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하루 일과 중 담임반 아이들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아침자습시간이다. 초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에서는 담임이라도 본인의 교과 수업시간에만 담임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아침자습시간에 학생들 상담에서부터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활동들이 이루어진다. 나는 주로 학생들이 독서를 하면서 이 시간을 보내게 하고 우리 반 특색활동을 하기도 한다.
2년 전부터는 아침자습시간에 가치카드 필사하기 활동을 한다. 매일 아침 학생들이 가치카드 하나를 뽑아서 읽은 후 그 내용을 노트에 필사하게 한다. 그날 뽑은 가치를 어떻게 실천할지 실천다짐을 적고 감사 일기를 적게 한다. 가치카드 활동을 하다 보니 단순히 필사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의 정의를 직접 내려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활동지를 만들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도록 하였다. 그런 아이디어로‘꿈꾸는 고래카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지금은 학생들이 꿈꾸는 고래카드와 점착 메모지를 활용하여 아침마다 가치카드 필사하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매번 새 학기를 시작할 때마다 올해는 이런 것도 해보고 저런 것도 해봐야지라면서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2018년 초에도 요일별로 학급 특색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아침자습시간에 여러 가지 방송 교육이나 설문 조사 등의 이유로 30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독서 릴레이나 학급회의 등 하고 싶었던 대부분의 활동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가치카드 필사하기만은 고수하고 있다.
집중해서 하면 5-10분 만에 끝낼 일들도 아이들은 뭉그적거리면서 시간을 끈다. 한 학생이 안 하기 시작하면 다른 학생들에게도 전염되기 마련이다. 친절함과 단호함을 갖추는 것이 학급경영이나 수업진행에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의 마음은 읽어주되 원칙은 고수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건 다 양보해도 매일 아침 ‘꿈꾸는 고래카드’에서 가치를 골라 필사하게 하고, 자신의 언어로 정의하고 시각화하는 것은 한 명도 예외 없이 하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깨닫는 것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계속 좋은 말들을 접하다 보면 아이들의 정신도 행동도 선하게 바뀌지 않을까라는 믿음으로 이 활동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학생들이 가치카드를 필사하도록 하는데 열성적인 것은 그만큼 이 활동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8.4.8. 권영애 선생님의 『자존감, 효능감을 만드는 버츄프로젝트 수업』을 읽고>
올 3월은 어찌나 바쁘게 지나갔는지 책 한 권도 제대로 못 읽고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매일 10분이라도 책을 읽자 싶어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만난 책이 바로 권영애 선생님의『자존감, 효능감을 만드는 버츄프로젝트 수업』이다. 선생님의 이전 작인 『그 아이만의 단 한 사람』을 읽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많은 감동을 받았었는데, 이 책 역시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아니, 이 책이 아니었으면 아침마다 이 책을 짧게나마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우리 반 한 아이와 원수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반에 포스가 범상치 않은 한 아이가 있다. 3월 개학하자마자 하나의 소동이 있었다. 그때 속으로 든 생각이 솔직히 말해서, ‘아~ 올해는 망했구나. 이 아이를 어떻게 감당하지?’였다. 그런데 마침 그때 내가 읽었던 부분이 교사와 학생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제까지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지레 겁을 먹고 그 아이가 앞으로 계속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의 책을 읽고, ‘그래 두려워하지 말고 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아니 그 아이의 내면에 숨어 있는 미덕을 보자’라고 다짐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 아이가 그 이후로 다른 소동을 벌여도 화를 내기보다는 조근조근 말로 논리 있게 그 아이를 설득할 수 있게 되었다. 만일 내가 그 아이가 앞으로 계속 사고를 칠 것이다. 저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에너지를 계속 풍겼다면 그 아이가 진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너를 믿는다.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인정하고, 네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단호하게 지속적으로 전달하니 아이도 반항하거나 겉돌기보다는 내가 정한 우리 반 울타리 안에 녹아들게 된 것 같다.
이제 겨우 3월이 지나고 4월로 접어들었지만 그 아이 눈빛이 많이 돌아왔다고 느껴진다. 다른 교과 선생님들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로 봐서 이 아이가 앞으로 충분히 더 나아질 가능성을 보고 있다. 아버지와의 상담에서도 그렇게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한 적이 많아 믿기 힘들다고 했지만 교사인 나는 한 번 믿어보겠다고 했다.
버츄카드를 만난 것이 그래도 햇수로 3년째에 접어든다. 제대로 된 연수를 받은 적은 없었지만 매일 아침 버츄카드와 만나고, 권영애 선생님의 책을 접하면서 나도 예전처럼 욱 하는 순간을 피해 한 발 물러서 여유 있게 아이들을 대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 책은 그냥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교직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여러 번 읽고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도움을 받을, 나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켜줄 그런 책인 것 같다. 온라인상으로만 뵈었던 분이지만, 권영애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를 뵈면, 나도 그 나이쯤에는 그런 미소와 분위기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매일매일 교사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내가 되기를 다짐하고 또 기대해 본다.
블로그에 위 글을 쓴 지 반년이 지났다. 지금도 그 학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심한 욕을 한다거나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 혼이 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학생도 나아질 수 있다는 나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많이 좋아졌다. 반 아이들과의 관계나 선생님들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사회 수업시간에 만든 결과물로 대회에 나가서 학교 대표로 상을 받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선생님, 저 많이 좋아진 거예요’라며 너스레를 떨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무엇보다 어떤 실수를 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인정하고 다음에는 조심해야겠다는 자세가 눈에 보인다.
이 학생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라는 것이다. ‘교실은, 학교라는 공간은 혼자만 사용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때와 장소에 맞게 말과 행동을 가려서 해야 한다. 이미 욕하고 장난치는 것이 몸에 베여 잘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노력은 해야 되며 최소한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담임이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혼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눈치라도 보고 행동하는 것과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행동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실수를 저지를 수는 있지만, 자신이 한 행동에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다. 오늘 해야 할 책임을 미루면 내일은 두 배 세 배로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아이의 변화는 우리 반 10 계명처럼 내가 마음속에 큰 틀을 세워놓고 그 틀을 넘어가지 않도록 학생들을 지도하고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지속적으로 지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변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 스스로 이것만은 아이들이 지켜줬으면, 이것만은 아이들에게 길러줘야지 하는 큰 틀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지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예전에 더 젊은 시절에는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에게 심한 말을 하거나 화를 낸 적도 많다. 심지어 매를 댄 적도 숱하다. 그 시절에는 그 방법이 최선인 줄 알고 그렇게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타고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자물쇠는 해머로 열리지 않는다. 자물쇠에 맞는 열쇠라야 열린다. 열쇠와 자물쇠는 같은 짝이지만 목적은 다르다. 마치 바늘과 실 같은 관계다. 한데 어우러져 있어야 제구실을 할 수 있다. 열쇠는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폭력적인 해머로는 자물쇠가 순순히 열리지 않는다. 파괴만 있을 뿐이다. 온화함과 부드러움은 분노와 폭력보다 더욱 강하다.
- 김규회 외 4인(2015), 『인생 격언』, 58쪽
너는 그래서 안 돼라는 선입견과 분노로 학생들을 대했다면 볼 수 없었을 변화를 올해 경험하면서 강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강하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내가 힘이 세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고 일관성이 있고 나 스스로 다른 이에게 부끄러움이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경력이 쌓이고 여러 경험을 통해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나 스스로도 매일매일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하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올해보다 내년에 나는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만나는 아이들에겐 항상 미안하고 부족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내년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는데...’ 나 또한 이런 심정이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그리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나의 과거 이야기, 현재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통해 나의 미래 모습도 그려 볼 수 있다.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2.2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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