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다짐했던 것이 있다. 남에게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스스로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자. 남자친구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데 '남자친구가 뭘 잘못했는지 콕 집어서 설명하기 어렵고,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한 다짐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정확한 상황이나 이유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기분이 나빴던 것은 남자친구의 잘못된 언행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 있던 열등감 또는 경쟁심 같은 감정 버튼이 눌려서였다. 내 안의 부정적인 그런 감정들을 다른 사람에게 굳이 밝힐 필요는 없지만, 나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솔직해지자는 마음을 먹었고 그 신조를 지금까지 지켜왔다.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꽤 잘 이해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집에 친구와 친구 아들이 놀러 왔다. 다 함께 저녁을 먹고 놀고 있는데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렸다. 순식간에 아파트 놀이터에 눈이 쌓였고, 동네 아이들이 모두 놀이터로 뛰쳐나와 놀고 있었다.
친구 아들(7세)과 우리 딸(9세)은 밖에 나가서 눈 놀이를 하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친구 딸(4세)과 우리 아들(11세)은 지금 당장은 나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친구는 추위를 엄청 심하게 타는 체질이라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 집에 있는 모든 이의 원하는 바를 파악한 내가 말했다.
"친구 아들아, 누나(=우리 딸)랑 둘이 같이 나가서 놀면 되겠다."
우리 딸은 혼자서도 놀이터에 나가 놀았던 경험이 많아서 그렇게 권했는데, 친구 아들은 부모 없이 놀이터에 나간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 아들은 자기 엄마에게 함께 나가자고 살짝 졸랐다. 친구는 둘째와의 보드게임을 핑계로 같이 나갈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좀 전까지 엉덩이를 들썩이며 밖에 나가고 싶어 거실 창문을 기웃거리던 친구 아들이 갑자기 책장에서 책을 한 권 빼들더니 거실에 털썩 주저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우리 딸이 나가자고 얘기하는데, 친구 아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침울한 얼굴로 책만 쳐다보고 있었다. 차라리 "엄마도 같이 나가자"라고 떼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착하고 순한 어린이가 자기가 원하는 바를 더 표현하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는 그 모습에 내 어린 시절이 겹쳐 보이며 딱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친구 아들아, 나갈 준비를 하다 말고 왜 갑자기 책을 읽어? 밖에 나가기가 싫은 거야? 아니면 엄마 없이 나가기가 무서운 거야?
다행히 친구 아들이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엄마 없이 나가는 것이 무서워요."
"누나도 같이 놀이터에 가니까 혼자가 아닌데, 엄마가 없으면 어떤 상황이 일어날까 봐 무서운 거야?"
"놀다가 엄마를 잃어버릴 것 같아요."
친구 아들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 덕분에 대화를 통해 아이의 두려움을 덜어줄 수 있었다. 사실 그 놀이터는 친구 아들이 매월 하원 후에 한 시간씩 노는 익숙한 공간이고, 우리 집 거실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며, 하고 있던 보드게임만 끝나면 어른들도 곧 놀이터에 나갈 것이니, 아이가 놀이터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멀리 가버리지만 않으면 엄마를 잃어버릴 일은 없다. 차분하게 대화를 통해 두려움을 덜어낸 아이는 용기를 내서 누나와 함께 놀이터로 나갔다. 잠시 후에 나가보니 누나는 미끄럼틀에서 놀고, 아이는 미끄럼틀 주변에서 눈사람 몸통을 굴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누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좀 전까지 밖에 나가기 무서워하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눈놀이에 심취해 있다. 이렇게 아이는 두려움을 떨쳐낸 후에 찾아오는 작은 모험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이상하게 이 일은 오래 내 마음에 남았고, 그날의 일을 자꾸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날 대화를 통해 아이의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이가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표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밖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책 읽는 것이 더 좋아요."
아이가 '나가는 게 무섭다고 말하는 건 부끄럽다' 등의 이유로 위와 같이 속마음과 다른 말을 했다면, 문제 해결을 대화로 풀어가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밖에서 눈놀이를 하는 것보다 집에서의 활동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우리 아들처럼) 그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사실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지만 엄마 없이 나가기 무섭다고 말하기는 부끄러우니까 그냥 집 안에서 노는 게 더 좋다고 스스로와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 굳어지면, 나중에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밖에 나가고 싶은지 집에 있고 싶은지 스스로도 헷갈리는) 사람이 된다.
친구 아들의 아빠, 그러니까 친구 남편이 전형적인 그런 어른이다. 사소한 물건을 사는 데도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해 몇 년씩 고민하고, 식당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정확히 말하지 않아 이 문제로 친구와 정기적으로 다툰다. '우유부단'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또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성인인 친구 남편은 나이상 관계상 내 범위 밖이지만, 아직 어리고 항상 나를 격하게 환대해 주는 귀여운 친구 아들은 앞으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더 많이 들여다보고, 자신의 의견을 더 많이 표현하고,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많이 가져보면 좋겠다. 친구 아들은 얼마 전에 이사를 가서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말로는 "새 어린이집이 너무 좋고 신나서 빨리 등원하고 싶다"라고 한다는데, 막상 원에서는 "그림을 그리라"는 선생님의 말에 계속 울기만 하며 그림을 그리지 못해 결국 집에 와서 그림을 그려갔고,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는 등 불안과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친구가 걱정을 했다.
걱정하는 친구에게 눈 내리던 날의 놀이터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아이가 자신의 두려움을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그걸 대화로 털어내고 밖에 나가 눈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고, 그날 아이가 솔직하지 않았다면 꽤 어려운 상황이 펼쳐졌을 거라고, 아이의 기질이 아빠를 많이 닮았음을 고려할 때 아이에게 솔직할 기회를 조금 더 많이 주어야 할 것 같다고. 내 진심은 친구에게 전해졌고, 그날 친구는 아이를 평소보다 빨리 하원시켜 동생 없이 단둘이 데이트를 하며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했다.
사실 "스스로에게 솔직하면 좋겠다"는 얘기는 친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친구는 원래도 몸이 좋지 않은데, 생애 첫 주택 구입과 이사에 따른 피로로 몹시 지쳐 있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내 올해 목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친구의 말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것일까. 실은 원하는 것이 따로 있지만 그걸 이루려고 노력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으니 방어적인 태도로 욕망을 지우려는 말일까. 친구를 오래 알고 지낸 나로서는 후자로 들린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인 참 쉽지 않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자는 모토로 살아온 나로서도 내 욕망을 직시하는 것은 늘 어렵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대체로 성실한 우리들은 원하는 것을 정확히 모르겠을 때 자꾸 '해야 할 일' 뒤로 숨게 된다. 해야 할 일은 소소하게든 거창하게든 언제나 끝이 없다. 끝없이 닥쳐오는 해야 할 일을 해치우다 보면, 내가 진정 원하는 것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2025년에 읽었던 책 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데 크게 도움받은 문장이 있다.
마법 지팡이를 흔들어 3년 후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지금 모습에 비추어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 삶은 어떤 모습이고 오늘과 무엇이 다를까?
만약 아무런 걸림돌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 일에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이미 갖추었다고 가정한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포인트는 "마법 지팡이"와 "현실적인 제약이 없다는 가정"이다. 그걸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는 일단 생각하지 말고,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나중 문제다. 일단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아는 게 우선이다. 그러면 "안돼 못해 너무 어려워 이미 늦었어" 같은 말로 감추고 있던 진짜 욕망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현실적인 이유로 그걸 이루기 어렵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흐렸던 시야가 밝아지고,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일상의 작은 선택들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 책을 다음 달 독서모임 책으로 정했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던 내 친구도 독서모임 회원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사람이 매월 열심히 책을 완독하고 꼬박꼬박 모임에 나온다. 역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말은 진심이 아닌 것 같다. 부디 이 문장이 친구와 다른 회원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의 진짜 원하는 바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