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점심이나 저녁을 누구와 어떻게 먹느냐를 정하는 일이다. 누구나 때가 되면 저 몸속 어디쯤 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이나 발 쪽은 아니고 배꼽 안쪽 어딘가에서부터 배고픈 느낌이 온다. 배가 아프다거나 쓰린 건 아니다. 먹을게 부족해서, 돈이 없어서 배가 고프게 놔두는 것도 아니다. 먹을 건 천지사방에 널리고 널렸다.
6.25 전쟁을 겪은 전후세대들이 쓴 글을 읽으면 못 먹어 굶어 죽고, 죽었다 깨나도 먹을 게 없어 물만 마시고, 들판에서 아무 풀때기나 뜯어서 삶아 먹고 그걸 먹고 배탈 이난 경험담. 닥치는 대로 먹는 이야기가 글 속에 참 많이도 쓰여있다. 읽을 때는 참 재미있고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 가엽기도, 웃기기도 하다. 실제로 내가 먹는 것도 아니고 내가 굶는 것도 아니고, 내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것도 아니라 단지 글로써 읽고 상상이나 해보는 정도니 '아이고 그런 시대에 태어났으면 큰일 날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읽는 것과 실제 경험과는 하늘과 땅처럼 메꿀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요즘 유튜브에 먹방이 대유행이다. 뭐든지 푸짐하게 차려놓고 보는 사람마저 배가 터질 것 같은 기분과 묘한 쾌감까지 들게 한다는 '먹방'. 혹은 맛집에 가서 먹는 걸 보여주고 맛에 대해 설명하며 방송을 하는 것도 유행이다. 혼자서 카메라와 얘기 나누며 먹다 보면 사람들과 함께 먹는 풍성한 기분이 드나 보다. 먹을 게 없어서 쪼달리던 시절과 완전 다른 이야긴데 비슷하게 여겨지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같이 먹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는 것과 어느 쪽이 더 나은 걸까? 같이 먹을 사람을 매 끼니마다 찾아야 한다는 게 또 다른 '궁핍의 시대'의 도래이다. 먹을게 궁핍할 때는 사람이 많고, 먹을게 흔할 때는 사람이 없는 건가?
밥상을 준비하고 만들고 차리고 먹고 하는 과정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재벌집이나 나 같은 서민이나 밥상 준비만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개 엄마가 제작자이자 연출자이자 온갖 잡일까지 도맡아 해야 한다. 나도 어느 순간 늘 생각 없이 하던 일이 정말 힘겨워졌다. 먹는 게 흔해서 먹는 일에 욕심을 내는 거 같진 않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얼굴만 보고도 정을 나누게 하고 싶어서 밥자리를 만든다. 하지만 모여 앉아 먹으며 말을 나누다 어느 해라던지 얼마라던지 숫자가 나오는 순간 뇌관이 몇 번 터진집들은 이미 어느 부분에서 누가 어느 대목에 수류탄을 던질지 예견하고 있다. 단지 오래 터지다 보니 터 진자리 또 터지고 그것도 하나의 연출처럼 흥미로워진다. '작년엔 이 부분에서 터졌는데.. 왜 올해는 잠잠하지 조금 더 기다려야 터질 건가?' 하는 찜찜함과 초조함이 몰려온다. 뭔가 마무리가 안 된 것 같고 터져야 할 불꽃이 안 터진 것 같다. 터질 건 터지고 큰소리 낼 건 내고 가야 하는 게 대부분의 화목하지만, 화목하지 않은 가족들의 모임이다. 같은 집에서 먹고 자던 시절을 떠나 각자 집에서 각자 알아서 먹고 자다가 어느 날 한 집에 모여서 밥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참나 그놈의 밥이 무어 람?' 아무 생각 없이 혼밥 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일 때도 있다.
어느 집은 자식이 너무 잘나서 문제이고, 어느 집은 아직 변변한 직업 하나 없고, 어느 집은 집값이 올랐고 어느 집은 내 집 마련은커녕 전세가 만료되면 이사 다니느라 바쁜 집도 있다. 또 어느 집은 부모로부터 혜택을 받고 어느 집은 혜택은커녕 대접도 못 받고 있다. 밥 먹으러 모이는 게 아니라 수류탄을 몸속에 숨기고 언제 던질까 하는 작전을 짜며 오는지도 모른다. 주로 수류탄은 밥 먹을 때 터진다. 터질 건 터져야 된다. 터질게 백발이나 장전돼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땐 기억력이 안 좋아서 말을 야무지게 못 할 것 같은 게 초전에 박살 나는 거보다 낫다. 따지려고 해도 기억이 정확치 않아 앞과 뒤가 바뀌고 내가 한 말과 상대가 한 말이 뒤바뀌고 시간대가 뒤바뀌어 조금이라도 각자 편을 들면서 네 편 내 편을 나눠 유치하게 싸움판이 벌어진다. 다 먹는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절친한 친구와 만나서 오늘 뭐 먹을까? 하면 점심메뉴를 걱정하는 직장인들처럼 생각이 안 떠오른다고 얘기한다. 정말이지 뭘 먹을지 생각이 안 난다. 황태 조림 먹을까? 하다가 야! 생선구이 어때? 하다가 아니야, 김치찜 먹을까? 하다가 아! 순두부 할까 하다가 그냥 지난번 그 집 가서 만 원짜리 백반 먹을까 하기도 한다. 실컷 떠들다 그냥 냉면 먹자고 한다. 야! 그냥 냉면 먹자 그게 제일 낫다고 제멋대로 결정해서 말한다. 친구는 흔쾌히 그래! 냉면 먹자! 한다. 일단 메뉴를 정하고 식당에 앉으면 큰 일을 해낸 것 마냥 성취감이 들기까지 한다. 둘 다 여고생 시절부터 떡볶이나 고무줄 냉면 먹으러 다니고 했기 때문에,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우리 어디 가서 와인 한잔할까? 라거나 잘하는 소고기집 어디 없나? 하는 이야기는 안 나눈다. 그렇지만 밥 먹으면서 밥만 먹을 수는 없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까? 국가 이야기? 정치인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돈 버는 이야기? 건강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돈 쓴 이야기? 다 먹으면서 하려고 생겨난 이야기보따리 같다. 요즘 들어서는 자식이 남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새로 추가된다. 남편 이야기는 이젠 서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이혼을 해야겠다는 둥 지금은 너무 늦었다는 둥 하다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집에서 나오지 말고 남편을 집에서 내보내자 라는 아침프로에서나 다룰 것 같은 부부상담 노하우를 서로가 서로에게 코치한다.
요즘은 혼밥 하지 않기 위해 매번 거대한 프로젝트를 짜듯 멤버를 짜야한다. 누구와 먹나? 어디서 먹나? 얼마짜리 먹나? 술도 곁들이나? 밥만 먹나? 모임인가? 개인 만남인가? 등등 결정해야 할게 끼니마다 한 두 개씩 꼭 생긴다. 그냥 시간 되면 집에 와서 저절로 뚝딱 차려주는 그런 세상으로 가고 싶다. 어릴 때부터 집을 떠나고 부모를 떠나고, 가족을 떠나 홀로 생활하는 바야흐로 1인 시대다. 청춘의 부푼 미래를 결정할 때 학교의 위상이나 취직을 위한 스펙 쌓기 따위를 생각하지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지 뭘 먹어야 하는지 이런 걸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배고픔의 신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혼자 살아보면 알게 된다. 혼자 여행을 다녀보면 먹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고 과제인지 알게 된다. 밥 먹을래? 하는 목소리가 안 들린다면 뭐 먹을래? 하고 물어봐주는 목소리가 안 들린다면 언제 먹을까 하는 소리가 안 들린다면 더욱더 먹는 것의 구속과 존재감이 조여 온다.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악화되어 집에만 계시며 하루 세 번 치가 떨리게 죽만 드시던 시어머니가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무죽, 녹두죽, 팥죽, 찹쌀 야채죽, 미역죽, 김치죽, 감자죽 등등. '죽'이라는 단어만 봐도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이 나라에 존재하는 죽이란 죽은 모두 섭렵하셨다. 나는 그걸 바라보며, 홀로 끝없이 죽을 먹는 게 인생이라니 다 쓸데없고 허무하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혼자 먹는 밥이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든다는 나만의 확고한 신념이 오늘도 동무를 찾아 나서게 만든다. 화창한 날씨와 밥 먹는 일과 떠나가는 것과 안녕이라는 말을 하는 것과 바삐 살다 보니 청춘이 다 지나간 것과 살긴 살았는데 기억이 명확한 게 하나도 없는 일을 헝겊 조각 모으듯 모으고 있다.
지금 한 박스 모아 졌다. 두 박스 모아 지면 다 꺼내서 빨강 파랑 조각보처럼 꿰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