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한 번이라도 합평회에 참석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타인 앞에서 발가벗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고, 불쑥 솟구쳐 오는 감정을 다스리려고 해도 좀처럼 잘 되지 않는 그 기분 말이다. 발가벗겨진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감추고 싶어도 감춰지지 않는 그런 기분이 그 순간 분명히 그곳에 있다. 그 순간을 피하고 싶어서 써놓은 글을 절대로 내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서 그럴 것이다.
비단 글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창작물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세상 밖으로 내보인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때 일기장을 검사받았던 일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꼈던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순진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던 초등학교 시절, 숙제라는 이유로 일기장을 내보이고서 그 내용 때문에 선생님한테 일기장으로 머리를 맞았던 기억은 최초로 발가벗겨진 사건이라서 전혀 희미해지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렇게 자의든 타의든 자신을 그대로 내보이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그런 순간은 누구나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나 또한 이제껏 요령 있게 피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영업을 시작한 순간, 이런 순간을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방도 물론 그렇지만 초콜릿 카페를 하던 시기부터 그랬다. 자신의 업장을 내보인다는 것은 자신의 얼굴을 내보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매장과 관련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물컵 하나까지도 내 선택이므로, 내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이니 민낯을 내보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은 명백하게 맞다고 생각한다. 책방은 아무래도 취향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니, 그런 의미가 좀 더 심화되었다.
고심 끝에 고른 책들을 진열해 놓지만, '이런 책들밖에 없냐'는 질문을 받을 때나 책방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다른 종류의 책을 들여놓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조언을 받을 때 등등, 그 모든 순간들이 마치 합평회에서 내 작품을 평가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일인 가게이다 보니, 내 표정이나 태도 하나하나가 그날의 매출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마감을 할 때는 죄책감과 자괴감이 꽤 큰 편이다.
최근에 독서모임에서 추천을 하기 위해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을 다시 읽다가, 작가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과 기억을 담담하게 드러낸 것을 보면서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매일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사는데,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책방의 얼굴은 마치 내 얼굴인 것 같아서 누군가 별 뜻 없이 하는 사소한 평가에도 마음을 다칠 때가 있다. 아마 다른 책방지기들도 비슷하게 생채기가 난 마음을 끌어안고 책방을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손님이 아주 많아서 정신없이 책을 판매하다가 하루가 저무는 것을 알아챌 정도라면 마음이 다칠만한 여유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은 책방들은 항상 책 말고 사람 구경 좀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정도로 한가할 것이다. 그래서 간혹 오는 손님이 진심으로 반가울 수밖에 없고, 그 적은 손님들에게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다칠 확률도 높아진다.
결국은 문제의 원인이 경제적인 것으로 수렴되는 것인가, 씁쓸하기도 하다.
합평회에 나가려고 하지 않듯이, 외면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자신을 내보이고, 자신과 세계가 끝없이 부딪치는 것에 매일 상처 받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때로는 무덤덤해지길 바라는 자신이 어딘가에 있고, 상처 받아 울고 있는 마음을 다독여서 좀 더 단단해지길 바라는 자신 또한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을 찾아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책방 문을 열면서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