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는 못 불러 보는 말

by 경미의 글

"엄마!"

문밖에서부터 우렁차게 불러대던 내 집이 어딘가에 있었다. 내 엄마가 있었고 나는 딸이었던 적이 있었다. 백 없는 사람의 빽. 그녀들의 이름, 엄마. 맘껏 말하고 실컷 떠들고 엄마가 해준 뜨거운 밥 한 그릇 공주처럼 냠냠 먹고 다시 되돌아와서 속에 꽉 찬 거 비워내고 가벼워져서 새로 산다.


이제 나에게 젊은 엄마든 늙은 엄마 든 침상에만 누워있는 엄마 든 치매 걸려 나를 못 알아보는 엄마든 엄마는 없다. 엄마라고 부르기만 해도 눈가가 찌르르해진다. 누구나 언젠가 혼자가 된다. 엄마가 있을 때 나는 든든했었다. 끝없이 내 걱정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제 내 걱정은 나 혼자 해야 한다. 털어놓고 맘껏 욕해도 맞장구 쳐주다가 달래주다가 다시 마음을 제자리로 끼어넣어줄 누구도 이 세상에 없다. 엄마하고 호기롭게 불러 젖히며 문을 열고 아무 때나 약속 없이 무턱대고 가도 무조건 반갑게 맞아주는 곳은 그 어디도 없다. 치대기만 하고 종알종알 내 말만 하고 내 걱정만 하라고 하고 엄마 말은 들은 게 없다. 엄마 걱정이 뭐였는지도 들은 적이 없다. 엄마가 이미자 쇼를 이모랑 간다고 했을 때 좀 웃었다. 엄마는 집에서 우리들 뒷바라지만 해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입고 싶은 것도 그 정도면 되는 줄았았다. 오늘은 괜히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 엄마가 보고 싶어 진다. 나이가 육십이 넘었는데도 "엄마 글쎄 애들이 오늘 나한테 그러는 거야." 하며 일러바치고 싶다. 그러면 엄마가 어떻게 할지 눈에 선하다. "아이고 그것들 너무 잘해줘서 지엄마 힘든 줄 몰라, 그래도 자기들도 툴툴댈 데가 있어야 되니까 받아줘라. 어쩌겠니? 어이구, 얼마나 엄마가 소중한지를 모르고 여기 누워 누워 좀 쉬어 쉬어." 할 거다. 내 집에서는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라면 한 그릇도 누가 끓여주지 않는다.


엄마가 일어서고 앉기가 불편해지니 그때부터는 앉아있기 미안해서 옆에서 말로 거들며 잔 심부름하다가 다시 또 어느 순간 손도 느려지고 행동도 느려지니 그나마도 받아먹는 게 완전히 힘들어졌다. 무릎 수술 후부터 모든 게 꼬이기 시작해서 기억까지 헷갈려하니 그때부터는 받아먹기는커녕 내가 엄마에게 먹여줘야 하는 시간이 왔다. 엄마가 먹는 걸 건너뛰면서 노인의 건강이 순식간에 나빠지기 시작했다. 먹을 반찬을 만들어 일회용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놓고 다음에 가서 개수를 헤아려보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가서 돈 주고 사 먹은 것도 아니고 장을 봐 와서 해 먹은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드신게 없다. 이렇게 연속으로 끼니를 거르다 보면, 배고픈 것도 잃어버리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엄마는 침묵과 어둠의 세상으로 들어가서는 다시는 밝은 세상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엄마가 깊고 깊은 우물 속 같은 삶 속으로 들어간 뒤, '편한 딸' 노릇도 끝나버렸다.


밥하는 것을 잃어버린 집은 썰렁하다. 먹을게 하나도 없는 부엌은 싸늘하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던 부엌은 먼지만 켜켜이 쌓여가고 좋은 말로 보듬어주고 자식만 위하던 엄마가 말을 잃고 침묵 속으로 잠긴 집은 적막했다. 그렇게 몇십 년간 까딱없던 엄마가 사라져 갔다. 첫 번째는 무릎 수술로, 두 번째는 밥 안 먹기로, 세 번째는 동문서답으로, 네 번째는 물어보는 거 싫어하기로, 다섯 번째는 기억이 움푹움푹 사라지는 걸로. 그렇게 엄마가 발로 손으로 머리로 입으로 하나씩 자꾸만 없어져 가고 잊혀갔다.


그러다 어느 날은 집을 못 찾고 어느 날은 대문의 번호키 번호를 자꾸 잊어서 열쇠 키로 바꿔도, 열쇠를 어디다 놨는지 기억 못 하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또 어느 날은, 은행에 가서 통장 확인을 또 하고 또 해서 내가 엄마와 은행에 가니 직원이 자기 좀 보자며 엄마가 이상하신 거 같다고 조심스레 얘기한다. 이런 일은 자식보다도 남들이 먼저 안다. 자식에게 알려주고 싶어도 알릴 수가 없어 연락을 못할 뿐이지 자기들끼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직원에게 엄마 얘기를 들으며 머리 위로 돌이 내려치는 것 같았다. 큰돈을 갖고 있진 않지만 아버지 연금이 매달 입금되고 작은집이라도 월세가 조금씩 들어오는 계좌다. 돈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수시로 은행에 가서 이상하다고 하니 직원들이 요주의 인물로 올려놓는 거다. 은행 직원과 세입자와 집 앞 슈퍼 아줌마와 요구르트 아줌마는 먼저 다 알고 있었다. 맨 나중에야 자식이 안다. 그 정도로 생판남들인 동네 사람들보다 적게 만나는 게 자식이고 늦게 아는 게 자식이다. 엄마는 두 번째로 집을 잃어버리고 요양원으로 가셨다. 같이 살 사람이 세상천지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요양원 일층은 호텔 로비처럼 쾌적해 보였지만 엄마는 일층이 아니라 이층에 자리를 받았고 이층에는 전부 지체 장애자이거나 중증치매환자였다. 엄마는 요양원에 간 뒤로 외모도 변해갔다. 드시는 약 종류 때문인지 머리도 못 들고 어깨도 구부러졌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간들이다. 그런 엄마를 보는 것도 고통이다. 아버지 아프실 때 혼자 다 보살피던 무쇠 같고 황소 같던 건강한 엄마였었건만, 어렸을 적 우량아 선발대회에 나가서 대표로 상을 받던 건강한 아이였다고 자랑하던 엄마였건만 말이다.



치매에 걸려서 다 잊어버린 엄마를 만나서 얘기하고 걷고 밥 먹는 일은 쓸쓸함이 한없이 몰려오는 일이다. 나는 그런 시절의 엄마를 그리워하진 않는다. 건강했던 시절에 활동적이던 엄마를 그리워한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식에게 모두 주고 이 세상을 떠난다. 옛날 엄마들은 손때 묻은 물건이나 가락지로 마음을 전했고, 지금 세대의 엄마들은 갖고 있는 현금과 집으로 전한다. 단지 종이에 이름이 바뀔 뿐이지만 평생 그걸 위해 살아온 듯 꼭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 종이 위에 이름 석자다. 종이에 이름 석자가 있는 엄마들과 종이에 이름 없는 엄마는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 엄마인가? 무엇인가 남겨 줄 명의가 있으면 좋은 엄마고 명의가 없으면 나쁘고 못난 엄마인가? 돈이 레이저 광선처럼 눈을 찌르듯 환하니 그 강렬함으로 다른 모든 것들은 묻혀버린다. 나 역시도 이제 나이 들어가는 엄마 노릇만 남았다.


딸과 투덜투덜 다퉈가며 좋은 엄마 노릇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잘한 게 뭔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건만 나도 쉽지 않았고, 힘들었었다. 엊그제도 아들 둘을 서울대에 보냈다는 얌전하고 상냥한 엄마를 만나서 기가 확 꺾였다. 수많은 잘나고 멋진 엄마들 속에서 엄마는 소리만 지르고 야단만 친다고, 누구네 엄마는 뭘 해줬고 뭘 받았다는 얘기를 흘리 듯한다. 내 능력 이상으로 애쓴 시간들이지만, 잘해줬다는 얘기는 못 들을 거 같은 어버이날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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