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이들은 농촌유학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첫째는 매일 가던 줄넘기 학원을 그만두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중뛰기(쌩쌩이)를 마스터하고 삼중뛰기에 도전하는 중이었는데, 줄넘기 학원을 그만두면 삼중뛰기를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이미 배운 이중뛰기마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했다.
둘째는 불만이 더 많았다. 하교 후에 친한 동네 언니들과 가끔 놀곤 했는데 (언니들이 학원을 다녀서 못 노는 날이 더 많았지만) 이제 언니들과 놀 수 없다며 화를 냈다. 오빠와 마찬가지로 줄넘기 학원을 그만두게 되어 속상해했고, 피아노를 더 배울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농촌유학 초등학교의 방과 후 시간표를 보여주며 "농촌유학 학교에도 음악줄넘기가 있고, 피아노도 있다"라고 달래 보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되잖아!"라는 뾰족한 대답이 돌아왔다. 여느 신도시 아이들처럼 국영수 학원을 숨 막히게 돌렸다면 아이들이 농촌유학을 두 팔 벌려 환영했을 텐데, '초등학생은 건강하고 즐겁게 크는 것이 최고'라고 풀어 길렀더니 아이들이 농촌유학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구나, 한탄이 나왔다.
나도 걱정이 없진 않았다. 신도시 과밀 학교에 다니다가 학생이 적은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학생수가 적으면 친구의 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 혹시 잘 맞지 않는 친구가 있으면 작은 학교에서 너무 괴롭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도시에서만 지낸 아이들이 시골 생활을 답답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을까, 그 불똥이 다 나에게 튈 텐데, 불만이 지속되고 누적되면 내가 감당할 수 있나 우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이들은 첫 주부터 학교가 너무 재미있고, 여기 시골집에서 아주 오래 지내고 싶다고 했다. 학교의 어떤 점이 좋은지, 오늘 학교에서 뭐 했는지 물어보면 매일 재미있게 놀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체활동을 좋아하는 둘째는 점심시간에 강당에서 뛰어놀 수 있어서 제일 좋다고 한다. 아이들이 다니던 도시 학교는 한 학년에 10반 내외인 과밀 학교였다. 아이들이 많아 한꺼번에 운동장에서 놀 수 없어서, 학년별로 순서를 정해 자기 학년 순번이 되어야 운동장에 나가서 놀 수 있었다. 운동장에 나갈 수 없는 날에 복도나 교실을 뛰어다니면 선생님께 혼난다고 했다. 그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복도나 교실을 뛰어다니면 위험할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마음껏 뛰어놀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데 농촌유학 초등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전교생이 다 같이 강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논다고 한다. 전교생이 스무 명 남짓이고 강당 크기는 도시의 초등학교와 비슷하니 전교생을 수용하고도 남는다.
동성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둘째는 같은 학년에 동성 친구가 없어서 아쉬워했지만, 곧 다른 학년의 언니, 동생을 찾아내 함께 놀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그 친구들과 강당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논다. 집에 와서도 방에 매트를 깔고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한다.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하며 벽에 다리를 힘껏 차올릴 때마다 다리가 벽에 부딪혀 벽이 쿵쿵 울린다. 아랫집 윗집이 있어 벽을 타고 소리가 울리는 아파트에서는 결코 허락하지 못했을 활동인데, 이곳 시골집에서는 제지할 이유가 없다. 동생이 물구나무 연습을 하니 오빠도 옆에서 같이 한다. 물구나무서기가 잘 되지 않아도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고, 조금 잘 되면 더 신나고, 그럴 때는 둘이 죽이 잘 맞아 하하 호호 깔깔 한참 웃으며 물구나무서기를 한참 한다. 시끄럽다 그만해라 말할 필요가 없어서, 위험하지 않은지만 지켜보며 나도 함께 웃는다. 그리고 잠자리에 눕자마자 빠르게 잠이 든다.
둘째는 맹렬한 연습 덕분에 하루 만에 머리를 바닥에 대고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학년 동생은 머리를 바닥에 대지 않고 손만 짚은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다나. 그래서 둘째의 연습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엊그제는 학교 다녀온 이후 계속해서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하다가 저녁 일곱 시에 잠이 들었다. 여기 온 뒤로 아이들은 저녁이 되면 늘 피곤하고, 매일 곤히 잠든다.
오 학년 첫째는 가장 학생이 많은 학년에 속하게 되었다. 첫째 포함 오 학년이 여섯 명이다. ADHD인 첫째는 말이 많고, 행동이 요란한데 야무지지 못하고, 마음이 여리고, 또래에 비해 어리고 천진한 면도 있어 또래와의 깊은 상호작용이 쉽지 않았다. 아이와 비슷한 친구와는 서로 자기 말만 하니 상호작용이 잘 안 되고, 아이보다 어른스러운 친구에게는 아이가 너무 어리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놀림받기 딱 좋은 스타일이라, 같은 반 친구 중에 아이와 갈등을 빚는 친구가 매년 한 명씩 있었다. 학생이 많을 때는 안 맞는 친구가 있어도 다른 친구와 놀면 되는데, 학생이 적을 때는 안 맞는 친구를 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순하고 천진한 편이어서 첫째와 결이 잘 맞는다. 첫째는 집에 오면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늘어놓고, 친구들 때문에 이곳에서 오래 있고 싶다고 한다. 그런 소감을 들으면 엄마로서 안도감이 든다.
전교생 인원이 스무 명 남짓이어서 학년과 성별로 무리를 구별 짓지 않고 다 같이 어울려 노는 것도 좋다.
동성 동급생이 없는 둘째는 쉬는 시간에 남자 친구들과 오목을 두기 시작했다. 도시 학교에서는 늘 여자 친구들과 놀았기 때문에 오목은 처음 접해보는 둘째다. 승부욕이 강한 둘째는 오목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며 집에서도 오목을 연습하고 있다. 즉, 요즘 둘째는 하교하고 나서 오목을 두고 바둑알로 알까기를 하고 그게 지루해지면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하고, 마당에 나가 줄넘기를 하다가 고양이 사료를 주고 고양이를 관찰한다. 피곤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등교길에 만난 일학년 여학생에게 이름이 뭔지 등을 물어보며 대화를 리드하다가 신발장 앞에 이르자, 그 아이 이름 자리에 있는 실내화를 꺼내주고, 아이가 실내화를 갈아 신자 아이의 운동화를 신발장에 올려놔주었다고 한다. 자기 여동생이었다면 갈아 신기 위해 벗어놓은 운동화를 저 멀리 차버렸을 아들인데, 학년과 성별의 구별 없이 다 같이 교류하는 분위기 덕분에 하급생에게 친절을 베푸는 방법을 연습하는 기회를 얻고 있다.
아이들이 내 생각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하고 즐겁게 생활하며 이곳을 좋아해 주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