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부자 Apr 02. 2024

매일 물건을 비우며 깨달은 것들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보지 않았다.

요즘 매일 물건 1개씩 비우고, 인스타그램에 인증 기록을 남기고 있다. 나중에 팔로워가 늘어나면 물건 비움 라인 모임 운영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작한 일이다. 팔로워가 늘지 않고 있어서 나중에 모임 운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우는 과정을 통해 내가 얻는 것이 많아서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2017년에 처음 미니멀 라이프를 접했고, 시중에 나온 관련 책은 거의 다 읽어 봤을 정도로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벌써 7년이나 미니멀 라이프를 마음에 품고 지냈고, 다른 가족들에 비해 소유물이 적은 편이라서, 100일 비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매일 1개씩 비울 내 물건이 남아 있을까' 싶었는데, 아주 큰 착각이었다. 나름대로 선별해서 남겨둔 물건들도 <필요>와 <욕구 : 원하는가>의 기준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니, 남겨둘 이유가 없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그동안 비움을 망설였던 물건 유형 정리해 보니, 사용하지 않지만 아까워서 비우지 않던 유형이 가장 많았다. 아까우면 사용해야 하는데, 이제까지 보관만 하고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앞으로도 손이 가지 않을 것이 경험상 확실하기에 당근을 통해 팔거나 나눔 했다.


두 번째 유형은 귀찮아서 비움을 미루던 물건이다. 세제를 다 썼는데, 빈 통을 씻어내고 라벨을 떼고 말리는 게 귀찮아서(!) 통을 처리하지 않고 쌓아두는 게으른 사람이 바로 나였다. 딸이 새 이불을 갖게 되어 예전에 쓰던 캐릭터 이불을 필요 없다며 내놓았는데, 버리기에는 너무 멀쩡한 이불을 동물단체에 기부할지, 그냥 버릴지 고민하면서(결정하기 귀찮아서!) 베란다에 두 달째 방치한 나의 게으름과 마주했다. 비움 인증 덕분에, 이 이불은 당근마켓을 통해 바로 나눔으로 처리되었다.


세 번째 비움 유형은, 어버린 물건들이다. 책상 위에 모아둔 서류 더미처럼 까맣게 잊어버린 물건도 있었고, 냉동실 구석에 있던 냉동떡이나 수납장 제일 아래에 있던 핸드 블렌더처럼 반쯤 잊힌 채 방치되던 것들도 있었다.


레고 마니아 남편이 갖고 싶은 레고를 샀는데, 이미 집에 같은 레고가 있었다. 집에 이미 같은 레고가 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고 또 살 수가 있나 이해가 참 안 갔는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온갖 잡동사니로 꽉 찬 서랍에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 기억하기 어려운 것처럼. 거실과 방 곳곳에 아이 장난감 가득 들어차 있으면 막상 가지고 놀 장난감을 찾아내기 어려운 것처럼. 옷장에 빈틈없이 옷이 들어차 있으면 무엇을 꺼내 입어야 할지 몰라서 입는 것만 계속 입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보다 쉽게 잊어버린다. 물건도 그렇고, 돈이나 관계, 건강, 편안함그렇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고 누리고 있는지 쉽게 잊어버린다.


특히 물건은 눈에 보이지 않고 구석구석 숨어 있으면, 그 존재가 쉽게 지워지고, 없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애써 뒤적거리지 않아도 한눈에 보이는 간결한 상태여야,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물건 비움의 기준 <필요>와 <욕구 : 원하는가>이다. 원하지 않는 물건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하나씩 내보내다 보니, 내 곁에 있는 수많은 물건 중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 거의 없고, '이거 없으면 안 된다 싶은 꼭 필요한 물건'도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내가 선택해서 들인 물건들인데(선물로 받아 공짜인 물건이라도 그걸 집에 두기로 결정한 것은 나의 선택이니), 구입과 보관에 돈과 시간과 공간을 할애했던 것들인데, 지금에 와서 면밀히 살펴보니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아니었고, 내가 원하는 게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는 이 느낌. 이건 내가 최근에 나의 직업과 생활에 대해 받은 느낌과 상당히 비슷하다.  


학생은 모름지기 열심히 공부를 해야지 달리 할 게 뭐가 있겠어? 법대에 왔으니 사법시험을 봐야지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잖아? 사법시험을 통과했으임관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해야지 달리 되고 싶은 것도 없잖아?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되었으니 내게 주어진 일은 야근을 해서라도 주말에 나가서라도 제대로 해야지? 서른이 넘었고 오래 사귄 사람이 있으니 결혼을 하고, 결혼 3년 차면 슬슬 아이를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아이를 낳았으니 최선을 다해 열심히 길러 훌륭한 시민으로 길러내야지?  당대에 다수의 지지를 받는 이런 규범에 큰 의문을 품지 않고, 내가 그것을(결혼을, 아이를, 법조인이 되는 것을, 육아를) 진정으로 원하는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적 없이 그저 지배적 규범에 따라 성실하게만 살아온 지난 삶과 내 주변에 남아 있는 물건들이 닮아 있었다. 내가 무엇을 정말로 원하는지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는 나. 옷도, 신발도, 가방도, 살림살이도 적당한 가격대에 적당한 모양새의 것들로 들였다. 내가 정말로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구입한 물건이 있나? 적당히 곁에 둔 물건들. 사십이 되도록, 내가 무언가를 진짜로 원하는지?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건에게도, 규범에게도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비우는 과정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물건을 비울지 말지 결정할 때 과거에 들어간 돈이나 노력을 기준으로 손익을 따지게 되면, 구입가 대비 처분가격이 낮기 때문에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비우기가 어렵다. 그래서 비울 때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구입가 9,900원이었던 이케아 채반이 있는데, 집에 있는 채반들 중에 제일 커서 꺼내고 넣기 번거로워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이 채반이 요즘 이케아 핫템으로 인기라길래 당근에 3,000원에 올려 얼른 팔았다. 이는 과거 구입가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6,900원을 손해 보는 것이지만, 현재 상태(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다)를 기준으로 하면 3,000원이 생기고, 채반이 차지하던 공간까지 생기는 이득 되는 비움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직업이나 거주지, 생활방식도 변화를 고려할 때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기준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제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다른 길로 가는 게 손해 보는 것처럼 생각되어 계속해왔던 대로 현상유지를 선택하게 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가 아닌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찾아 변화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게 있어서 미니멀 라이프는 갖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이 아니다. 잠시 멈추고, 내가 진짜 그것을 갖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이다. 뭔가 사고 싶다는 느낌이 들 때,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 여러 사이트를 넘나들며 가격과 후기를 비교하고 결제 버튼을 누르려 달려가는 것을 잠시 멈추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나한테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닌지, 나의 기준이 아니라 타인(다수)의 기준에 맞추고 싶은 것은 아닌지, 나 스스로를 살펴보는 것이다.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는 '진짜 원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실은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가방을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그걸 가질 수 없으니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예쁜 것을 가짐으로써 그 욕망을 적당히 달래려고 하는 것아닌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본다. 만약 진짜 욕구가 따로 있다면, 적당한 물건으로는 그 욕구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진짜 갖고 싶은 것 대신 적당한 것을 선택하면 돈도, 공간도, 에너지도 낭비하게 되고, 진짜 갖고 싶은 것과는 더욱 멀어지게 되며, 욕구와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적당히 타협하는 선택은 한정된 자원(돈, 시간, 에너지)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에게도 본심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봄에 어울리는 예쁜 가방이 갖고 싶은 것이지 명품 브랜드의 그 가방이 갖고 싶은 것이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는 때가 많다.

 

그리고 진짜 갖고 싶은 것이 아니면, 아무리 싸도(설령 공짜여도) 사지(갖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가 원하는 것은 물건보다 좋아하는 활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컨대, 책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책 읽는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이다.


욕구와 필요를 따져 비우고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내가 이르고 싶은 경지는, 아주 가볍고 자유롭고 여유로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물건도, 생활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