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불안과 공허를 극복하고 싶다면 권하고 싶은 책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개념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멈칫하게 된다.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라는 것은 언제나 적확하게 들어맞지 않고 크고 작은 간극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하나의 단어가 의미하고 있는 것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존재하는지,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에서도 무한한 한계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한계를 지울 수 없는 ‘신’이라는 단어 앞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흔들리고 싸우다 하나로 통합하기로 하면서 그 의미를 억압하다가 결국 손을 놔버리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오래된 고전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내듯이 그렇게 오래도록 역사 속에서 인간을 사로잡고 있던 신의 모습들을 보다 보면 유용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종교적 경험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읽힐 것 같다. 어떤 종교에 발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종교를 다룬 이야기들이 좀 더 비판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종교가 없더라도 인간의 역사를 재밌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어째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무신론자조차도 신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역사적 맥락에서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신이라는 초월적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텐데, 안간힘을 쓰면서 조금씩 다르게 정의하는 시도들을 읽다 보면 우리는 얼마나 서로가 서로를 이해시키고 싶어 하는 종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개념이 확장되고 보편화되려면 인간이 가진 선의와 맞닿아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그것이 어느새 주류가 되어버리면 권력화되고 타락하게 마련이라서, 새로운 도전이 나타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도전과 쇄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신이라는 초월적 개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놀라게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다른 종들과 변별되는 인간의 가장 특별한 특징을 신의 역사를 보면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인간이 창조적 상상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존재의 불안과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신이라는 개념을 찾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신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신의 모습으로 대신 찾아오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문학과 예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서 우리는 초월적 감각을 일깨우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보다 나은 공동체를 향한 감각을 키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차피 신은 개인적인 것이고, 개별적 감각을 통해서 만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불안과 공허에서 달아나 조금이라도 초월적 세계로 향해 가면서 충만한 하루를 보내려면 또 한 권의 멋진 책을 골라서 읽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