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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Sep 14. 2024

<심판의 날>

짧지만 강렬하고 재밌는 소설

   우즈베키스탄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무신론적 태도는 1900년대 초반의 세계적 경향을 생각하면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종교가 모든 생활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이슬람 사회의 경우는 그런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작가인 피트랏은 반소련 민족주의 조직에 있었기 때문에 사형되었고 작품은 모두 금서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만 봐도 당시의 한계를 짐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런 비운의 작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도 해서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주인공 퍼처미르는 아편 중독자다. 아편만 피우면 거만해지고 허세가 심해지는 사람인데, 아편이 없어서 병에 걸렸다. 퍼처미르는 아편을 구하지 못해서 저세상에서라도 아편을 구하고 싶어서 아내에게 양귀비 자루로 만든 수의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죽는다. 그렇게 죽어서 천사를 만나는데, 천사들이 하는 질문에 순순히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신께서는 제가 집에서 아내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언제 죽고 언제 무덤에 묻혔는지, 심지어 제 수의는 양귀비 자루로 만들어졌다는 것까지 다 아시면서 제가 신자인지 아닌지를 왜 모르실까요, 당신들을 왜 보내셨을까요?”(16)


   모든 것을 다 아는 신이 공연히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퍼처미르는 천국으로 가는 여러 단계들이 무질서한 것도 도대체 납득할 수가 없다. 줄을 서는 법도 모르고, 합리적인 시스템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천국에서 퍼처미르가 그렇게 원하던 아편은커녕 와인조차 취하지 않는 와인이다. 퍼처미르에게 그런 천국은 천국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퍼처미르의 질문은 타당하다. “한 사람을 천국으로 보내는 데 그토록 많은 ‘수고’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는 이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 상당히 화가 나 있기에 다리를 얼마나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52) 


    현실의 인간들에게는 천국을 목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 뒤의 시간을 위해서 어떤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 그런 수고의 이유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종교는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금기시한다. 질문이 반복될수록 종교의 자리는 점점 좁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짧은 우화 같은 이 소설은 아편중독자 퍼처미르의 질문을 계속 곱씹게 한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크게 새로운 것이 없는 질문이긴 해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아편중독자(혹은 알코올중독자)로 사는 것과 천국을 위해 사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진실한 삶인지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지만 말이다. 물론 양극단이 아닌 삶도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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