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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가장 편안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한강 작가의 작품

by 초콜릿책방지기

한강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검은 사슴』과 『바람이 분다, 가라』의 사이에 있으면서 두 작품 모두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다.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소설적 기법인 실종된 사람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방식이 동일한 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장운형은 『검은 사슴』의 사진작가 장종욱을 떠올리게 하고, 『바람이 분다, 가라』의 인주와 정희는 L과 E의 변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H라는 작가가 등장하는 단순한 액자식 구성이라서 상대적으로 더 쉽게 읽힌다.


주인공인 장운형은 석고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몸을 그대로 뜨는 작업을 하는 조각가다. 그의 작품은 ‘껍질 벗기’라는 제목으로 전시가 되었는데, 그 제목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갖는다. 프롤로그에서 조각가의 작품에 대해서 의미를 말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H라는 작가인데,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결국, 그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건 누더기 같은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의 컴컴한 공동(空洞)이었는지도 모른다.”(12) 그러고 나서 장운형이 쓴 “그녀의 차가운 손”이라는 제목의 본격적인 글이 이어지고, 그 글에서 껍데기 안의 공간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진실을 감추고 가면으로 철저히 가린 채 살아가던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라던 장운형은 그 이면의 모습을 보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 미지의 은폐물들을 상상할 때마다 내 어린 몸은 은밀히 떨려오곤 했다. 그것들을 보고 싶었다. 그것들을 감싼 아슬아슬한 껍질을 벗기고 싶었다. 내 눈으로 직접 꿰뚫어보고 싶었다.”(35) 자기 자신을 기만한다는 사실 자체를 자기 내면과 연결해서 이음새조차 깨끗하게 만든 아버지를 보면서 그 껍질을 벗겨서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 했지만, 죽은 외삼촌의 잘린 손가락을 보면서 진실이 불쌍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조숙한 깨달음을 얻은 장운형은 애정을 쓸쓸한 것으로 인식하며 한 번도 여자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식이라서 여성 혹은 남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남다르다.


“내가 남과 다르게 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모두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을 집요하게 의심했고, 남들이 모두 만족하는 것들에 만족하지 못했으며, 남들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보이고 들리고 냄새를 풍기고 만져지는 모든 것들의 안쪽을 꿰뚫어보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83)


그래서 장운형의 눈에 든 여자는 일반적으로 남들의 눈길을 끄는 여자보다는 L과 같은 거구의 여자다. 장운형은 상처로 가득한 L의 내면을 꿰뚫어보고 그녀를 품으면서, 자신의 일부가 떠돌다가 그녀의 거대한 살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L이 자기 분신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L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오빠가 욕망하는 몸이라서 거식증에 걸리고 만다. L의 손으로만 이루어진 장운형의 전시회가 ‘생사의 중간 지점을 건드리는 손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그녀의 내면이 반영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장운형이 만난 두 번째 여자인 E가 장운형에게서 라이프캐스팅을 제안받고 한 말은 뒤집힌 의미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네가 날 뜨고 싶다고 했을 때, 마치 내 가죽을 벗겨내고 싶다는 말처럼 들렸지. 네가 만든 껍데기들…… 지루하고 야비하더군. 그런데도 내가 허락한 건 왜였을까? 아마도 난 증명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내 껍데기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는 걸.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껍데기라면, 그게 껍데기인들 무슨 상관이겠어?”(302)


그것이 껍데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껍데기 자체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L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뜬 작품을 모두 파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넉넉하고 느렸던 몸이 장운형에게는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본인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였을 테니 말이다. 껍데기를 떼어내고 나서도 껍질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라면 석고로 뜨고 나서도 진실을 볼 수 없는 셈이고, 결국 텅 빈 껍데기만 남는다. 그렇게 비어 있는 그의 작품은 깨지기 쉬워서 마치 인간에 대한 상징으로도 읽힌다. 타인의 껍데기만 보던 장운형의 시선을 돌려서 스스로의 껍데기를 보게 만들었던 E의 손은 마침내 따뜻해진다. 이제 둘은 서로가 서로를 꺼내준 존재가 되는데, 그 사실을 발견한 순간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들이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모습을 H가 에필로그에서 마치 꿈처럼 보여준다.


사실 이 소설이 굳이 액자소설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데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H가 작가라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장운형의 동생인 장혜숙이 H에게 자신의 오빠가 쓴 글을 맡긴 이유는 그 의미를 충분히 알만한 유일한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삶과 예술의 복잡한 의미에 대해서 쉽게 재단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열고 닫아준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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