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 주거지는 다양하다. 유학타운(애초부터 농촌유학 가족을 위해 만든 주택 단지), 농가주택(시골집), 펜션, 다가구주택, 임대주택 등등.
지난가을 농촌유학 사전 OT에 참석했을 때 학교에서 주거지 투어를 진행해 주셨는데, 10개가 넘는 후보 집들 중에서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골집이 첫눈에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집의 장점은 뚜렷했다.
햇빛이 잘 드는 탁 트인 넓은 마당이 있다.
서까래와 마루 등 옛집의 뼈대가 예쁘게 남아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걸어서 갈 수 있다. (스쿨버스를 탄다면, 아침마다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이들과 전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 하나로마트가 도보권이다.
탁구장, 목욕탕이 있는 복지마당 건물도 걸어서 갈 수 있다.
반면 이 집의 단점 역시 뚜렷했다.
주인이 살지 않는 오래된 낡은 집이라 리모델링이 필수였다.
리모델링 공사가 오래 걸리면 새 학기 시작 때까지 완공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마을 회관에서 임시로 기거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리모델링은 집주인이 군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것이라서 세입자인 나는 리모델링 과정에 개입하거나 의견을 낼 수 없었다. 리모델링 결과와 완성도를 예측하기 어렵고,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도 나를 망설이게 했다.
게다가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 기본 가전이 전혀 설치되지 않은 집이라 이 모든 것을 직접 구매하거나 가지고 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전라북도 교육청의 농촌유학 공고를 다시 샅샅이 훑어보며 우리 아이들의 학년과 맞는 학교의 주거지 중에서 (1) 리모델링 공사가 필요 없고 (2) 기본 가전이 제공되는 주거지 목록을 추려 면밀하게 검토했지만, 결국 내 선택은 처음 느낌 그대로 이 집이었다.
집과 학교를 고르고 나서 오랜만에 수첩을 열어 보니, 수첩에 적힌 1번 위시리스트가 "나는 마당이 있는 작고 예쁜 집에 산다"였다. 로망의 힘이 참 세다.
결국 오랜 로망에 따라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마당이 있는 작고 (낡은) 예쁜 시골집을 골랐고, 삼 주간 생활해 본 지금까지는 대만족 중이다.
우선 다행히도 리모델링이 잘 완료되었다. 겨울 동안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어 개학 직전에 이사를 앞두고 리모델링이 끝났다. 마을회관에서 임시로 기거할 필요가 없어져서 많이 안도했다.
공사도 (감독해야 할 집주인이 타 지역에 살고 있어서 마감은 살짝 대충이었지만) 내 예상보다 편리하고 말끔하게 수리되었다.
그리고 마당 있는 집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더 풍요롭다.
베란다의 간접 햇빛이 아닌 직사광선에 빨래를 널어 말릴 때 기분이 참 좋다.
공동의 정원이 아닌 우리만의 마당이므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마당에 오가는 고양이에게 사료를 줄 수 있다.
삼겹살 같은 냄새가 진한 음식은 마당에서 조리할 수 있어서 부엌이 한결 쾌적하다. (마당에서 요리할 때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은 덤)
창가에 마련한 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면 햇빛이 드는 예쁜 마당과 멀리 산이 보인다. 뷰가 좋은 카페를 따로 찾아갈 필요 없이,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내리면 우리 집이 뷰 맛집 카페다.
시간에 따라 햇빛의 다양한 색감을 시시각각 즐길 수 있다. 빛이 가장 예쁠 때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따뜻한 주황빛으로 온 세상이 붉게 물들 때다.
마당에서 아이들이 잘 논다. 호미 하나 쥐어주고 잡초를 뽑으라고 하니 땀을 뻘뻘 흘리며 잡초를 뽑다가, 이내 다른 놀이로 옮겨 가 마당에 깔린 자갈을 파내 시냇물을 만든다며 열심히 논다. 이런 날은 꿀잠을 잘 수밖에 없다.
윗집, 아랫집이 없으니 집에서 소음 신경 쓰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아빠가 선물해 준 축구공으로 복도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거나 농구하듯이 공을 튕기며 놀고, 뛰지 말라고 자제당했던 시기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인지 일부러 괜히 바닥을 쿵쿵 뛰거나 물구나무서기 연습으로 벽을 쿵쿵 울리며 집 안에서도 재미있게 논다.
자동차가 마당에 있으니, 외출할 때 시간 손실이 적다. 아파트에 살 때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에 내려가 차를 찾는 시간이 필요 없고, 외출하기로 마음 먹으면 마당에 나가자마자 바로 출발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마당에서 (소리가 나지 않고 불빛만 즐기는 형태의) 불꽃놀이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다채롭게 마당 생활을 즐기고 있다.
더 따뜻해지고 마당에 채소를 심게 되면 더 풍성한 생활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텃밭을 가꿀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평생의 밭농사로 허리가 꼬부라진 외할머니가 애달파서 평소 밭농사를 미워한다) 햇빛 잘 드는 마당이 아까워 '모종 5개만 심을까 말까, 이러다가 몽땅 심고 나중에 고생하는 거 아닐까' 혼자 저울질하고 있다. 모종 개수를 고민하는 걸 보면 5개보다는 많이 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