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질서를 읽으며 나와 타자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책
코스모스라는 단어에 대해 먼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질서에 가까운 의미라는 것이 먼저 떠오른다. 어질러진 방, 파악하기 힘들게 나열된 글자들,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사람들, 혹은 태풍이 할퀴고 간 길거리 등을 표현할 때 우리는 카오스라고 한다. 그에 반해서 인간적 영역에서 파악하기 쉽도록 정리된 상태를 코스모스라고 할 것이다. 칼 세이건도 코스모스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 어이며 카오스와 대응되는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코스모스적인 상태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미적 즐거움을 얻는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있는 것, 그것에서 깊은 만족감을 얻는 셈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우주를 이해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학 애호가들에게는 은유적 언어와 상상으로 만든 질서가 좀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과학자들은 그것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는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타자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자신 안에 어떤 질서를 만든다는 사실과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우주라는 소재로 말하고 있는 문학적인 책처럼 느껴졌다. 결국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동일한 지점에 있고 방법만 조금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 외계 생물에 대한 탐구가 중요하다고 누구나 말하지만, 우리는 외계 생명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계의 생명은 우리가 추구할 궁극의 목표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103)
지구가 아닌 행성의 기원을 탐색하고 혹시나 있을 외계 생물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우리의 기원을 알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하는 것이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읽고 나니, 밤하늘의 별들이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별자리를 만들어온 과거 인간들의 질서도 낭만적이긴 하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그 별 자체의 질서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좀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보이는 대로의 피상적 질서도 있지만 본질적인 것에 더 깊이 들어가서 파악한 것들은 현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다 언제나 수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도 그렇고 인간성마저도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든 갱신될 수 있다는 것, 기꺼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탄할 만한 문화가 탄생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우주를 대하는 과학적 자세는 더욱 겸손하게 열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은 자유로운 탐구 정신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으며 자유로운 탐구가 곧 과학의 목적이다. 어떤 가설이든 그것이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그 가설이 지니는 장점을 잘 따져 봐 주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을 억압하는 일은 종교나 정치에서는 흔히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195)
그러나 인류사를 돌아보면 언제나 이상적인 쪽으로 흘러오지는 않았고, 과학적 정신이 기존의 통념을 고수하려는 힘과 권력에 대한 의지들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그런 인간의 특징이 공룡의 멸종과는 다르게 자멸로 향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떤 우연의 발견이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상상해 오던 인간적 모습 외의 전혀 다른 모습의 지구인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코스모스적 관점에서 본다면 꼭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는 지구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뉴런과 뉴런이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더라도 전파 신호를 통한 상호 교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적 개체 하나가 여러 개의 유기체에 분산돼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이산적 존재를 가능케 하는 매체가 반드시 유기체일 필요도 없다. 심지어 행성 여러 개에 분산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총체적 지적 자아가 하나의 개체로 존재하고, 그 자아가 자기의 분신들을 사방에 흩어 놓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569)
어떤 분야의 책이든 중심에 분명한 도덕적 기준을 갖추고 있으면서 다른 영역에 영감을 주는 것은 오래도록 읽어야 할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이 책, 『코스모스』는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든 과학에 문외한이든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책이다. 문학을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한 개인이 타자를 이해하는 방식으로부터 한 지구가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으로의 확장을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본다. 가끔 내면 깊숙이 파묻혀 그 암흑의 카오스 속에서 길을 잃게 될 때, 이 책을 읽으면 바깥으로 나오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의 질서를 생각하다 보면, 우주의 먼지인 우리의 고뇌는 조금 더 작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간이 자기 파멸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갖춘 현명한 존재라고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이러한 파국을 피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우주적 시간 척도에서 볼 때 지극히 짧은 시간이겠지만 우리는 어서 지구를 모든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하나의 공동체로 바꿔야 한다. 그리하여 지구상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한편, 외계 문명과의 교신을 이룩함으로써 지구 문명도 은하 문명권의 어엿한 구성원이 돼야 할 것이다.”(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