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덕후입니다
밸런타인데이가 지나고 매대가 많이 비었다. 빈 곳을 채우기 위해서 아침 일찍 나와서 초콜릿 작업을 했다. 초콜릿과 섞을 재료들의 밑준비를 끝내고 나서 테이블을 소독하고 템퍼링을 시작한다. 템퍼링을 하면서 초콜릿을 주걱으로 젓고 있으면 초콜릿 향이 진하게 올라온다. 때로는 그 향이 책방을 가득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조금 거북할 수도 있는 그 향이 한국인에게 된장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카카오를 발효하고 건조해서 만드는 초콜릿의 공정 때문에 발효취가 살짝 느껴져서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된장이든 청국장이든 다 좋아하는 한국이라서인지 아니면 그저 초콜릿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콜릿에서 나는 약간 꼬릿한 그 향을 무척 좋아한다. 템퍼링을 하면서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그 향이 몸속 가득 들어오는 게 느껴지고, 그런 순간이 초콜릿을 만드는 사람의 특권인 것 같다.
미리 만든 재료들을 섞어서 초콜릿을 평평하게 펴놓았다가 잘 굳혀서 포장을 하고 나면 자투리가 조금씩 나온다. 그건 나를 위한 선물이다. 단골손님이 오면 나눠주고, 아무도 없으면 점심을 먹은 후 커피를 내려서 자투리 초콜릿을 즐긴다. 내 몫의 초콜릿이 있는 날은 점심은 대충 때운다. 떡이든 빵이든 삶은 달걀이든 허기가 가실 정도로만 먹고, 초콜릿과 커피로 배를 채운다. 내가 만들고도 매번, 감탄하면서 먹는다. 이 순간을 위해서 초콜릿책방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여전히 초콜릿책방에서 '초콜릿'을 판매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날에 초콜릿을 사러 오시는 분들을 보면 더 많이 고맙고 반갑다.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손님들을 만나면 괜히 신나서 초콜릿이라는 주제로만 몇십 분을 떠든다.(초콜릿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눈치도 없어진다.) 많이 먹어도 절대 살이 찌지 않는다고 과장하기도 한다.(설탕 함량이 높은 초콜릿을 엄청나게 많이 먹으면 당연히 살이 찐다! 사실 초콜릿을 먹기 위해서 다른 걸 적게 먹게 먹어서 살이 찌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건강에도 엄청 좋은 음식이라고 섣부른 의견을 덧붙이기도 한다.(기호 식품으로 건강을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커피든 술이든 담배든 누가 건강을 생각하면서 애용하느냔 말이다!) 아무튼 아이돌 덕후들도 좋아하는 아이돌의 장점만 살피듯, 초콜릿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렇다고 믿는다.
사실 좋아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체취까지도 좋아하게 만든다. 가끔 나를 안아주면서 아이가 코를 킁킁거리는데, 엄마 냄새가 좋아서 그런다고 한다. 별달리 좋은 냄새가 날 리가 없는데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냄새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초콜릿도 된장도 좋아하는 마음에 기대어 좋은 향을 만든다. 좋은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향기를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초콜릿책방에서 초콜릿 이야기를 하면 그런 마법의 순간이 생겨난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