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하게 잘 짜인 윤회의 세계관
윤회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종교를 갖지 않았더라도 천국에 간다든지, 구천을 떠돈다든지, 살아온 삶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든지 하는, 죽음 이후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형태로 많이 들어와서 우리에게 그런 상상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상상의 핵심 중 하나를 종종 놓치면서 생각할 때가 많았다는 깨달음이 생겼다.
이 소설은 대항해 시대의 공증인 애덤 어윙, 1930년대를 살던 벨기에 작곡가 로버트 프로비셔, 1970년대 미국의 기자 루이자 레이, 21세기의 편집자 티머시 캐번디시, 미래의 한국에서 태어난 복제인간 손미, 모든 문명이 멸망하고 난 이후의 메로님과 자크리가 하나의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각기 다른 형태의 운명으로 그 시대를 지나온 이야기다. 직업과 성별, 성격이 모두 제각각이지만 그들의 영혼만큼은 피부에 드러난 모반처럼 서로 닮아있다.
인물들이 윤회를 통해 새로 태어났든 아니든, 중요한 점은 그들이 갖고 있는 본성과 삶에 대한 태도이다. 보통은 다시 태어난 후에 갖게 되는 삶의 형태에 대해서만 상상해 왔는데, 이 책을 통해서 변하지 않고 이어지는 본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설 속 각 인물에게 주어진 삶이 어느 하나 녹록한 것이 없는데,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그들이 가진 본성과 태도에 있다. 그저 눈감고 지나가 버리면 되는 일들, 혹은 그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식이라고 여기는 생각들에 의문을 품지 않고 살면 그럭저럭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각 인물들 모두 그들에게 주어진 시대의 문제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거대한 시대적 문제들 앞에서 개인은 그저 무력할 뿐이지만 무력함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물들을 연결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주어진 대로 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말해주는 인물은 가장 오래 살아남은 티머시 캐번디시이다.
“중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린다. 하지만 사람을 좀비 대열에 끼게 만들기도 하고, 구해주기도 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태도이다. 젊은이들의 영토에도 좀비의 정신을 가진 자들이 우글거린다. 그런 상태로 흘러가면서 수십 년간 내부에서 진행되는 부패를 감출 뿐이다.”(2권, 245)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갖고 있고, 운명이 가져다주는 선택 앞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며, 그 선택의 결과가 쌓여서 최종적 운명이 결정될 뿐 아니라, 인류의 운명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그 거대한 가치를 한 편의 소설 속에 담아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다양한 인물을 다채로운 방법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여러 시대를 오가느라 조금은 혼란스러운 독자들이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혹시라도 독자들이 알아채지 못할까 봐 매우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잘 들어요. 야만인과 문명인은 부족이나 믿음이나 산의 경계에 따라 나눠지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인간이 문명과 야만, 두 가지를 동시에 다 갖고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신의 지혜를 갖고 있었지만 재칼 같은 야만성도 동시에 갖고 있었고, 바로 그 야만성이 대멸망을 불러온 거예요. 내가 만나본 야만인 중에는 가슴속에 아름다운 문명인의 마음이 고동치는 이도 있었어요. 어쩌면 코나 족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몰라요. 자기네 부족 전체를 좌우할 만큼 많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언젠가는 말이에요.”(2권, 114)
소설에서 보게 되는 인간의 미래는 암울하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독려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만약 본질적인 선함이 변하지 않고 윤회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바다 또한 무수히 많은 물방울이 모인 것이 아닌가?”(2권, 436)
이렇게 멋지게 써놓은 세계를 영화로도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행운인 것 같다. 어떤 영화는 책을 통한 상상의 세계를 망쳐놓을 때도 있지만 이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