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책방 이야기

산티아고로 떠난 모임원이 부럽습니다

by 초콜릿책방지기

올해는 참 바빴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글을 쓰려고 앉아 있으면 머리가 텅 비곤 했다. 일을 처리하게 위해서 작은 용량의 머리를 요리조리 빠듯하게 사용하다 보니, 가만히 앉아 있으면 뇌가 초기화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을 쓰려면 조금이라도 지겨운 시간이 있어야 좋은데 그런 시간이 좀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샤워를 하고 나온 아침이면 잠깐의 시간 동안 그런 생각이 스쳐간다. 답을 찾기 위한 시간을 갖기 전에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어느새 밤이 되어 있고 잠자리에 누워서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있다 보면 다시 다음날이 되어 있다. 어쩌면 자동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산다는 느낌을 오롯이 느꼈던 것이 언제였던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지난주에 우리 책방의 독서모임인 "위태로운 북클럽"의 이름을 지어준 모임원이 산티아고로 떠났다. 휴직과 떠남을 갑작스럽게 정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산티아고를 일주일째 걷고 있다고 했다. 그분이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나도 그 길 위의 한 사람으로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몸집만큼 커다란 짐을 지고 혼자서 걷는 길에서는 어떤 생각들이 떠오를까 궁금했다.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이 오롯이 몸에 집중하게 될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자려고 누워 있으면 예전에 낚시를 갔던 때가 종종 떠오른다. 낚시를 좋아하는 애인이랑 데이트 삼아서 다녔던 것인데,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낚시터나 저수지는 물이 맑지 않아서 오지를 찾아다녔다. 그런 곳은 당연히 화장실을 비롯한 편의 시설은 없고, 온갖 벌레와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으며, 필수품을 잘 챙겨가지 않으면 그만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당연히 그런 데이트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한 번씩 선심 쓰듯이 따라나섰던 그 오지 낚시 여행이 요즘 많이 생각이 난다. 그곳에 가서 앉아 있으면 멍하니 눈앞의 푸르름만 바라보게 되는데, 자연의 존재감이 압도적으로 커서 옆에 애인이 있어도 오히려 나에게 집중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자연에 깃든다는 것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자꾸 그 시간이 떠오르는 건 그런 시간이 그립기 때문인 것 같다.


책을 꾸준히 읽고 책 속으로 들어가 상상하고 꿈꾸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생활을 사랑한다. 책방을 꾸려 나가는 일이 나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떠나고 싶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게 일상이라면 지겨워지는 모양이다. 가득 차 있는 지금의 일상을 비우고 나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평하는 것 같아서 이런 내색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그 모임원이 부럽다.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이 부럽다.


오지 낚시 여행은 지금이라도 갈 수 있는데, 떠나지 않는다. 책방 일을 비롯해서 신경 쓰이는 일들은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못 할 것도 아니다. 산티아고로 떠난 우리 독서모임 멤버에게도 떠나는 것에 발목을 잡는 일상이 없었을 리가 없다. 문제를 들여다보면 결국, 일상에 안주하려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지루한 일상의 습관을 깨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진다는 걸 깨닫는다. 글을 쓰지 않았던 게으른 일상도 다시 한 번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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