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의 다섯 가지 복(1) - 이웃복

by 시간부자

우리 옆집에는 86세 할머니가 혼자 사신다. 옆집과 우리 집 사이에는 담이 없다. 할머니는 우리 집 마당의 자동차를 보고 내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신다. 나는 옆집 마당의 보행보조용 의자차를 보고 할머니가 집에 계시는지 알 수 있다.


옆집 할머니는 허리가 엄청 굽으셨다. 90도보다 더 굽은 허리로 의자차를 밀고 밭에도 가고 마을회관도 다니시는 할머니를 보면, 밭농사로 허리가 심하게 굽었던 외할머니 생각이 절로 난다.


할머니께는 가까이 사는 딸이 여럿 있는 것 같다. 할머니집 마당에 차가 주차되어 있는 날은 따님이 온 날이다. 어느 날 할머니의 따님 한 분이 갓 딴 상추를 신문지에 싸서 내밀며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셨다.


"저희 옆집이 되어 주셔서 감사해요."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환해지는 따뜻한 환영 인사였다. 살면서 이런 멋진 인사를 들은 적도, 건넨 적도 없었는데, 나도 이런 아름다운 인사를 건네는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기는 마법 같은 인사였다.


할머니는 꽃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마당 텃밭에 채소만 심지 않으시고 수선화를 심으셨다. 우리 집과 할머니집 경계에도 할머니가 심은 수선화가 고운 노란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내가 심지 않은 꽃이 예상치 못하게 마당에서 절로 피어나는 것은 노력 없이 거저 얻은 귀한 선물 같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마당의 수선화가 환하게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아 기쁘다.



할머니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귀가 어둡다. 가까이에 가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을 해야 내 말을 알아들으신다. 그리고 할머니는 사투리를 쓰시는데 나는 말귀를 못 알아먹으니 우리의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다. 어느 날 오후 할머니가 나를 보시더니 "저짝에 있는 솔을 파내서 이짝으로 엥겨야 쓰겠어"라고 하셨다. "솔"이 부추인 것은 알아들었다. 가로등 밑에서 저절로 나오고 있는 부추를 어디로 어떻게 옮기라는 의미 같았는데, 몇 번을 되물어도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난감한 얼굴로 멀뚱히 서 있었다. 내가 영 말을 못 알아듣자 할머니가 호미를 가져와 굽은 허리를 더 구부리고 흙을 파내시더니 거꾸로 심어져 있는 부추를 발굴해내서 똑바로 뒤집어 다른 쪽으로 옮겨 심어주셨다. 원래 거기가 부추밭이었는데 마당 공사를 하면서 흙을 뒤집어놔 부추가 뒤집어졌으니 똑바로 세워서 다시 심으라는 의미인 것을 할머니의 작업을 보며 알았다.

가로등 아래 작은 부추밭, 뒤집혀 있던 부추를 옮겨 심어 주셨다.

어느 날은 이웃집에 마실 갔다가 돌아오니 우리 집 마루에 파김치 한 통이 살포시 놓여 있었다. 할머니가 직접 만드신 파김치였다. 요즘 파가 제철이라 다른 할머니께 파를 조금 받았는데, 요리를 못하는 나는 파김치도, 파전도 만들 줄 몰라 그냥 고기와 함께 볶아 먹고 있는 처지였다. 그래서 그냥 파보다 파김치가 더 반가웠다. 할머니의 파김치는 신선하고 개운하니 맛있었다.




또 어느 날은 흑임자 떡을 한 덩이 나눠 주셨다. 사실 우리 가족은 떡을 잘 먹지 않는데, 한 덩이 정도는 바로 먹으면 되겠다 싶어서 바로 먹어봤는데 웬걸 떡이 너무 맛있었다. 떡과 흑임자 가루가 겹겹이 층을 이룬 신기한 떡이 너무 맛있어서 어디서 사셨는지 궁금해 떡의 출처를 여쭤보았다. 할머니가 사신 것이 아니라 결혼식 축의금의 답례로 받은 것이라고 하셨다. 답례로 들어온 떡 두 덩이 중에 한 덩이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하니, 정말 콩 한쪽도 나눠먹는 이웃이 된 것 같다. 우리 아들이 "엄마, 매일 받기만 해서 어쩌죠. 우리는 뭘 드려야 하죠."라고 고민할 정도다.



일단은 마당에 나가 있을 때 할머니를 마주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가까이 가서 최대한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말이라도 몇 마디 더 건네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들이 하교할 때 할머니가 밖에 계시면, 무조건 큰 소리로 예쁘게 인사를 드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나는 자동차가 있으니, 어디 급하게 가실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시라고 얘기도 해두었다. 그 밖에 어떤 것을 더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옆집이 되어 주셔서 감사해요"라는 멋진 인사에 화답할 수 있는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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