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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소설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설

by 초콜릿책방지기

『목로주점』을 읽고 난 독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 에티엔이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쪽을 내어주고 읽게 된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서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 보려고 했던 제르베즈가 주어진 여건과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을 본 독자는 에티엔은 적어도 제르베즈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내기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 정을 주고받을 여력은 없었던 것 같지만 아들이 자기보다는 괜찮은 삶을 살게 된다면 어쩐지 제르베즈의 혼이 위로받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생겨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도 노동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고 아이를 키우는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조건이 동일하기 때문에 에티엔과 광부들의 삶을 조금 더 응원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동안 변변히 먹은 것도 없이 굶주린 상태로 탄광 마을에 흘러 들어간 에티엔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대로 그곳에서 석탄을 캐며 살아온 마외 일가를 만나게 된다. 그들의 호의 덕분에 탄광에서 일하게 된 에티엔은 기계공으로 일하면서 경험해 온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소의 숨죽인 울음소리처럼 웅얼거리는 지시 사항이 확성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사이 신호기 줄을 네 번 잡아당겨 인간 가축이 아래로 내려갈 것임을 알렸다. ‘고깃덩이’를 실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케이지는 살짝 덜컹거리더니 아래로 내던진 돌멩이처럼 쏜살같이 조용히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47)


인간이 아니라 가축이 되어버린 상태로 지하로 내던져진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는 에티엔의 시선은 이방인의 것이었기 때문에 관찰자의 시선이다. 작가가 에티엔에게 내맡긴 시선으로 보여주는 탄광의 모습은 도무지 인간이 살아갈 만한 곳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누대로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곳이다.


“카트린은 땀을 흘리고 헐떡거렸으며 뼈마디에서는 우두둑 소리가 났지만, 그런 일에 익숙해져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처럼 몸을 숙이고 일하는 것이 모두에게 공통된 불운이라고 믿는 듯했다.”(73)


카트린의 눈빛과 호의를 보고 그곳에 눌러앉기로 하긴 했지만 에티엔의 마음속에는 이미 개혁의 의지가 싹트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부당하고 고된 일이었다. 저들에게 현혹되고 짓밟히는 짐승같은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그에게 반란을 부추겼다.”(115)


그들과 대비되어서 보여주는 그레구아르와 엔보로 대표된 부르주아의 삶은 노동 없는 윤택한 삶이다. 탄광에 투자한 주식으로부터 나오는 이자와 탄광을 운영하는 돈으로 사는 두 가족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와 사랑이 중요한 문제다. 그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단순히 피도 눈물도 없는 착취자가 아니라 인간성과 동정심은 갖고 있는 존재들이라서, 그레구아르의 집으로 라 마외드가 굶주린 아이 둘을 데리고 음식과 돈을 구하러 갔을 때 기꺼이 구호 물품을 내어준다. 단지 그것이 당장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돈이 아니라 옷이라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정도로 탄광촌 사람들의 삶에 대한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하루 노동으로 하루치 빵값을 충당하기 힘든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할 수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외부자로서의 반감을 품고 있던 에티엔은 무정부주의자인 수바린과 교류하면서 그 생각을 조금씩 더 키워간다. 당장 굶어 죽을 처지에 몰려 있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정하기로 한 데는 에티엔의 역할이 컸고, 그런 만큼 에티엔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에티엔의 허영심을 보여주는 것은 다면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보여서, 이 소설이 더 복합적이며 덜 계몽적으로 느껴진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불편할 점이 눈에 띄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샤리가 필로멘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 혼자 놀러 다니는 대목도 그렇고, 샤발이 카트린을 강제로 취하는 장면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거슬리지만, 그것이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한다면 납득할 만하다. 1권은 파업이 격화되는 장면에서 끝나서, 이제 어떤 식으로 절정과 결말에 도달할지 2권이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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