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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Sep 07. 2024

<불을 끄는 건 나야>

읽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어떤 날도 읽을 수 있을 소설

   이란 중산층의 삶은 어떨까. 일단 그런 질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이란 사람들의 삶은 어떤지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란인들의 삶이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특별한 점이다(사실은 이란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안 사람들의 삶이긴 하지만). 인간의 삶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먼 나라의 특이한 전통이나 특별한 문화를 보게 되면 동질감보다는 차이점에 더 방점을 찍게 되는데, 이 소설은 동질감 쪽에 더 무게를 두게 된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고 나면 이란이라는 나라가 무척 가깝게 느껴진다. 


   주인공 클래리스는 이란의 석유 도시 아바단에 살고 있는 중산층 전업주부이다. 남편 아르투시는 석유 회사의 시니어이며 체스와 신문 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큰아들 아르멘은 열다섯 살이고 한창 사춘기를 겪는 중이라 서양 영화배우와 음악을 좋아하고 또래 여자애들에게 관심이 많다. 일란성쌍둥이 자매 아르미네와 아르시네는 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클래리스는 자기 가족들의 일상을 무척 꼼꼼하게 챙기면서 살고 있는데, 식사와 위생 등을 신경 쓰다 보면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엄마와 동생 앨리스도 거의 매일 클래리스의 집에 드나들면서 사소한 문제를 일으킨다. 게다가 이웃인 엘미라 시모니안 부인과 그의 아들 에밀, 에밀의 딸 에밀리도 신경 쓰이는 존재들이다. 시모니안 부인이 살기 전에 그 집에 살았던 이웃인 가르니크와 니나, 소피와도 잘 지내야 한다. 주위 사람들을 챙기면서도 클래리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은 욕망도 갖고 있다. 바로 이 욕망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클래리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좋은 아내, 훌륭한 엄마가 되고 싶은 욕망과 함께 자기만의 무언가를 찾고 싶은 욕망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갈등이 증폭되어 긴장감을 유발하지 않는데, 작가가 클래리스의 내면과 일정한 거리를 항상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일들을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독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클래리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 번잡스럽게 느껴지는 클래리스의 삶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매너리즘과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고 찾고 싶은 것들, 원하는 것들을 서서히 알게 된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클래리스의 내면처럼 소설은 일탈로 흐르지도 않고 불륜으로 넘어가지도 않는다. 그저 클래리스의 상상 속에서 모든 사건이 벌어지다가 실망으로 끝나고 현실에서는 앨리스는 결혼하고 엄마는 모시고 살게 되는 평온한 결말을 맞는 것이다. 


    어쩌면 아주 평범한 어떤 여자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그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정치의식이 일상과 얽혀 있고, 그런 모습들은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어서 부드러운 공감을 만들어낸다. 언뜻 보면 너무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라서 소설적으로 볼 때는 시시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읽으며 독자들은 자기 모습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안의 인물들 중 누구라도 자신을 대입해서 볼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끔 힘들고 지친 어느 날, 소설을 읽을 동안의 감정 소모까지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소설을 읽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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