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책방 이야기 15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보통의 책방이라면 아마도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특별히 긴장하거나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초콜릿을 주고받는 일이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버린 밸런타인데이가 오히려 마뜩지 않을지도 모른다. 밸런타인데이라고 책방의 매출이 오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대체로 밸런타인데이는 연인을 위한 날이고, 로맨틱한 저녁 식사와 초콜릿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데이트 코스를 짠다면 책방은 가장 아래 순위에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책방을 데이트 코스에 넣어둔다는 것 자체가 로맨틱과 멀어질 수도 있겠다. 그러니 책방지기가 밸런타인데이에 특별히 신경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책방 이름에 "초콜릿"이 들어간 경우는 다르다. 초콜릿을 전면에 내 건 책방에서 초콜릿 관련 종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인 밸런타인데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만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동안 초콜릿 카페에서 일해오던 관성으로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있으면 신경이 곤두서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초조해지는 증상이 나온다. 2월이 되기 전부터 내내 밸런타인데이가 뒷목 어딘가를 자꾸 뻣뻣하게 만들고 있었다.


초콜릿 카페를 운영하던, 명백하게 초콜릿 관련 종사자였던 때에는 밸런타인데이가 한 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는 몇 달 전부터 초콜릿 봉봉 라인업을 갖추기 위해서 메뉴를 개발하고 맛을 연구하고 디자인을 고민한다. 동시에 패키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데, 디자인은 물론 콘셉트까지 어떤 방향으로 할지 궁리를 한다. 막상 초콜릿 봉봉이 들어간 상자가 완성되고 나면 고민했던 시간과 노력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아쉬움이 크지만 그래도 공을 많이 들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공을 들였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오니, 초콜릿 책방에서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2월이 되고 나니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못한 채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의 심정이 되어버렸다. 책방과 초콜릿이 함께 하는 조화로운 선물을 궁리하다 보니, 신박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고 그냥 항상 멍하니 앉아있게 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2월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한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다. 정답을 모두 찍거나 아니면 백지를 내는 것이다. 나는 정답을 찍기보다는 백지를 내는 쪽을 선택했다.


명절을 끼고 있는 여러 날의 휴일 동안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뭔가를 준비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을 괴로워했다. 나는 기세 좋게 반항하는 마음으로 백지를 내는 학생은 아니었기 때문에 백지를 낼 수밖에 없었던,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던 그전의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태생부터 모범생이 아니었던 나는 밸런타인데이가 되자, 책방은 역시 책이지, 하는 마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할 수 없었던 것에 미련을 두지 말자, 앞으로나 잘 하자, 뭐 이런 식의 표어들을 떠올리며 그 날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초콜릿 카페를 운영하던 나에게 작별을 고했다.


나는 초콜릿도 좋고 책도 좋지만, 지금으로서는 책이 조금 더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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