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책방 인테리어를 하면서 벽을 칠할 때, 온통 하얀색으로만 칠하는 바람에 병원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쪽 벽면의 책장 역시 하얀색으로 짜 넣었더니, 어떤 사람은 내가 병적으로 하얀색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태블릿 초콜릿을 연상하게 하는 전면 책장과(이건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바로 눈치챈다!) 초콜릿 진열 공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얀색으로 인테리어를 마감했다. 하얀색이 특별히 좋아서 그렇다기보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책방이지만 갤러리와 같은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유 때문이다. 책을 마치 그림처럼 전시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잘 만들어진 책의 표지 디자인이나 색깔, 책의 질감들을 보면 마치 좋은 그림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보통은 책을, 책 등이 보이게 보관하곤 하지만 어떤 책들은 그런 식으로만 보관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책의 내용만큼이나 디자인이 아름다운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을 하얀 책장 선반 위에 표지가 보이게 진열을 해두면, 어느 갤러리 부럽지 않은 공간이 된다.
책장뿐 아니라 책방 벽도 미술관의 벽처럼 구실 해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서, 어설프게나마 흉내를 내보려고 했다. 역시나 하얀, 벽 선반에 그림책을 툭 올려놓거나 흰색 벽 한쪽 켠에 포스터 하나를 붙여 놓으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얀색 벽은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한 때 그림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림을 편하게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 또한 해왔었다. 그림을 보러 시내로 나가게 되면, 이왕이면 유명 미술관의 기획전을 선택하거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작가의 전시회를 보러 가게 되니까 자꾸만 그림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고 하거나 의미를 찾으려고 애를 쓰게 되곤 했다. 그런 식으로 그림을 보러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심미안이 없어서 그림을 즐기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가 생기기도 했다. 그림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삼청동 부근을 산책하다가 작은 화랑에 들러서 사전 정보 없이 어떤 그림을 보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림에 압도되어서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아마 한동안 그 그림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그때 이후로는 그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유명한 갤러리에서나 알려진 작가의 그림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큰 감동을 줄 수 있고, 그림에서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입견이 그림을 잘 보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책방에서는 그림책 작가의 원화전을 하는 중이다. 글로연 출판사에서 나온 그림책 중, 명수정 작가님이 새로 낸 그림책의 원화를 전시하는 중이다. 아마 유명 미술관만 골라서 다니던 나였다면, 그림책 작가님의 그림을 전시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분명 내가 아는 틀로만 그림을, 세상을 보려고 했을 테고 그만큼 좁은 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풍경만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이게도 편협한 눈에서 조금 벗어나고 나니, 세상은 좀 더 다양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늘고 붉은 선을 중심으로 다양한 그림을 완성한 명수정 작가의 그림들은 책방을 멋진 갤러리로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화사한 계절을 통째로 들고 들어왔다. 그림을 두었더니 자꾸 보게 되고, 손님이 없어 책방이 텅 비어 있을 때도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책방지기들은 대체로 가난하지만, 책과 그림, 음악이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런 생각 때문에 가난한 것인지, 가난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건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다. 하얀 벽에 굴비 하나를 걸어두더라도 책방은 책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