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갈림길에 멈춰 서 있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그 덕분에 안정된 생활 여건을 비교적 빠르게 손에 넣었다. 대출 없는 경기도 30평대 아파트, 할부 없는 차 한 대, 약간의 현금 자산, 노는 걸 좋아하는 건강한 아들과 딸. 원만한 관계의 배우자. 둘째 임신 초기, 의사가 알려주기 전에 이미 둘째가 딸일 거라고 확신했다. 아들이 이미 있으니까 둘째는 딸일 것이다. 그때까지의 내 인생 흐름상 그랬다. 실제로 둘째는 딸이었고,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당시 백점이라며 기뻐하셨다. 할머니 기준에 백점인 이유는 아들을 먼저 낳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며느리 우리 엄마는 딸 셋을 낳고 나서 아들을 낳았다. 만약 내가 딸, 아들 순서로 아이를 낳았다면 할머니 기준에는 몇 점이었을까.
나는 지쳐 있었다. 내 일은 나를 늘 찜찜하고 찝찝한 상태로 살게 했다.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일 없이 노래를 듣다가 그냥 눈물이 나는 건 정상적이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살았던 것은 주변 모든 사람들이 알았기에 처음에는 다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번아웃이 왔나 보다 그러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 헛웃음을 켰다. 멈춰 선 내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자, 세상이 내게 속삭였다. 지금 멈춰 있을 때가 아니야. 더 열심히 일해서 벌어야지. 왜 그래야 하죠? 묻는 내게 세상의 답은 다양했다. 언제까지 경기도에 살 거야. 서울로 이사 가야지. 상급지 갈아타기, 아이들이 클수록 짐이 점점 더 늘어. 더 큰 평수로 가야지. 아이들 몸도 커가는데 차도 더 커져야 하지 않겠어. 더 크고 더 비싸고 안전한 차. 명품 몇 개는 있어야지. 샤넬 클래식 미듐, 디올 레이디백은 작은 사이즈가 예쁘고, 반클리프앤아펠 알함브라 이제 나이도 있으니 스위트보다는 빈티지, 까르띠에 탱크, 막스마라 코트, 몽클레어 패딩 등등 끝도 없었다. 이런 것들이 '좋냐 예쁘냐'라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좋고 예쁘다. 자본주의에서 가격은 괜히 매겨지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도, 주식도, 물건도 비싼 것들은 다 비싼 이유가 있다. 좋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원한다. 그래서 비싸도 잘 팔리고, 점점 더 비싸진다. 그런데 세상이 속삭이는 이런 좋은 것들을 '갖고 싶냐' 물어본다면, '굳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귀하고 값진 것들을 기어이 내 손에 넣어야만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좋은 것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가끔 마주치면 '예쁘다, 대단하다, 멋지다' 진심으로 감탄하고, 다시 아늑하고 편안한 내 보금자리로 돌아오면 그걸로 충분했다.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금동대향로가 아름답고 멋지고 훌륭하지만 그걸 꼭 내 수중에 두고 매일 들여다봐야 더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와 비슷했다.
[월든]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말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
나 하나만 놓고 생각했을 때, 나는 더 많은 것을 그다지 바라지 않았고, '노력'은 지긋지긋했다. 별로 바라지도 않는 것을 얻기 위해 그 지긋지긋한 노력을 계속 하기는 싫었다.
남편도 있고 자식까지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는 비난도 있을 수 있다. 가족을 굶기는 것도 아니고, 따뜻한 집에서 다음 끼니 걱정 없이 밥 먹고 있으니, 그런 비난은 부당하다. 다만 내가 남자였다면 이 지점에서 조금 더 부담을 느꼈을 것 같다. 나도 남편도 가부장제의 잔재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라 내 수입을 줄이는 것에 대해 부담이 덜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덜하다는 장점'은 내가 그동안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버는 상황에서도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등의 가사와 육아를 메인으로 맡아 온 덕택이니 과분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심각한 불균형이 그나마 조금은 바로 잡힌 것 같다고 느꼈다.
일을 줄이고 수입을 줄이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편안했지만 충만한 만족감을 얻기는 어려웠다. 나는 전업주부로는 살 수 없고,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기존의 일에 다시 전력을 다하기는 싫었다. 그럼 뭐를 하고 싶은데? 나도 모르겠어. 방황하며 여러 가지 책을 읽었다. 어떤 책에서 긍정확언을 수첩에 적어보라고 했다. "내 몸무게는 얼마이다", "나는 어떤 차를 운전한다", "나는 어떤 집에서 산다", "내 수입은 얼마다"와 같은 식의 긍정확언(내 목표를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문장으로 적는 것)을 수첩에 적고서 매일 읽어보라고 하여 예쁜 수첩을 하나 마련했다. 여러 날 생각하다가 첫 번째로 적은 문장이 "나는 마당이 있는 작고 예쁜 집에 산다."였다. 이런 문장들을 적고 다시 읽어보며, 무슨 샤머니즘도 아니고 남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어색하고 쑥스러운 긍정확언 수첩 덕분인지 나는 두 달 후면 마당이 있는 작은 시골집에서 살게 된다.
2026년 1학기에 농촌유학을 간다. 학교에서 소개해주는 다양한 집 중에서 내가 고른 마당 너른 집은 낡았고 수리가 필요한 상태라 경쟁자가 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다면 나도 이 집을 고르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나는 갈림길을 만나서 멈춘 것이 아니다. 일단 그냥 멈췄고, 어디 다른 길이 없나 찾았다. 기존에 걷던 길이 너무 넓고 훤해서 잘 보이지 않는 다른 샛길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다른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관상쟁이도 만나고, 사주쟁이도 찾아갔는데 둘 다 '원래 하던 일이 딱'이라고 단언했다. 에라이. 그 말에 몹시 화가 나는 것을 보니 원래의 길을 계속 걸으면 안 되겠다는 것만 깨달았다. 할 수 없이 오래 멈춰 서 있던 나는 마침내 샛길을 발견했다. 일 년 동안 도시를 떠나, 마당이 있는 작고 예쁜 집에서, 바라던 대로 미니멀 라이프를 도모하며 간소한 살림으로 집안일에 쓰는 시간을 최소로 줄이고, 시간과 공간을 누리며 글을 쓰고, 독서모임을 계속 진행할 것이다.
이것은 새해 다짐이자 일종의 긍정확언일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러한 내용의 글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건 참말로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