놀라면서도 반가웠다. 그 동안 테솔 연수를 듣고 와서 그 내용이 좋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영어과 교사들만 듣는 연수였기 때문에 타 교과 교사들과 연수 내용에 대해 공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45분 수업을 다 하고 서로 피드백을 준다고 하면‘와, 정말 힘들겠다, 어떻게 그런 연수를 받았어?’라는 반응뿐이었다. 그 이상 연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었다. 피드백 과정에서 학생들과 교사의 발문과 행동을 속기사가 하듯이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수업 나눔을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할 때면 아마 선생님들은 속으로 ‘나는 저런 연수 절대 안 들어야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배움의 공동체 세미나에서 만났던 분들은 내가 테솔 과정에서 훈련을 받았듯이, 초 단위 분 단위로 교실 장면을 기록하고 학생 좌석 배치도를 보며 학생들의 말 하나하나며 행동 하나하나까지 관찰했다. 그 날 세미나 참석은 처음이었지만, 그간 테솔에서 쌓은 노하우로 협의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 이제 이런 좋은 수업 협의회 형태를 영어과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 교사들과 나눌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신이 났다.

단순히 지적을 위해 교사를 관찰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배움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그것도 철저한 수업 관찰을 통해 의견을 나눈다는 점이 와 닿았다. 수업자의 수업을 단순히 잘했다 잘못했다로 가르며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업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이고 내 수업에는 어떻게 적용하겠다는 반성적 성찰을 강조하는 부분 또한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한 시간의 수업이 한 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업을 잘 분석하여 다음 수업의 발전을 위한 거름으로 삼는다는 점은 이미 테솔 과정에서 배운 것이기도 했다. 테솔 연수 과정에서 반했던 바로 ELC(Experiential Learning Cycle,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개념)를 배움의 공동체에서 거듭 만나고 보니 앞으로 모든 교사들과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아가 내 수업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만 같은 희망을 보았다.


Hop-Step-Jump로 이어지는 수업 구조도 테솔에서 접했던 Presentation-Practice-Use와 유사해 보였다. 배움의 공동체와 테솔 모두 수업을 구조적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것이 기본이다. 교사에게 요구하는 것이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식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는 점과 교사는 기다려주고 연결 짓고 되돌리기를 잘해야 한다는 개념도 테솔에서의 CCQ(Concept Check Question, 학생들의 이해도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나 Clear Instruction(명확한 지시, 학생들이 수행해야 할 활동에 대한 지시가 명확해야 한다는 개념) 등과 통하는 부분이었다. 교사는 학생들의 배움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하고,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어려움이 있는 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한 명의 학생도 소외되지 않는 수업을 만든다는 철학도 좋았다. 실생활과 연계된 주제로 수업내용을 구성하기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관찰을 생활화하고, 이를 통해 발견한 아이디어를 수업에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한다는 부분도 와 닿았다. 배움의 공동체 참관록을 살펴보면 그 철학이 잘 묻어나 있다.


1. 학습자의 배움

▪ 학습자는 어느 지점에서 배우고 어디에서 주춤거리는가?

▪ 학습과 관련된 의미 있는 모둠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학습자의 점프가 있는 배움은 어느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 모둠 활동에서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있는 관계는 어떠한가?

▪ 협동적인 배움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2. 교사의 가르침

▪ 교사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배움에 대해 놓치지 않고 있는가?

▪ 학습자와 학습자, 교재(대상 세계), 사건과의 연결 및 되돌리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교실에서 배움과 상관없는 불필요한 언어와 행동은 없는가?

3. 자기수업 적용 및 성찰


배움의 공동체를 만날 무렵,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영상이 하나 있다. 바로 오마바 기자회견장 영상이다. G20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열렸고 오바마는 개최국인 한국 기자단을 생각해서 한국 기자단에게만 특별히 질문권을 주었다. 그런데 한국 기자들 중 단 한 명도 손을 들고 질문하지 않았다. ‘EBS 다큐프라임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룬 내용이다. 여러 기자들을 불러 놓고 이 상황을 보여주며 과연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지를 물었다. 기자들은 우리나라 토론 문화에 대해 언급했다. 취재를 위해 질문하는 것이 업인 기자들조차도 질문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괜한 질문을 하면 남들이 욕하지 않을지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혹시 나도 교실에서 학생들이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하면 친구들이 비웃겠지, 선생님한테 혼나겠지? 혹은 답변도 없이 그냥 내 질문은 무시당하고 말겠지?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반성이 들었다. 더불어 우리나라가 이런 문화를 극복하지 않으면 절대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고, 더 이상의 발전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는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지 못했지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만큼은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탐구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들로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업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 미래도 바뀌지 않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또한 유태인의 교육인 하브루타에 대해 소개하면서, ‘말하는 공부방 조용한 공부방’실험을 통해 메타인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고, 제대로 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평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찰과 일맥상통했다.


나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 또 다른 만남이 있었다. 2014년 교육과정 전문가 양성 과정에서 장곡중학교 박현숙 선생님 강의를 듣고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우리나라 각 학교급별 교육목표에 대해 정리를 해 주셨다. 그 내용을 듣고 ‘아하! 모먼트’가 있었다. 나는 늘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가르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교과별 목표를 뛰어넘는 학교급별 목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어를 왜 가르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가르치는 방법에만 몰두해왔던 것이다. 처음으로 영어교과가 하나의 단편적인 교과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저 교과서 내용만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 영어교사의 임무가 아니라 더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박현숙 선생님은 학생들을 학교 밖에서나 어른이 되어서라도 시집을 사서 읽고 감동할 줄 아는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국어수업을 하신다고 했다. 우리가 교육을 하는 것은 사회에 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민주시민양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학생, 수학을 잘하는 학생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울림이 있었다.


강의식 수업을 버리고 학생활동 중심 수업을 반드시 실천해야겠다고 다짐을 굳히고, 2014년 4월 이후 배움의 공동체 방식으로 영어수업을 진행했다. 교사가 하나하나 해석해주고 문법을 설명해주는 대신 모둠원끼리 협력하여 스스로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활동지를 구성했다. 쉬운 단계에서부터 차츰 어려운 단계로 과제를 주었다. 배움의 공동체를 적용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학생들이 왜 가르쳐 주지도 않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느냐는 저항이었다. 교사가 설명을 하지 않으니 학생들이 불안해했다. 수업활동이 활동지에 초점이 맞추어지다 보니 수업 전에 활동지 구상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정작 그런 시간을 보낸 만큼 학생들이 잘 따라와 주지 않았다. 영어표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영어로 표현하기 힘든 아이들의 경우 한글로 써도 좋다고 허용을 했다. 그러고 나니 이게 국어 수업인지 영어수업인지 학생들도 나도 혼란스러웠다. 나 또한 배움의 공동체는 이래야 한다는 틀에 갇혀서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눈앞의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배움의 공동체에서는 설명은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학생들끼리 해결하게 하고 설명은 안 해줘야지라든가 활동지를 구상할 때도 영어과에 적합한 방법을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교사들의 실천 사례를 보고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배움의 공동체에서는 학생들의 내적 동기유발을 강조하다 보니 단순 게임이나 흥미유발 활동보다는 학생들이 앉아서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이 반복되었다. 학습지에 많이 의존하고 이러한 수업 방식이 반복되다보니 중학교 학생들의 특성상 지루해하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학생활동 중심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교사가 수업을 컨트롤하고 교사의 수업구상이나 진행에 따라 수업이 좌우되었다. 말만 학생활동 중심으로 한다고 했지 여전히 내가 교실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학생들을 몰아붙이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회의감도 들었다.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2.2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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