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일 이사를 했다. 임실 집에 이삿짐을 내려놓고 나서 전주 친정에 가 늦은 저녁을 먹고 하루 잤다. 다음날 3월 1일 토요일에 남편은 올라가고, 친정 부모님과 함께 임실로 와서 짐을 마저 정리했다.
때마침 그날 오후 마을에서 불꽃축제가 열린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임실 집에서의 본격적인 첫날을 축제로 시작하다니, 시작이 좋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 별명을 '럭키 보이', '럭키 걸'로 부른 덕분일까, 아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아이들 덕분에 나도 덩달아 행운을 누린다.
불꽃축제 장소는 초등학교 옆 공터.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서 열리는 마을 축제, 왠지 가까우면 큰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한 바퀴 둘러보고 오면 되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휘적휘적 걸어서 축제장에 갔다. 그런데 가서 보니 꽤나 본격적인 축제다.
떡볶이, 어묵, 수육, 떡, 국밥 같은 잔치 음식을 원하는 만큼 공짜로 받아다 먹을 수 있다. 술과 음료까지 무료여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마을 주민이 아니어도 참가자 전원이 꽝 없는 행운권 추첨을 할 수 있었다. 어린이도 참여가 가능해서 가족 모두 경품을 하나씩 받았다. 축제장 한켠에는 종이와 펜이 마련되어 있었다. 종이에 소원을 써서 달집 태울 때 함께 태우는 것이다. 신중하게 소원을 쓰고 종이를 접어서 나무에 매는 아이들의 태도가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물놀이. 인원이 많고 연령대가 다양했다. 노인부터 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오가며 흥겹게 연주를 하고, 아이들은 사물놀이패를 따라다니며 열심히 구경한다. 먹고 놀다 보니 해가 점점 저물고 공기가 차가워졌다. 슬슬 지겨워졌는지 아빠는 바지를 얇게 입고 와서 춥다는 핑계를 대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엄마와 함께 전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아이들은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금방 돌아갈 줄 알고 옷을 얇게 입고 나왔는데, 집에 가서 잠바로 갈아입고 다시 나오자고 사정해도 "안 춥다"며 고개를 젓는다. 다행히 이것 저것 많이 먹은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집에 가서 화장실도 가고 옷도 갈아입고 다시 오자"고 설득할 수 있었다. 안 춥다던 아이는 집에 가는 길에 솔직히 고백한다. "엄마, 사실 추웠어." 아이의 손이 차갑고 빨갛다. 귀여운 거짓말쟁이, 사물놀이가 그렇게 재밌나.
아이들이 가장 고대했던 달집 태우기는, 소방차까지 왔는데 바람이 점점 거세져서 이틀 뒤로 연기되었다. 대신 불꽃놀이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마을에서 하는 불꽃놀이 작고 귀여운 수준이려나 했는데, 또 기대 이상이었다.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의 불꽃이 몇 분 연속 계속 터졌다. 가까운 곳에서 터지는 불꽃에 눈이 부시고 귀가 먹먹했다. 불꽃놀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고, 가까우면 불꽃의 파편이 튀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무료 음식, 무료 경품, 화려한 불꽃놀이. 무슨 돈으로 이렇게 축제를 크게 하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나중에 마을 주민분께 듣기로는 행정 예산보다 후원금 덕분에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이웃한 다른 마을도 불꽃축제를 연다고 하는데 아마 '내 마을의 불꽃축제가 다른 마을에 비해 괜찮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후원의 동력 아닐까. 축제를 즐긴 임실집에서의 첫날밤, 보일러 기름이 모자라 방이 추웠는데도, 야외에서 긴 시간 놀았던 아이들은 뒤척임 없이 곤히 잠들었다.
그리고 3월 3일 대망의 첫 등교일, 연기된 달집 태우기가 예정된 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작년 농촌유학 가족 대부분이 1년 더 기간을 연장해서 지내고 있다. 나보다 1년 먼저 농촌유학을 온 선배 엄마들이 단톡방을 만들어서 신규 엄마들을 초대했다. 등교 첫날 아이들 하교 후 마을 복지회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나자고 한다. 간단한 다과회 정도를 생각하고 갔는데, 아이 두 명의 생일파티를 겸한 자리였고, 두 아이의 엄마들이 직접 준비한 음식의 가짓수가 열 가지도 넘었다. 맛있었고 양도 많았다. 이미 학교에서 서로 얼굴을 익힌 아이들은 삼삼오오 둘러 앉아 음식을 먹고, 자기들끼리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활동적인 딸은 바깥놀이 무리에 껴서 술래잡기 계단뛰기에 정신이 없고, 아들은 마음 맞는 다른 친구들과 실내에서 보드게임에 열심이다.
아이들이 각자 알아서 노니까, 엄마들은 편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선배 엄마들에게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다 함께 마당에 나가서 이틀 전에 연기된 달집 태우기를 보았다. 대나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활활 타오른다. 불꽃놀이의 불꽃 터지는 소리랑 비슷해서 또 축제 같았다. 달집 태우기도 봤으니 집에 가나 했는데, 둘째가 더 놀고 싶다고 선수를 친다. 다른 아이들과 엄마들도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8시가 넘도록 엄마들과 아이들 각자의 시간은 계속 되었다. 다같이 먹은 것을 치우고 공간을 정리하고 걸어서 집에 오니 9시였다. 이 날도 아이들은 많이 놀아 피곤한 상태로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임실에 오자마자 우리는 온 마을이 우리를 환영하고 반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자기 마을의 축제를 위한 후원과 준비, 후배 엄마들을 위해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모임을 만드는 수고와 환대, 모두 이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아직 모든 것이 낯선 우리에게는 다정함으로 다가왔고, 참 감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받은 마음을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리라' 다짐했다. 번거로움을 기피하는 게으른 자아를 이겨내고,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이 감사한 환대에 앞으로 보답하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