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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ul 22. 2023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당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

   글쓰기에 대해 오래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오히려 글쓰기 방식에 대한 강박과 틀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을 것이다. 기존의 많은 글을 읽고 습득해서 내면화한 방식도 글쓰기를 가로막기도 하지만, 글쓰기의 방법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도 갖게 되는 방식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배움이 항상 모호했던 이유는 글쓰기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 때문인데, 막상 배우고 있을 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무능과 한계에 대해서만 절망할 뿐이다.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엘렌 식수는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쓸 뿐이지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법칙은 어쩌면 좋은 글을 보면서 따라 하거나, 참고하거나, 뛰어넘는 것이라서, 좋은 글을 찾고 그 기준을 제시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 


   그런데 엘렌 식수가 제시하는 작가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서사의 틀을 갖고 있는 작가들이 아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마리나 츠베타예바, 카프카, 잉에보르크 바흐만, 토마스 베른하르트, 장 주네를 주로 예로 들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기승전결이나 카타르시스를 찾기는 힘들다. 대신 자신 혹은 주변의 죽음을 뛰어넘고 꿈의 세계로 진입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인식의 뿌리까지 닿았던 작가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인식의 기저에 있는 것은 죽음에 가까운 절대 고독이다. “저는 어떤 형태의 살인에 근접합니다. 끊임없이 타인의 다름을 의식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순간에 말입니다.”(29) 나와 타인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내가 절대로 같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것은 비단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작가들을 읽는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읽기는 백주의 도피이고, 타인에 대한 거부입니다. 대체로 읽기는 고독한 행위이며, 그 점에서는 글쓰기와 똑같습니다.”(41) 그런데 쓰는 순간에는, 자신조차도 사라지게 된다. “쓸 때, 저는 제게서 탈출하고, 저는 저를 몰아냅니다.”(43) 그래서 우린 망자의 학교에 있는 것이다. 


   그 학교에서 우리는 우리가 타인과도 다르지만 다른 종과도 다르고, 절대로 솔직하지 않은 종이라는 걸 배운다. “개의 위협은 그 끔찍한 사랑입니다. ... 이 무한하고 완전하고 끝없이 베푸는 사랑이 인간에게는 버겁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그 반대의 것이 섞인 혼합물입니다. ... 우리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그처럼 솔직한 관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91) 그렇게 알게 되는 것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글쓰기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복잡한지 드러내게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그럴 만큼 강하지 못하고 그럴 만큼 기민하지 못합니다. 글쓰기만이 이걸 할 수 있습니다.”(95) 이런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란 얼마나 매력적인 수단인가 생각하고 나면, 오히려 엘렌 식수는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는 고백할 수 없는 것을 고백하는 데 성공할지도 모르는, 정밀하고 까다롭고 위험한 수단입니다.”(100)


   우리가 갸우뚱거리며 망자의 학교에서 빠져나올 때 엘렌 식수는 꿈의 학교로 인도한다. “죽음을 통해 그곳에 갈 수 없다면, 꿈꾸기를 통해 가보도록 합시다.”(106) 그 안에서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자리 잡고 있던 무수한 범죄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작가들은 그것들을 종이 위로 옮길 뿐이다. 꿈이 우리를 선택하듯, 글 또한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고, 꿈이 느닷없이 훅 비밀스럽게 오듯이 글도 그렇게 오는 것이라서 “꿈에서처럼 글에는 입장이 없습니다. ... 꿈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글 속에서 여러분은 그냥 거기 있습니다.”(144)


   하지만 우리는 꿈과 점점 멀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좀 더 깊이,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뿌리의 학교로 향하는 것이다. 무의식과 가까운 곳, 법칙이 없는 곳으로.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것이 법칙의 비밀입니다. "그냥." 이것이 법칙의 논리입니다.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이 끔찍한 '그냥', 이 무의미하고 치명적인 '그냥'입니다. 강제 수용소라는 극단에서도요. 사람들은 '그냥' 분류되어 일부는 가스실로 가고 일부는 나중을 위해 목숨이 '부지'되었습니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이 이 '그냥'이지요. 이것이 모든 것에 배어 있습니다."


   글쓰기에 관해서 총체적인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 책은, 마치 꿈에서처럼, 영감을 주는 문장으로 가득해서 글을 쓰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책 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을 독려해 주는 책이다. 여기서 예를 든 작가들이 비록 우리에게 낯설고 읽기가 쉽지 않은 작가들이라고 해도, 그것은 기존의 사고를 확장하기 위한 작은 도전에 불과하며, 수많은 글쓰기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동안 서사적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 방식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엘렌 식수는 단지 사다리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옮겼을 뿐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이상향은 잭이 타고 올라가던 콩나물을 따라서 하늘을 향해서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보는 것이다. 


   “글쓰기는 도착하기가 아니니까요. 대체로는 도착하지 않기입니다. 우리는 몸으로, 걸어서 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아를 떠나가 버려야 합니다. 글을 쓰려면 우리는 얼마나 도착하지 않아야 할까요, 얼마나 멀리 방랑하며 신발을 닿게 하고 즐거워해야 할까요? 우리는 밤만큼 멀리 걸어야 합니다. 각자의 밤만큼 멀리요. 자아를 뚫고 어둠을 향해 걸어야 합니다.”(116)


  그렇게 어둠을 뚫고 내려가다가 부딪치게 되는 클리셰와 맞서 싸우고 더욱더 깊이 들어가다 보면 언젠가 뿌리에 가닿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부터 새롭게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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