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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유학 신청 소감

by 시간부자

농촌유학을 신청했고, 면접을 앞두고 있다. 농촌유학은 1년 단위로 시골학교에 전학을 가서 생활하는 것이다. 도교육청이 주관한다. 도교육청이 진행하는 절차에 따라 농촌유학생으로 선발되면 각 학교별 주거지를 소개받을 수 있고, 지원금도 나온다. 나는 전라북도 교육청 소관 학교에 지원했다. 전북 외에 전남, 제주, 강원, 충남 교육청에서도 농촌유학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원자 숫자가 많아 경쟁이 치열한 학교도 있지만, 내가 지원한 학교는 학교가 원하는 가구수보다 지원한 가족 숫자가 더 적어서, 면접에서 큰 물의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설마..?) 가게 될 것 같다.


왜 농촌유학을 가려고 하나? 신청서에도 '농촌유학 지원 동기'를 적어야 하고, 농촌유학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방학마다 한두 달씩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고, 시골에서 보냈던 행복한 경험이 도시에 사는 어른이 된 내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 낯설고 다른 것에 막연한 거부감을 갖기 마련이기에, 낯설고 다른 환경인 농촌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앞으로 다름이나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줄 것이다."라는 취지로 신청서에 적었다.


신청서에 미처 적지 못한 이유도 있다. 사실 농촌유학을 아이들보다 나를 위한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를 잘 아는 친동생은 내게 "언니, 농촌유학을 가면 애들도 데려가는 거야?"라고 물었을 정도다. (동생아, 초등학교에서 애들 없이 혼자 온 엄마를 받아주겠니..) 농촌유학이라는 단어를 신문 광고지면에서 처음 접했던 몇 년 전부터 막연한 호감을 느꼈고, 곧바로 사진으로 찍어 남편에게 공유할 정도로 혹했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해야 하는 것"을 최우선 기준으로 두고 살아왔기에 "하고 싶은 것"으로 우선순위를 바꿔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을 파악하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아, 도대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갈피가 잡히지 않아 당황스러운 상태였다. 농촌유학은 누구도 나에게 요구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전혀 아니고(의무 0%), 순도 100%의 하고 싶은 일이라 일부러 더 강행했던 것 같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봐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오기도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이제까지는 여러 사람이 걷는 넓은 길만 골라서 걸었다. 이 길을 가면 대강 어떻게 흘러갈지 가늠이 되는 안정적이고 탄탄한 길이었다. 길을 가며 힘들고 고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고됨이었고, 그 길을 걷는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고됨이었다. 반면에 농촌유학은 앞으로 시골에서 지낼 1년 동안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 도무지 모르겠다. 생생한 후기도 많지 않고, 각 학교마다 지역마다 상황도 천차만별이다. 집도 천차만별이다. 전북 교육청 산하에도 기본 가전이 제공되는 편리한 주거지와 연계된 학교가 있었는데, 해 잘 드는 넓은 마당이 있다는 이유로 굳이 찐 농가주택을 골라 신청한 나와 아이들에게 어떤 시련과 행복이 닥칠 것인가.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다.


한눈에 마음에 들었지만 나를 끝까지 고민하게 만든 시골집


내년에는 정말 시골로 가서 살게 되겠구나 생각하니, 새삼 긴장도 되고 걱정스러우면서도 설렌다. 기본 가전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하나. 회사 동료들에게는 언제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이사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 나는 시골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학교에 적응 잘하려나. 또 뭘 준비해야 하나. 마음이 어지럽고 분주하다.


그래도 기쁘다. 마음이 어지럽지만 무겁지는 않다.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평소에 꿈꿔왔던 대로 최소한의 적은 살림으로 간소하게 생활하며, 조급해하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시간을 풍요롭게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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