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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

우리에게로 이어진 신비한 이야기의 세계

by 초콜릿책방지기

“아주 먼 옛날이야기.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옛날 일이라면 없었던 일도 있었던 것으로 하고 들어야 한다. 알겠니?”

“응!”(34)


이 이야기의 출발은 옛날이야기라면 진위를 의심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는 전제에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그 이야기를 믿고 있지만 듣는 사람이 믿어줄지는 알 수 없다는 전제도 깔려 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가 듣는 사람에게 ‘있을 만한 이야기’로 들릴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청자의 믿음을 강요한 상태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소설도 허구의 이야기라는 걸 독자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사실을 전제한 상태에서 독자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럴듯한가 아닌가에 따라서 이야기의 진위를 판단한다.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가 말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더 중요하다. 말이 되고 되지 않고는 현실에서 있을 법하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상상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고 믿게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성패가 달려있다. 현실은 계속 변하고, 산업혁명 이후로는 어쩐지 가속도를 더해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형되어 왔다. 옛날이야기가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고, 황당무계한 것이 되어버린 것은 어쩌면 가속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할머니는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강요해야만 손자가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골짜기 마을’의 창건 신화인데, 예상대로 기상천외한 인물들과 신비로운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M/T라는 알파벳으로 나타낸 영웅적 두 인물은 여족장, 여가장이라는 뜻을 가진 M과 재주 좋은 녀석이라는 뜻을 가진 T인데, 두 인물의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서 보면 영웅담과는 그리 어울리는 인물들이 아니다. M은 ‘오바’라고 불리는데 T인 ‘파괴자’의 아내이긴 하지만 원래는 형수였던 사람이다. ‘파괴자’는 원래 살던 성곽 마을의 무법자 중 하나였다는 걸 보면, ‘골짜기 마을’의 신화적 인물들은 영웅이라기보다는 평범하다 못해 조금 문제가 있는 인물들로 보인다. 그들이 만들어낸 ‘골짜기 마을’은 엄청난 악취를 물리치면서 일구어진 곳인 데다 ‘파괴자’를 비롯한 개척자들이 쉴 새 없는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 곳이다. 그들은 거인화되기도 했으며, 특히 ‘파괴자’는 불멸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불멸의 존재가 마을의 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엉덩이에 눈이 달린 ‘엉덩이눈’을 이용해서 ‘파괴자’를 독살하고 그의 살을 나눠 먹는다.


마을의 신화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인데, 화자는 그것을 이어가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대학 기숙사에서 만난 한 작가의 격려 덕분에 화자는 할머니의 이야기뿐 아니라 마을 원로들의 이야기를 수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골짜기 마을이 중앙 권력에 침입당했다가 물리친 이야기와 같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까지 알고 있지만 화자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까지는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화자에게 태어난 아들이 뇌수술을 하면서 전설의 인물이었던 T, 즉 가메이 메이스케처럼 뒤통수에 흉터를 갖게 되면서부터 자신에게 내려온 이야기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건 화자의 어머니가 화자에게 말해준 것과 같은 것이다.


“‘숲의 신비’라는 것은 숲속에 있고 가끔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될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강해지는 것 같았어요! ‘숲의 신비’는 이 토지에서 우리가 태어나 자라고 살다 죽는, 말하자면 근본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고 느꼈지요!”(356)


‘숲의 신비’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죽고 나면 혼이 되어서 다시 ‘숲의 신비’의 격려를 받으며 갓난아기의 몸으로 돌아가는 그 순환 속에서 살고 있어서 그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신화와 전설과 연결되어 있다는 그 사실, 그것이 화자의 아들인 이요르를 통해 증명된 것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소설은 믿을 만한 허구이며, 개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보편적 이야기라는 것이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이야기를 보편적 이야기로, 신화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힘이야말로 소설의 힘이라고 믿는데, 그런 힘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장애를 가진 아들의 존재 의미를 신화와 전설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발견해 내고 그것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믿어야만 하는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골짜기 마을의 사람들이 가혹한 세금을 걷는 중앙 권력에 대항하는 기백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권력과 위계 아래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보통 사람들의 연대와 보살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로까지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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