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변화

by 경미의 글


쌍둥이가 여름 감기로 열이 펄펄 난다며 딸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내 딸들을 키울 때는 젊기도, 단호하기도 했었고, 휘둘리지도, 밀리지도 않았다. 소위 말 붙이기도 힘든 깍쟁이 같은 얼굴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희한하게 쌍둥이 녀석들은 내가 지네들 친구인 줄 아나보다. 수요일마다 만나서 밥 먹고 얘기하는 모임이 있건만 딸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쌍둥이가 걱정되어 늦게까지 못 놀고 딸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별 볼일 없는 내 식견으로 나는 약을 싫어하고 병원을 싫어한다. 제 발로 병원에 걸어 들어갔다가 못 나온 사람 중 한 명이 나의 아버지셨다. 나는 진정 얌전히 죽고 싶다. 내 본성이 어떤지도 몰랐건만 겁이 많나 보다. 힘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곡기를 끊은 뒤 보름 정도 후에 속 썪이지않고 얌전히 드라마처럼 픽하고 힘없이 쓰러져 죽고 싶다. 죽는다고 하면 죽 쑬 거 같으니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그렇게 돌아갈 수 있다면 죽는 게 무섭지 않을 것 같다. 어디로 돌아가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돌아가던지 사라지 던 지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도 나이가 많아졌구나 하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내가 아기 때부터 어른이셨던 어른분들이 거의 대부분 돌아가셨다. 어른이 된 후, 돌아가신 분들은 다들 병원 안에서 돌아가신다. 살려고 들어간 건지 죽으려고 들어간 건지 모르겠다. 병원에 가신 뒤, 시아버님이 가셨고 그다음 아버지가 가셨고, 엄마랑 베프인 다섯째 이모가 떠나시고 이모부가 가시고, 큰아버지가 가시고 여섯째 이모도 가시고 아기 때부터 보아온 '나의 어른들'이 다들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내가 아는 어른 중 남은이가 몇이나 될까? 나는 고모부랑 격 없이 얘기하는 사이다. 고모부는 치매가 와버린 고모를 돌보는 게 점점 힘에 부치시나 보다. 하루는 나더러 봉사 다니는 요양원이 어떻냐며 물으신다.


요양원이란 단어를 들으니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갔을 때 아무도 문병을 안와 울분을 터뜨렸던 기억으로 이어진다. 큰 집과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맞냐며, 고모가 병원에 있는데 내가 한 번도 안 가보면 서운하지 않겠냐며 왈왈 댔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말년을 치매로 고생한 우리 엄마는 누가 오더라도 누군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쨌든 나의 울분 섞인 전화로 인해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다녀간 후에야 조카년의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나는 속으로 당신들이 무슨 어른이냐며 속으로 욕을 실컷 해댔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큰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꽁해서 가지 않았다. 막냇동생이 사촌 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같이 가자고 하니, 못 이기는 척 병문안을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하필 그 날, 큰아버지 곁에 낯선 간병인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막상 얼굴을 뵈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큰아버지.."라고 하니 수척한 얼굴로 손을 꼭 잡으셨다. 딱히 할 말도 없다. 그냥 손을 잡고 조금 앉아 있다가 "그만 가볼게요."라고 말하니 큰아버지는 "또 올 거지?" 하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인사 차 한 번만 가면 된다고 여겼다. 우리 엄마한테도 자발적으로 와본 게 아니고 내가 생 난리 쳐서 한번 왔었으니, 나도 딱 한 번 오면 맞는 거다.라고 여겼는데, 큰아 아버지의 '또 올 거지?' 그 한마디에 눈물이 팍 터진다. "그럼요, 또 올게요."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이 채 가기도 전에 큰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다. 큰아버지는 메모의 달인이었다. 병원에 계시면서도 다녀간 사람들을 전부 메모해놨다. 언제 왔다 갔는지, 봉투에 얼마를 넣었는지, 얼마큼 있다 갔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등등 나중에 오빠들이 누가 언제 다녀갔는지 빈손으로 왔는지, 음료수 한 박스 들고 왔는지 봉투에 얼마 넣었는지 다 써놨다고 말해서 장례식장에서 빵 터지게 웃었다. 두 번 다녀온 척할 수도 없다.


그렇게 다들 떠나고 있다. 떠나고 어디론가 돌아가는 건 겁이 안 나는데 누워서 천장만 보는 건 생각만으로도 너무도 끔찍하다. 혼자 살고 계신 친척 어르신도 요즘 전화가 통 안된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굳이 알아보려 하진 않는다. 알면 어쩔 건가? 요양원 아니면 병원 중환자실이겠지, 옆엔 간병인이 있겠지, 자식과 돈문제로 사이도 엄청 나쁜데 중간에 얼치기로 끼기 싫다. 인정이 넘쳐 직접 몸으로 가서 살을 부딪치며 공양을 드리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아픈 사람을 보며 같이 힘든 게 나도 아파오는 듯 진이 빠져나가고 힘들어 싫다.


쌍둥이가 열이 높고 아프다는 말을 듣고 딸네 집에 가는 길에 과일 가게에 들러 흐물흐물 껍질이 벗겨지는 황도를 한 박스 사서 봉지에 담아가지고 간다. 도착하자마자 상을 펴고 부지런히 깎아서 입에 쏙쏙 넣어 먹였다. 깍두기처럼 썰어서 손으로 집어서 입으로 폭폭 넣어줘도 홀랑홀랑 받아먹는다. 사 가지고 간 보람 있게 네다섯 개를 흐물흐물하게 받아먹고는 그만 먹겠다고 한다. "그래 그만 먹어도 돼, 내일 열 나갈 거야. 이제 화장실 한 번 갔다오고 잠 잘자면 내일부터 괜찮아져." 하며 가짜 의사행세를 했다. 곧 사위가 오고 두 아들이 버선발로 뛰어나가 아빠 왔냐며 서로 안아준다. 내가 만든 내 집엔 없던 정겹고 서양스런 풍경이다. 아빠와 아들이 서로 살을 맞대고 뺨을 비비고 머리를 쓸어주며, 좁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허리를 숙이며 말을 나누며 가방을 들고 거실로 세명이 들어온다. 작은놈은 주방으로 마셨던 텀블러를 두려고 가는 사위를 따라가며 "그런데 아빠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하고 묻는다. 시계를 살짝 보니 아홉 시가 조금 넘었다. 속으로 '이게 뭐가 늦은 거니? 술 마시는 아빠들을 네가 몰라서 그렇지 매일 12시여.' 하며 모른 체 듣는다. 남편 들어오는 소리에도 안방 침대에 누워있던 딸이 큰 소리로 오빠 나 약 좀 달라하니 사위가 "뭐 좀 먹었어?"라고 다정하게 말하며 물과 약을 떠받치고 들어간다. 젠장, 부러워지려고 한다. 우리 시대도 그런 남자는 많았는데 유독 안 그런 진짜 사나이 만나서 고생만 직 싸게 하고 시간 다 흘러갔다며 속으로 억울해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할머니 가겠다고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말한다. 사위가 "어머니 가시겠어요? 모셔다 드릴까요?" 하길래 아냐 오늘 모임 있었는데 애들 아프다고 해서 팽개치고 택시 타고 왔어, 사위도 피곤할 텐데 얼른 쉬어하며 집을 나선다. 딸이 할머니 택시 타는 데까지 배웅하라고 멋지게 장군처럼 두 아들에게 명령한다. 쌍둥이가 내 양쪽에서 손을 꼭 잡고 걷다가 아파트 입구로 자동차 불빛이 환하게 비추자 위험하다며 옆으로 쓱 잡아당긴다. 마치, 레이디 퍼스트같이. 여자들은 이런 거에 훅 마음이 간다. 나이가 먹어도 할머니가 됐어도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 이건만 드레스를 입은 공주처럼 연약한 체 하며 사뿐히 옆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파트 입구에서 집으로 들어가라 하고 쌍둥이들을 보낸다. "안녕!" 하며 돌아서서 손을 흔드는 여장부 같은 멋진 모습 뒤에 아직 야리야리함이 남아있나 보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며 손주들을 보살피고 오는데 내가 보살핌을 받은 듯 밤공기가 기분 좋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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