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불안과 고통의 감각

by 초콜릿책방지기

이 소설집은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이 꾸는 악몽을 모아놓은 것이다. 악몽은 자는 동안 나타나기도 하지만 정신이 분열된 사람이라면 깨어있는 동안에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 자아가 분열된 상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존재의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불안정한 감정이 투영한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가끔은 환각과 환청을 경험할 수도 있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왜곡된 세상을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그런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부르거나 정신병자라고 부를 때도 있지만, 종종 그런 사람들 속에 번뜩이는 감각을 가진 예술가들이 숨어 있다.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고통을 느끼고 더 날카롭게 부조리한 세상을 지각하는 게 숙명인 사람들 말이다.


바바라 몰리나르는 그런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고 마르그리트 뒤라스도 비슷한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서, 바바라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걸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서 예술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양한 예술적 세계 속에서 이들이 속한 세계는 불안과 고통이 좀 더 날 것 그대로 드러낸 세계라고 생각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서문에서 “세상에 만연한 혼란 속에도 놀랍도록 일관된 게 있다며 그것은 다름 아닌 고통이다.”하고 언급한 대로 이 소설집에 실린 모든 단편의 화자들은 조금씩 다른 고통 속에 있고 그것이 소설집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일관성이기도 하다. 여기서 소설의 개연성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첫 단편인 「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에서도 여자가 비행기를 기다리는 행위 자체는 무의미한 행동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저 그 하루를 견뎌냈다는 사실이다.


“침대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늘어뜨린 채 여자는 시간에 자신을 맡겼다. 그녀가 잘 아는, 그러나 죽지 않기 위해서는 도망쳐야만 하는 이 죽은 시간 속에. 그럼에도 여자는 오늘 하루를 불평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또 생각했다. 내일은 다시 시작해야만 하고,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매일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잘 알았다.”(22)


「잘린 손」에서 손을 자르는 것도, 엑토르와 알프레도가 콩을 까는 것도, 엄지 동자가 나오는 것도 개연성은 없다. 그저 살 만하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상만 중요하다. 「머리 없는 남자」에서 머리 없던 남자가 머리가 생기고 나탈리가 갑자기 죽는 것도, 「와줘」에서 누군가 와달라고 해서 화자가 찾아간 호텔과 그곳에서 만나 꼽추도 그렇고, 「그리고 여섯 개의 장면들」의 각 장면인 낱장의 종이들, 간호사들, 시체와 시계, 움직이는 물건들, 불안, 자유도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야기의 상관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서 보이는 감정이 중요할 뿐이다.


불안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 그 감정을 이렇게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이 소설집이 의미이다. 그래서 불안에 대해 표현한 대목을 보면, “그것이 내 안에서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천천히 다가오고, 그것을 멈추려는 모든 노력이 헛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나의 마음, 나의 영혼, 나의 머릿속 전체를 잠식할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이성이 길을 잃게 될 심연을 팔 것이다. 내 절망에 허무는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리라. 나 자신이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80) 작가가 그 상태를 얼마나 잘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만날 약속」의 화자가 마침내 도달한 곳, 건물에 문도 없고 아무도 없는 곳을 헤매다가 결국 만나게 된 것은 악몽 끝에 도달한 자유, 즉 죽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의 집」의 화자는 마천루를 짓고 있지만 어쩐지 하나님과 예수를 연상시키는 인물들이 화자를 방해하고 화자는 결국 지상의 천국에는 도달할 것 같지 않다. 「짐승 우리」의 화자인 베르트는, 피에르와 잠시 행복을 맛보지만 피에르는 죽고 베르트는 보아뱀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침대」의 화자에게는 자신의 몸보다 작은 침대가 있고 누군가 나타나 나를 그 안에 가두고 분열된 나는 그 안에서 불타는 나를 본다. 「택시」의 화자는 철제 고리를 머리에 두른 택시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여러 사고를 목격하다 침대에 누워있게 되고 결국 기절해 버린다. 「스펀지」의 화자는 스펀지를 지구라고 생각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이고 결국 아내를 살해한다. 「행복」의 화자인 클라리스 드 카라테크는 60대의 나이에 처음으로 바닷가에 자기 집을 마련하고 행복에 겨워하다가 수영을 하기 위해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의 화자는 결박된 채 팔이 잘리고 눈도 멀게 되는데, 누군가 나를 풀어주어 자유를 얻게 되자마자 깨닫게 되는 사실은 “그 이후로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라는 것이다.


수록된 단편들의 화자는 제각기 다른데, 그것조차 작가의 분열된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들은 모두 지독한 악몽 속에 있고 그 상태를 견딘다. 그렇게 견디는 것이 삶일 수도 있다. 그런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게 이 소설집이다. 그래서 이 책을 모든 사람에게 권할 수는 없다. 혼자 있는 밤의 서늘함을 뼛속 깊이 아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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