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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Mar 27. 2024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호사

세상의 값진 것은 모두 공짜라는 진부한 말이 있다.

사랑, 인간관계, 개인의 성장, 식스팩 등을 이루는 것은 돈 없이도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말에는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많든 적든 돈을 지불해야만 누릴 수 있는 호사도 있다.

여행, 맛있는 음식, 예쁜 옷, 재밌는 영화 등이 그렇다.

 

그리고 그 중에서 '고작 요 정도의 돈으로 이런 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은 황송한 기분이 절로 드는 호사가 있는데, 내게는 대중 목욕탕이 그렇다.


넓고 따뜻하고 습한 목욕탕 안에 들어가 엄청나게 큰 온탕에 천천히 몸을 담그고 다리를 쭉 펴고 욕조 벽에 기대 앉아 따뜻하고 찰랑거리는 물에 편안한 기분을 누릴 때면, 조선시대 왕족도 이런 목욕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내가 사용한 바가지와 대야를 씻어놓는 것 말고는 넓은 목욕탕과 욕조를 청소하고 관리하는 수고를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좋다. 나는 목욕을 즐긴 후 바가지와 대야만 씻어놓고 홀가분하게 목욕탕을 떠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이 단돈 만원이라니,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목욕탕을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2만 3천원을 내면(세신비는 동네마다 다르다. 엄마가 사는 전주는 무려 3만원이다), 호사 중의 호사인 세신 서비스(일명 때밀이)를 이용할 수 있다. 처음 세신을 받았을 때는 온몸의 때를 구석구석 열심히 밀어주시는 세신사 아주머니의 세심한 손길에 '내가 돈을 냈다고 이런 서비스를 받아도 되나' 싶은 황송함과 왠지 모를 송구함에 몸둘 바를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런 마음은 변함 없는데, 그래도 황송하고 송구하여 세신을 아예 이용하지 않는 것보다는 정해진 요금을 치르고 세신을 받는 것이 세신사 아주머니께 도움이 되는 행동이겠거니 생각하며 송구함을 무릅쓰고 가끔은 세신을 이용하고 있다.


이렇듯 목욕탕을 좋아하는 내게는 목욕탕과 관련한 특별한 기억이 몇 개 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 중에는 탕 속에 배까지 들어가면 안 된다고 들었다. 그래서 강릉에 있는 리조트로 태교 여행을 가서 아주 쾌적하고 좋은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탕 속에 들어가 앉지 못하고, 다리까지만 잠깐 담근 후 샤워만 하고 나온 안타까운 날이 있었다. 아기만 낳으면 바로 목욕탕에 가야지! 라고 다짐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을 하는 바람에 수술 부위가 완전히 아물 때까지 또 목욕탕 이용이 금지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목욕을 할 수 있게 된 날, 아기였던 첫째가 낮잠에 든 사이에,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나와 목욕탕에 갔다. 출산 이후 하루종일 아기하고 붙어 있다가 처음으로 혼자 하는 외출이었다. 그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래 기다렸던 목욕을 하는 기분은 정말 황홀하게 행복했다. 마침 날씨도 추워지고 있는 때였다. 홀가분하게 혼자 오랜만에 목욕탕에 들어가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던 그 순간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직장인 2년차였던 이십대 후반, 초과 근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 새도 없이 매일 밤까지 야근과 회식을 반복하던 시기였다. 유유상종, 끼리끼리라고 나와 똑같이 소처럼 일하며 부림을 당하던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이십대의 체력으로도 버티기 힘든 격무였고, 쌓인 피로 때문에 토요일은 늦잠과 무기력으로 녹아 없어지던 때였다. 그리고 또 일요일에 일을 하러 나가곤 했으니, 사는 게 고달프고 슬펐다.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토요일이 너무 아쉬워서, "주말 하루라도 쉬는 것처럼 제대로 쉬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 우리는 아침에 만나 북한산 둘레길을 두 시간 남짓 걷고, 걸음이 끝나는 곳에서 마음에 드는 식당에 들어가 반주와 함께 점심을 먹고(주로 해장국, 도토리묵, 코다리찜 같은 메뉴에 막걸리나 맥주를 곁들였다), 식당 근처 그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에 집에서 TV나 보며 빈둥거리는 일명 '부장님 코스'의 토요일이었다. 당시 내가 모시던 부장님의 휴일을 흉내낸 것이어서 '부장님 코스'라고 지은 것인데, 지금에 와서 보니 '휴일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해도 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황제 코스'였다. 그렇게 북한산 둘레길을 이어 걷던 어느 날, 그 날도 점심을 먹으며 반주를 곁들였다. 나도 친구도 술을 잘하지 못해서(유유상종, 끼리끼리) 맥주 한 병을 둘이 나눠먹으면 딱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모처럼 둘 다 세신을 하기로 하고, 대기판에 락커 번호를 적고 순서를 기다렸다. 반주로 인한 취기에 따뜻함이 더해지자 노곤해진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목욕탕 수면실에서 잠시 누워있기로 했다. 분명히 잠시 누워만 있으려고 했는데, 누적된 야근의 피로에 트레킹으로 인한 피로에 취기까지 더해져 둘 다 아주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눈을 붙였을까, 저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애타는 고함(우리 둘의 락커 번호를 부르는 소리였다)에 번쩍 잠이 깼고, 우리를 찾느라 고생하신 세신사 아주머니께 무척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몸을 맡긴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와 이 날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어쩐지 아주 아련한 기분이 든다.


처음으로 제주 당일치기 걷기여행을 간 날. '타임푸어'라는 책을 읽고, 이상적인 노동자와 이상적인 엄마가 되고 싶어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일과 가정 모두 충분하지 못하다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스스로를 자각했다. 일과 가정만으로도 바빠 여가를 생각할 수도 없던 시기였다. '타임푸어' 책을 읽고, 처음으로 나만을 위한 휴가를 하루 내기로 했다. 친구들 중에서 가장 활동적인 친구를 꼬셔서, 늘 가보고 싶었던 제주도 올레길 1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이틀 이상 휴가를 낼 수가 없는 처지여서, 아침 비행기로 가서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아침부터 날이 많이 흐렸는데, 알오름 부근에서부터는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 그래도 여름이라 춥지 않았기 때문에 비를 맞으며 계속 걷기로 했다. 걷는 도중에 만난 식당에서 고등어구이 점심을 먹으며 반주로 막걸리를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쯤 되면, 반주를 마시기 위해 걷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고 시간도 촉박해져서 1코스를 다 완주하지는 못했고, 성산 부근에서 걷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비에 젖은 몸을 씻을 겸 그 동네에 있는 아주 작은 목욕탕을 찾아 들어갔다. 홀딱 젖은 옷을 벗고, 작은 목욕탕에 들어가 아주 작은 온탕에 발을 담궜는데, 온탕인데도 놀랄만큼 물이 뜨거웠다. 할머니들이 찾으시는 목욕탕이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온탕도 이렇게 뜨거운데, 열탕은 손을 넣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하루종일 올레길을 걷는 내내 비를 맞아 무겁고 축축했던 발을 뜨끈한 물에 담그니 발끝이 찌릿찌릿했다. 다리의 피로가 뜨거운 물에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함께 걸었던 친구와 온탕에 다리를 담근 채로 (너무 뜨거워서 몸 전체를 담글 수는 없었다) "우와 너무 좋다!!"고 호들갑을 떨며 마주 보고 웃었던 기억은 언제 떠올려도 기분 좋아지는 소중한 추억이다.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알오름

그 밖에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던 일본의 두번째 숙소에 있던 아담하고 정갈했던 공용 목욕탕, 한라산 어리목 영실 산행 후 바다가 보이던 목욕탕에서 노천 목욕을 했던 것, 부산에 남편과 둘이 놀러갔다가 걷기 여행 후 센텀에 있는 노천 족욕탕에서 찬 바람을 쐬며 족욕을 했던 기억, 부산 파라다이스 야외 사우나 안에 들어가 넓은 창문으로 부산스럽게 오가던 온천객들을 평온하게 바라보던 기억 등 목욕탕과 관련된 좋은 기억이 아주 다채롭게 많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목욕탕을 좋아하는데,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기'라는 목표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정신을 차려보면 서너달이 훌쩍 지나 있기 일쑤고, 어떨 때는 시간을 낼 수 없어 반년 가까이 목욕탕에 가지 못한 때도 있다. 그리고 모처럼 시간을 내서 목욕탕에 가더라도, 혹시 중요한 연락을 놓칠까 걱정되어 탕에 들어가기 전에 휴대폰을 확인하고, 탕에서 나오자마자 또 휴대폰을 확인한다. 두시간 남짓 걸리는 목욕에 걱정이나 불안을 접어두고 온전히 목욕에만 집중하는 것이 참 어렵다.

좋아하는 활동에 시간을 할애하고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시간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목욕탕이 없다. 버스로 20분 정도 가야 하는 옆동네의 목욕탕은 코로나와 빈대 사태로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사람 자체가 예전보다 줄어든 것인지, 지금도 한창 때에 비해서는 손님이 적다.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좋아하는 나인데도, 목욕탕을 이용할 때마다 한적함에 기분이 좋기 보다는 '이러다 목욕탕이 문을 닫을까봐' 걱정이 된다.

(내 기준)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인 목욕탕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동네 목욕탕이 계속 유지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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