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책방 이야기 27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비가 오락가락하는 광복절 아침, 책방에 앉아 있으면 오늘 같은 날 과연 이곳에 오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뒷골목인 책방 앞 풍경은 빨간 벽돌 담벼락과 젖은 아스팔트, 그 위를 간간히 지나는 차와 한참을 자세히 내다봐야 보이는 가느다란 빗줄기뿐이다. 멍하니 바깥을 내다보다 골목을 걸어오는 사람이 보이면 흠칫 놀란다. 그 사람이 책방 쪽으로 걸어오면 긴장을 하면서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마음속으로는 두 가지 욕망이 싸운다. 저 사람이 책방으로 들어와 오늘 첫 매출을 올려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냥 책방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무심히 지나가버리길 바라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스파크를 일으키며 싸운다.


그런 내 마음속 전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깥의 사람은 이곳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가던 길을 그저 가버린다. 그럼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다시 멍 때리기를 시작한다. 책방 안에는 나 혼자만 있고, 바깥에는 아무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묘한 긴장이 흐른다.


혼자 있는 것이 좋아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책을 읽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책도 새삼스럽게 구경하고 괜히 책방 안을 어슬렁거린다. 그러다 문득 불안에 휩싸인다. 이러다가 오늘 매출도 0을 찍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망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런 생각이 든 순간부터는 혼자 있는 것을 더 이상 즐거워할 수가 없다. 책방을 운영하는 목적은 혼자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판매하기 위해서인데, 책을 팔기 위해서 더 노력하지 않고 혼자 있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다니 그 생각 자체가 사치고 허영이라는 생각으로까지 마구 치달아버린다. 그럼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고민은 더 깊어진다.


그렇게 괴로워하다 운 좋게 손님이 들어오면 일단은 기쁘다. 어떤 때는 너무 반가워서 막 악수라도 하고 싶고 덥석 안아주고 싶을 때도 있다. 조울증인가 싶은데, 그래도 가급적이면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심상한 표정으로 책방 소개를 하거나 메뉴 안내를 해준다. 손님이 첫 매출을 올려주면 안도감이 밀려온다. 여전히 마이너스이긴 하지만, 적어도 0은 면했기 때문이다. 이런 면을 보면 나는 상당히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고 있는 손님의 존재감이 나를 압도한다. 아무도 없을 때는 책을 읽다가 딴짓도 하고 별생각 없이 코도 막 파고, 방귀도 소리 내서 뀌고 그랬는데 손님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손님과 함께 있으니 어쩐지 책도 좀 더 열심히 읽어야 할 것 같다. 멍 때리는 짓도 하지 말아야 할 것 같고, 뭔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혼자 있을 때가 좋았다는 마음이 생긴다. 아까의 시간이 정말 편하고 내밀한 시간이었다는 그리움까지 생긴다. 불안감은 그새 잊어버리고, 불편함에 사로잡힌다. 이쯤 되면 자아분열 수준이다.


그러니까 따져보면, 나는 상당히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긴장감을 조성하지 말고(내가 나에게 하는 경고인데 어쩐지 슬픈 느낌이 든다), 아무도 오지 않는 비 오는 휴일의 책방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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