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는 왜 담임을 하고 싶은가

[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by 선경지명

첫 근무 학교는 규모가 큰 편이라서 교사수가 많았다. 담임할 재원도 넉넉한 편이라서 신규교사들은 거의 담임을 맡지 않았다. 신규 첫 해에는 담임이 없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학생들과 힘든 첫 해를 보내면서도 담임이 너무 하고 싶었다. 어쩌면 힘들었기 때문에 담임을 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이 교무실에 와서 ‘우리 선생님 어디 계세요?’라고 하는 말이 그렇게나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 선생님’이라는 말을 너무 듣고 싶었다. 영어 선생님, 최선경 선생님이 아닌 우리 선생님! 담임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당시 담임을 맡고 계시던 분들 모두 반 관리도 잘하고 학생들이 담임교사의 말도 잘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담임이 되면 학생들이 말을 더 잘 들을 거라는 심리가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둘째 해에는 정말 학생들과 잘 지내고 싶었고 수업도 잘해보고 싶었다. 담임을 맡는다면 학급경영도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겨울방학 동안 서울에서 하는 2박 3일 학급경영 연수를 신청했다. 그 연수에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학급경영을 할지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 반 특색활동이라든지 학급행사라든지 학부모에게 보내는 통신문 등이었다. 현재까지 학급경영에 활용하고 있는 자료들과 경영 시스템 대부분은 당시 2박 3일 연수에서 얻은 노하우들이다. 2박 3일간의 연수를 마치고 굳은 결심으로 새 학기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 문구를 미리 준비했다.(당시 파일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학용품도 준비했다.

그런데 2월 말 새 학기 업무분장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렇게 담임을 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데, 새 학년에도 비담임이었던 것이다. 당시는 도서관에 사서교사가 없던 시절이라서 도서관 업무에 손이 많이 갔다. 도서관 관리부터 장서 정리, 도서 대출 업무까지 처리해야 했다. 교장 선생님이 도서관 업무를 주면서 담임에서는 제외시킨 것이었다. 신규교사들 중 유일하게 나만 비담임이 되었다. 업무분장을 본 순간 어찌나 허탈하고 서운하던지 엉엉 울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때의 서운함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서울까지 가서 2박 3일 연수도 들었다. 이미 담임이 된 마냥 학생들에게 해 줄 말과 부모님들에게 나누어줄 편지까지 다 준비해 두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런 나한테 담임을 주지 않다니! 다른 발령 동기들은 모두 담임을 맡았는데 뭔가 부족해서 담임을 못 맡은 것인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속상해하는 것을 지켜보던 한 선배 교사가 교장실에 찾아갔다고 한다. 최선경 선생님같이 젊고 열정 있는 교사에게 담임을 줘야지 왜 안 줬냐는 건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업무분장은 발표가 나버렸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담임은 없었지만 1학년 수업과 부담임을 맡게 되었다. 내가 부담임을 맡게 된 반의 담임교사는 임신 중이어서 1학기에 한 달 정도, 2학기에 3달 정도 휴직에 들어갔다. 그때마다 내가 담임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될 거면 진작 담임을 주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 중간에 담임을 이어받아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미 학기 초에 담임교사의 기본 철학대로 반 아이들의 생활패턴이 정해져 있는데, 중간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운영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도 나름 텃새라는 것이 있어서 담임이 아닌 교사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학생들 성향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려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도서관 업무는 업무대로 맡아서 처리를 해야 했다. 당시는 업체에서 도서 바코드 작업을 해주지 않았다. 도서 구입 후 바코드 작업은 학교에서 라벨을 출력하여 일일이 손으로 다 해야 했다. 점심시간에 도서 대출 업무도 해야 했다. 그렇게 학기 초에 정해진 업무에 갑자기 담임업무까지 맡다 보니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2월에는 담임을 못 맡아서 서운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렇게 중간에 다른 선생님의 반 담임, 그것도 끝까지 맡는 것도 아니고 원래 담임교사가 돌아올 반을 맡는 것은 내가 생각하던 내 반이 아니었다. 그 반 담임교사가 그리던 그림이 있을 텐데, 내가 함부로 어디까지 손을 댈 수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둘째 해를 어중간하게 보내고, 셋째 해에는 나도 드디어‘우리 선생님’이 되었다. 1학년 여학생 반 담임을 맡았다. 그렇게 하고 싶던 담임을 하게 되었고, 힘들다는 남학생 반이 아닌 여학생 반을 맡게 된 것이다. 정말 올해는 잘해봐야지 하고 부푼 가슴으로 새 학기를 맞이했다. 담임을 맡으면 학생들이 모두 나를 잘 따르고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반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학생들을 많이 혼내고 냉정하게 대했던 것 같다. 신규 첫해의 어설펐던 경험을 되돌아보며, 얕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학생들 앞에서는 잘 웃지도 않고 무섭게 보이려고만 애썼다. 잘못을 지적하고 혼내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우리 반 학생들 사이에 ‘왕따’ 문제가 발생했다. 왕따는 매년 일어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담임 경험이 처음인 나에게는 1년 내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다 끝내지 못한 숙제였다. 반 전체가 한 학생을 싫어했는데, 담임이나 교과 교사들의 눈으로 봤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학생이었다. 공부도 곧잘 하고 예의도 바른 학생이었는데, 유독 친구들은 왜 그리 그 학생을 싫어한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일 년 내내 반 아이들끼리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속 시원하게 해결이 되지 않았다.


어느덧 첫 학교 마지막 해가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 반을 맡게 되었다. 각 학년을 골고루 맡아봐야 다른 학교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선배 교사들의 조언이 있었다. 또한 신규교사 발령 동기들이 함께 3학년 드림팀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하여 발령 동기 대부분이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매우 힘들어하던 남학생 반이었지만, 막상 남학생 반을 맡고 보니 생각 외로 괜찮았다. 어떤 면에서는 여학생보다 생활지도 하기가 편한 부분도 있었다. 전 해에 담임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1학년 때 가르쳤던 학생들을 3학년이 되어 다시 만나는 것이었기에 나를 잘 따랐던 것 같다. 학생들과 내가 서로 스타일을 파악하고 친밀감이 있었던 이유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도 나로 인해 누군가가 변해 가고 내가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내 반 아이들이 있다는 소속감이 뭔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사실 학교 현장에서는 담임을 기피하는 경향이다. 일단 담임 반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탓이 담임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처음 교직을 시작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이러한 경향이 갈수록 더해진다. 담임교사가 맡은 책임은 크지만, 가진 권한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교직 사회의 담임 기피 풍조가 더 심화될 뿐이다. 학교와 교사를 믿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고 행복할 수 있는 교육적 사회적 환경과 분위기 조성이 절실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만이 제대로 ‘우리 선생님’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2.2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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