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책방 이야기 5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문장 한 줄

by 초콜릿책방지기

1. 인테리어 - 상상력에 대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상력이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여버려서 자신의 일에는 상상력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리 예상을 해본다거나, 상대의 반응을 짐작해본다거나 하는 일도 모두 상상력과 결부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들이 모두 일상이 되어버려서 일부러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과정들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상상력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사실 처음 입사를 할 때나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을 해보게 될 때는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해 엄청난 기운을 쏟아서 상상을 해보기 마련이다. 처음 초콜릿 카페를 열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매일 밤마다 초콜릿을 만들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에게 서빙을 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모두 치밀하게(!) 상상해보았고, 다음날 실제로 일하면서 전날 밤 그렇게 치밀하게 상상했던 모든 것들이 무참히 깨지는 일들을 경험했었다. 상상이란 가슴 아프게도, 이렇게 종종 마구 깨져버리곤 한다.


인테리어를 하다 보면 자주 상상력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타일 한 장을 붙잡고, 이 타일로 벽면 전체를 붙였을 때 어떤 모습으로 완성이 될지 상상해보는 것이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인테리어에 조예가 깊거나 그쪽 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라면 얘기는 다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타일 한 장을 보고 그것으로 벽 전체를 채웠을 때도 역시 마음에 들 지 나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기술이 좋아져서 인테리어가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을 3D로 보여주는 곳도 있지만(사실 이런 건 주머니가 넉넉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화면상으로 보는 모습이 실제의 공간과는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어찌 되었든 모든 상상력을 다 동원하거나 쥐어짜 내서 그 공간을 채워야 한다.


초콜릿 책방의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하고 나서, 부족한 상상력을 한탄하다 보니 문득 백석 시인이 생각났다.


옛것의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투박한 듯한 시는 백석 시인의 세련되고 잘생긴 얼굴과 대비되어 그 매력이 배가 되었고, 시와 시인을 떼어놓지 못한 채 시에 빠져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정우성 좋아하듯 그렇게, 잘 생긴 남자 좋아합니다.) 담백하고 토속적인 그의 시들 가운데 가장 좋아했던 시 중 하나가 '흰 바람벽이 있어'였다.

시인은 흰 벽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그 벽을 쓸쓸한 이미지로 채운다. 그가 채우는 흰 바람벽은 내가 채워야 할 공간과는 물론 많이 다르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인테리어를 하는 동안 종종, 조바심과 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과 싸우면서 백석 시인을 떠올렸다.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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