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책방을 열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책방에서 강연을 여는 것이었다. 당시에 유명인들을 초청해서 거의 매일 강연을 여는 것으로 유명한 책방도 있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강연을 자주 여는 것이 부러웠다. 책방을 연다면, 당연히 그런 문화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강연자들이 유명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관심사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유명인이나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은 사람들을 강연자로 모시는 것이 나의 주된 목표였다. 우리 이웃이거나 가깝게 볼 수 있는 친근한 사람들이지만, 일상을 치열하게 살고 있고 마음속에는 태양과 같은 열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이야기야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은 주변 사람들이 품고 있을 대단한 이야기들은 좀처럼 들을 수 없으니 그런 이야기를 책방에서 풀어내게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원대한 포부였지만 처음에는 아주 소박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실로, 모객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순진하고 순수한 유치원생 수준의 책방지기가 꿈꿀 수 있었던 꿈이었던 것이다.
유명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가진 기준으로는 이름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대략 누구인지 알고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 사람을 책방에 모신다면 모객에 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마이너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사람들의 강연은 감동과 깊이가 보장되어 있을 테지만 관심이 가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인생에 관심이 가야, 강연도 듣고 싶어질 텐데 너무 넘사벽이라고 느껴서 그런 것인지 유명인들의 인생 혹은 삶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알고 지내긴 하지만, 정말 그 사람의 내면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안다고 할 수 없는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궁금하다. 평범하게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 항상 궁금한데 그런 이야기들은 아니 에르노가 풀어내는 사생활 이야기보다 좀 더 가깝게, 재미있게 다가올 것 같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강연자로 세우는 것도, 강연 기획을 하는 것도, 모객을 하는 것도, 어느 하나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중에서 제일 큰 문제가 강연을 부탁해놓고 사람을 모으지 못하는 것이다. 몇 번의 도전과 낙심, 속 끓임이 지나가고 나니 더 이상 강연 같은 것은 진행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인지 혹은 내가 망각하기 쉬운 사람이어서인지, 한 두 달이 지나고 나니 고생했던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강연이 없어서 심심한 모드가 되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인연이 되었던 혹은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강연 부탁을 해서 7월에는 매주 금요일을 강연으로 채워 넣었다.
강연 포스터를 만들고(포스터를 만든다고 하면 처음에는 다들 재능이 많은 책방지기라고 놀라지만, 막상 포스터를 보고 나면 그 참을 수 없는 허접함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공지를 하고, 다시 모객활동을 시작하면서 또다시 깨닫는다. 나는 소박하다고 믿은 원대한 꿈을 또 꾸고 있었구나, 역시 나는 <실수하는 인간>이구나, 하고.
때로는 강연 생각 때문에 악몽을 꾸며 식은땀을 흘릴 때도 있지만(누가 보면 내가 직접 강의를 하는 줄 알겠다), 막상 강연이 시작되면 그 모든 괴로움을 다 잊을 만큼 나는 행복해진다. 이제껏 두 번 강연이 진행되었고 두 번의 강연 모두 내 괴로움을 초기화시킬만한 가치가 있었다. 앞으로 남은 두 번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유명하지 않아도, 그렇게나 열정적인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달엔 강연 일정을 전혀 만들지 않았다. 7월 한 달로 충분했으니까.
8월이 지나갈 즈음이면 분명히 다시 심심한 모드로 전환이 될 것이다. 내가 모드 전환에 능숙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주변에 있는 나의 타인들에게 관심이 많아서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반짝이는 이면이 어떤 모습인지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