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에 부적

by 경미의 글

내겐 반짝이는 보물이 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내 곁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하지만 그 빛도 시간이 지나면서 먼지도 타고 때도 타고 깎이기도 하고 눌리고, 찌그러 지기도 하며, 세상 속에서 언젠간 빛을 잃어 갈지도 모른다.


꼭 반짝여야만 좋은 건 아니니 상관하지도 걱정하지도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보석들도 어느새 아홉 살 초등학생이 됐다. 그러나 아직은 할머니가 주는 사랑을 거절하지 않는다. 할머니를 좋아라 하고 할머니랑 손잡고 나가는 것도 좋아하며 양쪽 손을 꼭 잡는다. 볼에다 뽀뽀하는 건 초등학생 답지 못하다고 여기는지 아니면 아기 같은 행동이라고 여기는지 그전 같지 않고 시늉만 한다. 하지만 내 작은 소원은 평생 손주의 볼뽀뽀를 받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늙어서 의자에만 앉아있더라도 다 큰 손주가 집에 들러서 볼에 입 맞춰주면 어느 면에서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시집살이에 지치고 얽매여서 늘 힘이 들었고, 웃을 틈 없이 내 아이들에게는 엄하고 무서웠으나 손주에게는 야리야리한 내 본성이 꾸밈없이 나온다. 내가 뭐 잘났다고 누굴 가르치나 하는 본마음이 나오고 내가 뭘 안다고 니들에게 감 놔라 대추 놔라 하겠냐며 지들 부모가 가르치면 될 일인데 내가 왜 나서서 인심을 잃겠냐는 계산도 나온다.



쌍둥이가 태어날 무렵 나는 54살이었다. 내 또래에서 제일 먼저 할머니가 됐다. 모든 모임에서 놀림반 어이없음반의 축하인사를 받았지만 진정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에구, 저 여자 이젠 꼼짝달싹 못하는 시절이 왔군.' 딱한 마음을 가지고 나를 대할 수도 있다. 친한 언니 하나는 아들이 쌍둥이 임신소식을 알리고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자 여태껏 힘들다가 한 숨 돌리나 했더니 새로 닥쳐올 육아의 속박에 자기 신세가 너무 원통해서 소주를 마시며 울었다고 지난 일을 얘기한다. 언니의 아들은 이 일화를 가지고 아직도 자기를 놀린다고 했다.


"얘들아, 그때 할머니가 니들 키워야 된다는 생각에 이제부터 꼼짝도 못 한다고 술 마시며 울었단다."하며 말이다."


나 역시 너무 일찍 할머니가 되어 모든 게 어색하고, 어떤 게 할머니 노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할머니로 데뷔했다. 집 근처 아산병원에서 손주가 탄생했고, 병원에 가서 몇 초 만남으로 첫 상봉을 시작했다. 내가 뭘 알았겠나? 그동안 딸 노릇 엄마 노릇만 했지, 할머니는 처음인데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아이를 낳은 뒤, 엄마가 오셔서 했던 것처럼 아기의 손과 발을 꺼내서 손가락을 펴보고 발가락을 만져보며 할머니스러움을 연출했다.


병원에서는 누구나 유리 창밖에서 까꿍까꿍만 해야 한다. 안아보지도 못하고 밖에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보기만 한다. 사실 어느 애가 우리 애인 지도 잘 모르겠다. 혹시라도 손주가 뒤바뀌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속으로 했다. 바뀐다 해도 알 수도 없지 않나 하는 불안감과 의심도 생긴다. '설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하며 세상은 늘 발 전하는 쪽이 정답이니, 반박은 구닥다리나 꼰대나 하는 거라고 불안한 마음을 억눌렀다. 핸드폰으로 아기 얼굴을 찍으며 안도감을 갖는다.


딸은 병원에서 퇴원하고, 곧장 산후조리원으로 갔다. 산후조리원은 면회도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새로운 세대에 맞춰진 새로운 방식. 요즘 세대의 출산과 육아는 돈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준다. 아예 그런 산업이 생겨나서 시대에 흐름을 성업 중이다. 친정엄마의 서투른 도움보다, 시부모님의 불편한 간섭보단 체계적이고 위생적이며 합리적이라는 인식을 주며 안심을 주는 모양이다. 굳이 친정엄마에게 미안해하며 폐 끼치지 않아도 된다는 당당함까지도 주는 곳이다. 더불어 친정엄마의 도움과 수고가 큰 비중으로 여겨지지 않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다. 딸이 아기를 낳고도 엄마가 없으면 서럽고 서글펐을 일이 산후조리원이라는 사업체의 도움으로 가뿐하게 대체되는 시대가 왔다.



소중한 손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손에 바로 내주는 게 더 나은 거라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남이 우리 아기를 주물럭주물럭하는 게 안심이 안되기도 하지만 경험도 없고 자신도 없는 친정엄마 역시 안심이 되는 현실이니 뭐라고 할 건가? 한세 대전에는 온통 세상의 친정엄마가 국 끓여 대고 아기 목욕시키고 온갖 뒤치다거리에 아기 보러 오는 친척 맞이에 하루 종일이 종종걸음에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는 시대의 저쪽 편으로, 저절로 사라졌다. 산후조리원에서 삼주 정도 머물다가 집으로 와서는 바로 산후도우미가 온다. 산후도우미와 친정 엄마가 함께 하기엔 많은 역할이 중첩되고, 괜히 정신만 사납다 싶어 때마다 먹는 일도 품이 많이 들기에 나는 주로 음식만 해다 주고 빠져 주었다.


산후도우미는 아기 목욕과 산모 미역국을 전담한다.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고 나와서인지 아기 목욕이 서툴고 떨리는 내게는 구원투수 같기도 하다. 그들은 아기들이 어느 정도 커서 목욕시키기에 체중이 붙어서 손목에 무리가 오는 시점에서는 다른 집으로 이동하는 룰이 정해져 있는 듯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도우미 여사님을 구해야 한다. 나는 그 전부터 안면이 있는 동네 아주머니를 구해서 부탁을 했다. 청소나 빨래 정도야 나도 해줄 수는 있으나 어쩐지 딸 집에 가서 청소나 빨래를 하는 게 나에게도 딸에게도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쌍둥이라 도움의 손길이 꼭 필요하기도 했다.



도우미 아줌마가 와서 청소, 목욕, 빨래를 해주고 나는 반찬을 나르고 아기 한 명을 데려다 봐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어두운 얼굴로 도우미 아줌마를 안 쓰겠다고 말한다. 나는 너 혼자 쌍둥이 봐가며 살림 못 한다고 말렸지만 어쩐 일인지 딸은 단호하게 자기가 보겠노라며 거절한다. 청소랑 빨래와 아기 목욕은 사위가 퇴근하고 돌아온 뒤 하면 되고, 엄마랑 동생들이 잠깐씩 애기를 봐주면 된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딸이 쌍둥이를 배에 품고 있을 때부터 태어나면 도와줄 생각으로 내 집 옆에 방 세 개짜리 빌라를 하나 마련해 두었다. 길을 한 번이라도 건너면 매번 불편해서 안된다는 생각에 집 옆에 맞춤형으로 구입한 것이다. 그 뒤로부터 딸은 자동으로 내 곁에 살게 되었다. 다행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어찌 생각하면 친정에서 멀고도 먼 상암동에서 그냥 살게 내버려두었으면 현실적으로 철이 빡 들었을 텐데 내가 지레 겁먹고 대처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겪어보지도 않고 미리 앞장서서 나섰다는 생각은 딸이 남처럼 무심하게 여겨질 때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다. 결혼은 했으나 네 명의 식구로 완전체를 이루어 연어처럼 집 곁으로 돌아왔다. 사실상 스스로 돌아온 게 아니라 내가 돌아오게끔 일을 만든 거다.


딸이 혼자서 쌍둥이를 보겠다고 선언한 뒤 공동육아가 시작됐다. 오히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생각보다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았다. 쌍둥이 중 하나는 번갈아 우리 집으로 오다가 어느 날 딸이 미국에 갈 일이 생겨서 내게 의논했다. 둘 중에 하나를 데리고 갈 테니 하나를 엄마가 봐달라고 했다. 누구를 데리고 갈 것인가부터 결정해야 한다. 손주 둘을 다 보기엔 나 역시 역부족이라 둘 다 두고 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딸은 며칠을 고민하더니 좀 더 잘 걷는 형을 데리고 가고 아직 떠뜸떠뜸걷는 동생을 내게 맡기고 가기로 했다. 나는 아직도 가끔씩 그날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작은 애를 잠시 올케에게 맡기고 공항버스를 타고 큰 쌍둥이 그리고 딸과 내가 공항으로 향했다. 딸은 지가 청춘을 살다온 미국에 가는 게 너무 들뜬 듯했다. 철없는 딸과는 달리 나는 착잡했다. 한편으로는 올케에게 맡기고 온 작은 쌍둥이도 걱정이 됐고 말이다. 큰 쌍둥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벙실벙실 웃으며 색다른 나들이를 좋아하는 듯했다. 모든 아기들이 그렇게 어른들의 필요에 의해 황당한 일을 겪지만 다행히 아주 어렸을 적 일은 기억에 잘 안 남는다는 이점이 있다. 기억에 남으면 따질지도 모른다. 나도 내 아이들 키우면서 무수히 그랬지 않았겠는가? 무슨 캠프 무슨 캠프 낯선 곳으로 극성스레 보내면 서말이다. 애들에게 좋은 경험시켜준다고 말이다. 내 딸 세명을 키울 땐 강했던 마음이 손주 앞에서는 한없이 여려진다.



출국장에서 딸과 손주를 들여보내니 떠나는 손주가 황당해할 것만 같은 마음에 나 혼자 눈물이 쏟아졌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딸 걱정은 뒤로하고 큰 쌍둥이 걱정에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일찍부터 세상 구경, 그것도 미국 구경시킨다는데.. 왜 나 혼자 미국 사람들 틈에서 낯설어할 쌍둥이가 걱정스러워 눈물이 쏟아진단 말인지 참으로 주책바가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올케에게 맡기고 온 작은 쌍둥이도 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라고 느낄 것 같았다. 도대체 엄마는 어디 간 거고 할머니는 어디 간 거고, 나랑 같이 놀던 그 친구는 어디 간 거지? 하며 그 작은 머리로 어이없어할 것 같은 생각에 발길이 급해졌다. 올케 집으로 가니 작은 쌍둥이가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올케가 전한다. "몇 시간 동안 저랑 잘 놀았는데 형님이 오시니까 뒤도 안 보고 냉정하게 떠뜸 떠듬 걸음으로 문으로 나가서 먼저 서있네요." 하며 웃는다.


아무튼 딸이 여행을 떠난 그 날부터 작은 쌍둥이는 나와 2주일 정도 같이 지냈다. 차에 카시트를 매달고 트렁크에 유모차를 싣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녔다. 낮에는 나들이하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며 정이 담뿍 들었다 말은 못 해도 알아듣기는 하겠지 하며 일일이 말해주고 설명해주고 재밌게 해 주려고 애를 썼다. 아마 미국에 제 엄마를 따라간 쌍둥이는 말은 못 하고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을 판이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 낯선 미국 사람들은 대체 누구? 했을 테지만 이젠 다 먼 옛날 얘기다.

어린 시절 말고 어느 시절에 손을 꼭 부여잡고 다니겠나 싶다. 엄마손, 아빠 손, 할머니 손, 할아버지 손, 이모 손을 꼭 잡고 다니던 어린 시절. 어른이 되어서도 두 손 안에 그 따스한 어린 시절의 온기가 남아있을 거라 여긴다. 두 손을 스스로 바라보며 누군가와 손 꼭 잡았던 그 시절을 떠올려주길 바라는 건 너무 큰 바람일까?


언제든지 자기의 두 손을 펴보며 손안에 깃들여있는 온기를 커다란 부적처럼 생각해주길 바라본다. '그래, 내 손안에 힘이 있어. 누군가와 꼭 잡았던 온기가 내게 흐르고 있어.' 하며 말이다.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젊은이들은 늘 다른 세상을 꿈꾼다. 어디를 가서 살던 두 손 안의 부적은 항상 펴 볼 수 있다. 오늘도 쌍둥이 손을 꼭 잡고 내 온기를 전한다. 마치 부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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