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책방에 있다 보면 아무래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카페에서 일하던 때와 느낌이 다를 때가 많다.
초콜릿 카페에서는 초콜릿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고 대화의 주제도 주로 초콜릿이나 디저트로 수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초콜릿에 관해서 내가 설명해 줄 일이 많았는데, 초콜릿 책방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진열된 책이나 초콜릿에 관해 질문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내가 말할 필요가 거의 없다.
날씨라든가 인테리어에 관한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을 하고 나서, 한참 동안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어느새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거나 그들의 취향을 이야기하곤 한다. 나에게 질문을 하거나,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나의 의견을 물어보는 경우는 있지만 말이다.
고민을 들어주고 책을 처방전처럼 내어주는 책방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살고 있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는 사실을 알고 내심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한다고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실생활에서 겪고 보니 놀라울 정도였다. 단골도 이제 꽤나 많아지긴 했지만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고 한 번 시작된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조금은 부끄러워하면서 떠나기도 하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홀가분하게 책방 문을 열고 나가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일을 겪다 보면, 책방이란 정말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부동산을 복덕방이라고 많이 부르던 시절에는, 복덕방에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지금보다 내가 많이 젊었을 때 방을 구하러 갔다가 집주인 아주머니를 기다리며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을 감추며 복덕방에 앉아 있을 때, 불쑥 동네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남편이며 자식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어떤 할머니가 들어와서 삶은 고구마 같은 것을 내려놓으며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커피 한 잔 얻어먹기도 하는 광경을 외계인이 된 심정으로 지켜본 적이 있었다. 복덕방 주인은 그런 모든 것들을 그저 매일 일어나는 일상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상점이든 복덕방이든 간에 영업장이라는 곳의 본질은 그곳에서 간판을 걸어둔 일을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던 젊은 날의 내게는 그 모습들이 모두, 이청준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장면처럼 시골길에서 고장 난 버스에 갇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에 가까운 것이었다. 복덕방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복덕방 주인의 자세가 내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던 것이다. 그곳에 앉아 있는 동안 불편함과 어색함을 넘어서, 할머니가 가져온 고구마를 물 없이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기분까지 들어서 제발 집주인 아주머니가 한달음에 뛰어와주길 바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책방지기가 되고 나니 그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복덕방 주인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절 부동산이 아닌 복덕방은, 마을 사랑방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하면서 지금은 그 역할을 책방이 물려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말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하는 말은, 자신이 낯선 사람에게(책방지기와 같은) 무장해제하고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늘어놓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를 하던 상대방과 나는 함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그러다 이내 상대방은 쉽게 결론을 내면서 말한다.
"이곳이 책방이라서 그런가 봐요!"
그 한 마디가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인 책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좋은 공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