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 가기 전 - 준비는 적게, 로망은 크게

by 시간부자

농촌유학은 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제도이고, 각 학교에서 학교 주변 주거지를 소개해준다. 나는 전라북도 교육청이 주관하는 농촌유학에 지원했고, 임실 소재 초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내가 신청한 주거지는 학교와 같은 마을에 있는 낡고 오래된 시골집이다. 해가 잘 드는 넓은 마당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고, 학교에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이 특히 좋았다.


이사가 한 달이 남지 않았지만 아직 이사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정신없이 짐을 꾸리는 대신 내가 농촌유학에서 어떤 것들을 기대하는지 먼저 정리해 본다.


목욕탕 로망

내가 살게 될 동네에는 "작은 목욕탕"이 있다. 남탕과 여탕이 따로 없고, 하루는 여탕, 하루는 남탕, 이렇게 번갈아 운영된다고 한다. 이용료는 성인 기준 2천 원이라고 들었다.


나와 아이들은 목욕탕을 참 좋아한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목욕탕에 가려면 차를 타고 15분 정도 가야 한다. 신도시의 특성상 상가 임대료가 비싸서 목욕탕이 새로 생기지 않는다. 차로 15분 거리의 목욕탕은 생각날 때 바로 가기가 어렵다. 농촌유학을 가면 동네 목욕탕을 살랑살랑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다. 이 목욕탕을 매주 이용하고 싶다.


내가 기대하는 장면. 목욕탕이 여탕인 날은 딸의 하교를 기다렸다가 함께 목욕을 한다. 목욕을 마치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슬렁슬렁 하나로마트로 걸어가 바나나 우유를 하나씩 사 마시며 느긋하게 걸어서 집에 돌아온다. 5학년이 되는 아들은 학교가 끝난 후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놀다가 친구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고, 개운하고 피곤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온다. "땀 흘렸으니 오늘은 꼭 씻어"라고 잔소리할 필요 없이 저녁만 차려주면 아이들은 저녁 먹고 놀다가 피곤함과 개운함에 일찍 잠든다. 시골의 깜깜한 밤이 우리들의 숙면을 독려할 것이다.


도서관 로망

시골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 얼마 전에 지어진 2층 짜리 군립 도서관이다. 지하 주차장도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많고 멋스럽고 한적하다. 도서관은 도시에서도 나의 최애 장소다. 농촌유학 기간 동안 전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싶다. 아이들을 아침에 학교에 보내고 나는 도서관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


체육관 로망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체육관이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체육관 주변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려고 한다. 작년에 했던 슬로우 조깅 루틴을 이어서, 최대한 천천히 1시간씩 꾸준히 달려고 싶다. 아침에 도서관에서 2시간 읽고 쓰고, 달리기를 1시간 하고 시골집에 돌아와 혼자 간소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 일과를 보내고 싶다.


집에서 차로 25분 거리에는 수영장과 헬스장까지 있는 더 큰 체육관이 있다. 수영장 이용료는 성인 2,400원, 어린이 1,200원이다. 헬스장의 이용 요금도 같다. 야외 달리기가 어려운 궂은 날씨에는 헬스장을 이용하려 한다. 마땅한 계획이 없는 어느 주말, 실외 활동을 하기 어려운 날씨라면 아이들을 이 수영장에 데려가려 한다. 어른 1명, 아이 2명의 입장료를 합치면 4,800원. 수영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실컷 책을 읽고, 더 읽고 싶은 책은 빌려와서 남은 주말을 집에서 책과 함께 뒹굴거리면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집에 티비가 없어도 풍성한 주말이 되지 않을까.

내 소유의 돈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늘어난 돈을
나의 만족을 위해 소비한다.

내 소유의 돈이 작아서 오는 공포심을
조금만 누르면 보인다.
이 풍요로운 세상이 베풀어준
교육, 넓고 다양한 세상, 넘치는 지식,
공공의 소비시설이.
그것들은 온전히 나의 돈으로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냈다고 그 가치를 내가 온전히
지불한 것도 아니다.

과거의 세대가 만들어
현재에 도착한 풍요를 누리는
새로운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이사는 2월 말일에 할 예정이다. 남편이 옆에서 '왜 이렇게 준비를 하나도 안 하는지' 의아해할 만큼 느리게 준비하고 있다. 가지고 갈까 말까 고민되는 물건은 그냥 놔두고 가려고 한다. 최대한 적은 물건으로 살면서, ".. 이걸로도 충분하구나!!"라는 마음을 자주 느끼고 싶다. 작은 손에 움켜쥔 것을 넘어서, 사회 속의 풍요를 더 누리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