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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책방 이야기 12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특별한 날을 앞두고 있으면 아직까지는 기대감에 들떠 있다. 다들 철이 들면서부터는 기대감이 줄어든다고 하던데, 아직까지는 그리 철이 들지는 않았나 보다. 생일이라든가 크리스마스, 어떤 기념일, 새해 같은 날들을 앞두고 있으면 괜스레 설레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떤 때는 괜히 아닌 척하면서 일에 집중해보려고 하지만, 모른 척하면 할수록 더 존재감만 커질 뿐이다.


문제는 기대감이 클수록 실망감도 커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제는 특별한 날에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아야 더 기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도 아니고(이런 일이야 축하를 받아야 좋겠지만) 그냥 달력에 찍힌 빨간 날이거나 태어난 날일뿐, 보통의 날들과 다른 날이 아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그런 날이 되면 천지가 개벽하거나,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길 바라게 된다. 그런 마음이 수동적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하는 날에는 나라도 무슨 일을 벌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된다.


하지만 기대감이 크니까 무슨 일을 벌이더라도 혹은 벌어지더라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특별한 날인데, 이 정도는 좀 시시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 이내 실망하게 된다. 그냥 그 날에 대해서 말이다.


욕심이 너무 많은 것일까, 아니면 정말 철딱서니가 없어서일까.


철딱서니가 없거나 욕심이 많거나 혹은 둘 다인 내가 특별한 날 중에서 가장 실망을 많이 하게 되는 날이 새해 첫날이다.

한 해가 바뀌고, 나이도 한 살 더 먹고 뭔가 의미부여를 많이 해야만 할 것 같은, 가장 거대하고 광대무변한 의미를 가진 날이다. 새해에 이런 의미를 전혀 부여하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는 혀를 끌끌 찰 노릇일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이 부럽다.


책방지기 입장에서 봤을 때는 새해를 맞아 새로운 일을 많이 계획하고 더 힘차게 일을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새해에 대한 강박을 가진 사람이 책방지기가 되고 나니, 새해를 잘 맞이하려는 마음이 괴로워져서 조금은 우울해졌다.

그래서 이럴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냥 새해 첫 날도 보통의 날 중 하나일 뿐이니까 아주 조금만 특별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너무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아무리 하루를 잘 보낸다고 해도 결국 실망하게 되어 있다고, 그냥 보내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부탁을 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뭔가 긴 변명 같지만, 책방은 새해를 맞아 새해만의 특별한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작년에 하던 대로, 한결같은 모습으로 약간만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리고 특별하지 않은 날, 특별한 일을 벌여서 그 날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한다.

새해 첫날은 그냥 보통의 날 중 하나일 뿐이다.


* 사족 하나, 1월 1일에 초콜릿 책방을 쉬면서 집을 완전히 다 뒤집어엎어서 하루 종일 정리 및 청소에 시달리다 밤에 아픈 허리를 끙끙거리며 누워서 새해 첫 날을 이렇게 보내도 괜찮은 것일까에 대해 잠깐 동안 생각하다가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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