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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Aug 12. 2022

내 사랑 강릉

2년이 채 안되게 살았지만 제2의 고향이 된 곳

얼마 전 동해경찰서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저녁 전에 업무를 마치고 네비에 돌아가는 길을 찍어보니 동해~강릉 고속도로를 거쳐 영동고속도로를 타는 길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내 사랑 강릉을 안들고 그냥 돌아갈 순 없었다. 강릉에 들러 저녁을 먹고 짧은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고 강문해변에 들렀다. 강릉은 환상적인 하늘과 구름, 멋진 노을로 화답해주었다.


강릉에서 제일 좋아하는 해변 : 강문해변


내가 강릉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2년 남짓 근무하며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짧았던 검사 생활 중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강릉에서 근무하며 살아볼 수 있었다는 것일 정도로 나는 강릉이 좋았다. (그렇지만 결국 사람 때문에 강릉에서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강릉에서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강릉에 부임하기 전부터 이미 강릉을 좋아했는데, 그곳이 나와 남편의 첫 여행지이고, 내륙 출신이어서 여름에는 항상 계곡만 갔던 내가 처음으로 바다에서 제대로 놀아본 곳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강릉에 부임할 무렵 남편은 내가 강릉을 희망 임지로 적어내는 데 반대했었는데, 그 이유는 남편이 삼척에서 군생활을 해서 동해안 일대를 아주 많이 싫어했고, 훈련지였던 대관령도 극혐했는데 서울에 직장이 있던 남편이 주말부부 생활을 하며 격주로 대관령을 넘어야 한다는 걸 너무 싫어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게 서울에서 가까운 곳(여주, 평택, 천안 등)을 희망 임지로 적어내지 않는 이유를 따졌다. 공교롭게도 당시 대검에서 '중앙 초임 10명은 서로 겹치지 않도록 희망 임지를 써라'는 지침이 내려왔었고, 서울에서 가까운 임지는 인기가 좋아 법무관 선배들과 동기 언니오빠들이 먼저 희망했기에 '쪼렙이며 나이도 어린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강릉밖에 없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핑계이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약혼자의 반대라는 약간의 장애를 뚫고 가게 된 강릉은 예상보다 더 좋았다. 지역 사람도 좋고, 자연환경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근무환경도 좋았다. 강릉에서 살고 일하면서 이런저런 좋은 곳을 알게 되었는데, 강릉에 있는 동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집에 다녀갔기에, 손님들을 내가 아는 좋은 곳들로 모셨고, 손님들 모두 만족해하며 처럼 강릉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모처럼 강릉에 다녀온 김에(사실 마지막 방문으로부터 4개월밖에 안지났다) 강릉에 살 때 손님을 모시고 자주 갔던 곳, 지금도 강릉에 놀러갈 때면 찾게 되는 좋은 곳들을 이 참에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강릉에서 걷기 좋은 길
경포호수

경포호수는 강릉에 살면서도 많이 갔고, 지금도 강릉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다. 호수 근처로 공영주차장이 많아 주차가 편리하고, 호수 한바퀴를 천천히 돌아도 1시간 정도로 딱 적당한 거리고, 평지여서 남녀노소 모두 걷기 편하고, 무엇보다 풍광이 좋다. 크고 넓은 호수의 표면은 잔잔하여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고, 호수 둘레로 큰 건물 등 가리는 것이 전혀 없어 눈맛이 시원하며,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고, 세상 멋진 소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늘이 별로 없는 구간이 일부 있어 한여름의 한낮만 피하면, 절과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좋다. 새벽에 가도 좋고, 밤에 가도 좋고, 한낮에 가도 좋다. 그래도 가장 좋을 때는 구름이 어느 정도 있는 맑은 날 해질 무렵에 가서 환상적인 노을을 감상하고, 호수를 한바퀴 도는 동안 천천히 밤이 내려앉는 것을 지켜보는 게 제일 좋은 때 같다.


올해 봄에 당일치기로 다녀온 경포호수

경포호수를 돌다가 잠깐 샛길로 빠져 가볼 만한 곳을 2군데 꼽을 수 있는데, 경포대와 허난설헌 생가터이다. 경포대는 호수 바로 옆에 있는 아주 얕은 언덕위에 있는 정자인데, 주변에 큰 건물이 없는 평지다 보니 그 얕은 언덕만 올라가도 경포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경포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정자에 들어가(누구나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널찍한 호수와 나무, 하늘을 한눈에 담고 있다보면 누구라도 갑자기 조선시대 선비가 된 기분이 되어 말도 안되는 자작시 한수를 읊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


허난설헌 생가터는 경포호수 바로 옆은 아니고, 이정표를 따라 샛길로 5분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데, 그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들이 진짜 아주 멋들어진다. 크고 울창한 소나무숲을 지나면 아담하고 정갈한 집이 나오는데, 이런 집에서 살면 작가가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멋진 집이다. 그 멋진 집 툇마루에 앉아(관람객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집 안에 있는 꽃나무들, 담장 밖으로 보이는 큰 소나무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잠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경포호수에서 허난설헌 생가터로 가는 길에 있는 참 멋진 소나무들


강문해변에서 안목해변까지의 솔밭 해안 산책로

강문해변은 경포해변 바로 아래에 있는 아담한 해변이다. 강릉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해변인데, 경포천이 바다로 합쳐지는 곳의 물색깔이 참 예쁘다. 이 강문해변의 남쪽 끝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끝)에 커피스토리라는 까페가 있는데, 언뜻 보면 그 까페에서 강문해변이 끝나는 것 같지만 까페를 지나 더 남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호젓한 산책로를 발견할 수 있다.


강릉의 캐치프라이즈는 '솔향강릉'인데,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강릉의 매력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 틀림없다. 강릉에는 소나무가 많고, 특히 해변의 소나무들이 아주 멋지다. 강문해변~안목해변까지의 이 산책로는 우거진 소나무 사이를 걸으며 진한 솔향을 맡을 수 있고,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닥은 인공적인 데크가 아니고, 흙길에 소나무 낙엽이 쌓여 있는 푹신한 길이라 걷는 맛이 좋다.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 소나무숲 산책로

걷는 내내 바다를 옆에 두 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소나무숲 산책로는 강문해변에서 시작해 송정해변을 거쳐 안목 해변까지 이어진다. 걸어서 약 1시간 거리인데, 차를 가지고 갔다면 강문에 주차를 하고 송정해변까지 갔다가 원점으로 돌아오면 1시간 정도 되고, 대중교통으로 갔다면 안목까지 쭉 걸어가서 안목해변 커피거리에서 진한 커피를 한잔 마시며 쉬면 좋다. 나는 이 산책로를 끝까지 걷고 싶어서 강릉에 갈 때는 자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선호한다. (사실은 식사 때 반주를 즐기려는 목적이 아주 조금 더 크다)


이번에 강릉에 갔을 때는 돌아갈 시간 때문에 저녁 이후 매우 짧은 산책만이 가능했는데, 경포호수와 해안산책로 중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바다도 즐기고 싶어 해안산책로를 택했다. 그리고 경포호수를 걷지 못한 것이 영 아쉬워서 네비가 알려주는 길을 외면하고 경포호수 주변 도로를 한바퀴 빙 둘러서 돌아본 다음 고속도로로 향했다. 침 멋진 노을이 호수표면까지 물든 경포호수는 참 아름다웠고, 아쉬움을 뒤로 하며 '조만간 다시 강릉에 방문하여 평소처럼 여유 있게 경포호수와 해변산책로 모두 즐겨야겠다' 다짐했다.  으로 돌아오는 3시간 동안 강릉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려보며, 시간을 내서 '후 반차로 충분한 당일치기 강릉 여행기'도 정리해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에 쓸 강릉 관련 글은 강릉 가는 ktx 안에서 쓰면 좋겠다. 이글에는 과연 강릉이라는 단어가 몇번이나 등장하려나.. 어쨌든 결론은 강릉이 너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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