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콜릿책방지기 Oct 19. 2024

<조반니의 방>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방

   청춘이 지나고 나면 풋풋하고 날카로웠던 젊음의 감정들이 바래고 무뎌지게 마련이다. 변화는 아주 자연스러워서 어느 순간부터는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떨림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서운한 감정이 생기지도 않는다. 성숙하고 안정된 감정이 젊음의 감정을 대신하게 된 것이라고 위안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떨어지는 낙엽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마지막까지 그 아름다운 색깔을 잃지 않고 있는 것에 감탄하는 것처럼 그 한때 설명하기 힘들고 종잡을 수 없었지만 강렬하고 매혹적이었던 그 감정을 다시 만나게 되면 아주 잠깐이더라도 그 안에 머물고 싶어 진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분명히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걸 예감하면서도 데이비드처럼 조반니의 방에 머물고 싶었다. 결코 다시 만나기 힘들 사랑이라는 걸 느낀다면 조반니가 있는 방은 저항하기 힘든 공간이 된다. 정상성과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인식하고 있지만, 그런 사회적 압박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언가가 그곳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데이비드와 조반니가 서로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강렬한 힘은 분명히 에피파니의 순간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신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순간과 나에게 올 단 하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의 차이를 나를 알지 못한다. 


  사랑에 투신하는 조반니와 망설이고 있는 데이비드의 차이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데이비드에게 약혼녀 헬라가 있는 것처럼 조반니에게도 아내가 있었고 아들이 있었다. 어쩌면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정상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던 조반니의 삶에 균열이 생긴 것은 아들의 죽음 때문이다. 아들의 죽음을 마치 신이 내린 벌처럼 느끼는 조반니는 더 이상 그곳에서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살 수가 없다. 파리로 흘러들어온 조반니는 비주류 이민자이자 당시에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동성애자로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중이다. 그가 다른 밑바닥 인생들과 다른 점은, 사랑에 관해서는 타협할 수 없는 영혼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데이비드는 미국인 관광객 신분으로 파리에 와 있다. 조금 박하게 말하면 약혼녀가 스페인으로 여행을 간 사이 잠깐의 외도를 즐기다가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는 인물이라고 요약할 수도 있겠다. 그는 주류에 속해있으며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잃을 것이 많으니 조반니처럼 사랑에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 하지만 청춘이 지나고 난 뒤에 데이비드에게 남는 것은 비겁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환멸감이 아닐까. 


   분명히 성소수자의 이야기이며 한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계층 간 차별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소설은 지독한 사랑 이야기로 읽힌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를 대변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이야기로 승화된다. 작고 초라한 하녀의 방에서 조반니가 깨려고 했던 것은 단순히 그 방의 벽이 아니라 우리에게 존재하는 관습과 관념의 벽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체 : 세 자매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