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많다고 옷을 잘 입는 건 아니다.

by 시간부자

미니멀 라이프 관련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지 어언 9년째.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니, 9년이나 미니멀 라이프를 기웃거린 나도 정리에 어려움을 겪는 지인들에게 약간의 조언을 해줄 정도 되었다.


최근에는 최저시급을 받고 친구들의 옷 정리를 도와주었다. 두 친구 모두 생애 처음으로 집을 샀고, 정리되지 않은 옷이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집이 평당 얼마인데, 대출 이자가 한 달 얼마인데. 정리되지 않은 많은 옷에 비싼 집의 소중한 공간을 많이 내주어야 한다는 것에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친구들의 옷 정리를 도와주다 보니 내 옷장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옷이 많은 것과 옷을 잘 입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옷이 많다고 옷을 멋지게 잘 입는 것이 아니고, 옷이 적다고 옷을 덜 예쁘게 입는 것도 아니다.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친구들의 옷은 옷장에 다 들어가지 못하고 흘러넘쳐 여기저기 옷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리를 통해 일부는 버리고, 남은 옷을 종류별로 분류해 옷장에 전부 넣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만 여전히 옷이 많았다. 친구들이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버리지 못하고 다시 끌어안은 옷들은 솔직히 멋지고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옷들이다. 멋지고 좋은 옷들은 애초에 고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별로 좋지는 않지만 버리기 아까운 애매한 옷들이 고민의 대상이 된다.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은 그 애매한 옷들은 멋지고 괜찮은 옷들과 같은 옷장 속에서 부대끼면서 옷장 전체의 퀄리티를 끌어내린다. 그렇게 되면 '옷은 많은데 입을 것이 없는' 옷장이 된다. 이런 애매한 옷들이 들어찬 옷장은 자꾸만 새 옷을 구매하도록 부추긴다. 즉, 버리지 못한 애매한 옷은 애매한 새 옷을 계속 불러들인다. (내 경험상 그렇다.)


미니멀 라이프가 좋다고 생각하는 나도 새 옷을 기웃거리는 때가 있다. 계절이 바뀔 때 유독 그렇고 '이제 나이도 있는데 좀 멋지게 입고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가진 옷이 별로 없어서 멋지게 입지 못하는 것인지' 내 옷장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다행히 내 옷은 붙박이 드레스룸 절반에 모두 걸려 있어서 (나머지 절반은 남편의 공간) 갖고 있는 옷을 살펴보기 수월하다. 지난가을, 내가 사고 싶어서 기웃거렸던 롱치마가 이미 내 옷장에 있었다. 롱치마, 있는데 잘 입지 않는다. 괜찮은 셔츠도 몇 장이나 이미 가지고 있다. 셔츠가 있는데도 항상 티셔츠에 손이 먼저 간다. 나와 같은 경우라면, 옷을 잘 입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옷을 사기보다는 옷을 어떻게 입어야 멋진 것인지 배우는 것이 목적에 맞는 방법이다. 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새 옷 구입이 아닌 스타일링 방법을 배우는 데 써야 하는데, 자꾸 손쉬운 방법인 새 옷에만 관심을 가지니 옷장에 옷이 늘어나도 착장은 멋져지지 않고 그대로인 것이다.


친구들의 옷장 정리를 도우면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고, 그 덕분에 입지도 않으면서 매번 버리지 못했던 애매한 옷을 옷장에서 비울 수 있었다. 애매한 옷들을 비우고 나서 내 착장은 그럭저럭 괜찮아졌지만, 그렇다고 옷을 막 잘 입게 된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스타일링 방법을 찾아보고 배우기가 귀찮다. 꼭 멋지게 옷을 입어야만 할까. 모든 사람이 옷을 멋지게 입고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멋짐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많은 옷을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에 자꾸 더 비울 옷이 없나 내 옷장을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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