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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 Apr 12. 2023

여름과 루비_박연준

독서기록 

아이들의 말들에서 인생이 보였다. 지켜주는 것, 사랑하는 것, 아픔을 나누며 위로하는 것, 성장하는 것읽는동안 아이들의 말들에서 많은 걸 반성한 어른이기도 했고 내 유년의 기억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순간순간 멈춰서기도 했다. 

아이라는 시간은 인생을 전혀 모르는 시절이 아님을 어른이라고 해서 인생을 다 아는 시절이 아닌데 어른들은 나이듦을 권력이라고 착각하고 아이들에게 남용한다. 그 비겁함을 따져보자니 부끄럽다. 어른의 민낯이 여름과 루비는 나와 같지 않길, 작은 말 한마디에도 아집과 이기심 대신 사려깊음과 배려가 있는 정직한 어른이 되었길 바라본다. 


*작가 박연준은 시인이어서 일까. 문장에 구슬을 꿰어놓았더라. 구슬들이 반짝이며 각기 다른 빛깔을 낼 때마다 내 마음도 그 구술 속에 녹아 들어가 같은 색으로 빛났다.





나의 말과 태도에 대해서 많은 생각(반성)을 하게 한 책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건 규율과 법칙이었다. 규율과 법칙, 그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숨거나 죽은 척하기. 아이에겐 퍽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누군가에 의해 자주 들어올려지고, 불려다녔다. 얼굴이 다 닳은 이파리처럼.


가족 구성원의 아량과 사랑을 모자처럼 쓰고 다니는 존재. 그 모자를 썼다는 것만으로 특별해지는 존재. 기대는 덜 받고 용서는 더 받는 존재가 막내였다. 


나는 생각을 실 삼아 눈물을 방울방울을 꿰어보려 했다. 말하자면 생각으로 슬픔을 정돈해 보려던 거다. 


밀려난 말은 밀려나는 속도에 되밀려 일어서지 못했다. 태어나지 못한 말을 태어날 기력이 없었던 거다. 긴 문장도 짧은 문장도 슬픔 앞에서 어렵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러나 나는 말을 몰랐다. 마음은 있으나 말이 가난할 때 할 수 있는 건 울기, 웃기, 넘기기, 돌아가기, 죽기, 숨기 등등. 내 경우엔 숨었다. 꺼병이처럼 숨었다. 


팔은 할머니가 나를 위해 펼치는 지느러미처럼 보였다. 나를 덮어주고도 남을 만큼 넓고 길어질 수 있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지느러미. 할머니는 찬장에서 숨겨둔 시리얼을 한줌 꺼내주거나 앙꼬가 든 작은 떡을 꺼내 주었다. 아무도 없을 때, 내게만 주었다. 키가 닿지 않는 찬장 위에 나만 아는 작은 집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순진함이, 그리고 좋은 어른 한명이 아이를 지킨다고 믿느다. 할머니는 나를 지키는 단 한명의 어른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내 두손을 얼굴로 가져가 마른세수를 했다. 늙어버린 게 나인 것 같았다. 


어른들이 들고 있으라고 주고 간 죄의식과 수치심, 그것을 서로 들어준다. 잠깐 동안, 들어준다는 건 잠시 놓여나게 해주는 일이다. 잠깐의 시간을 주는 거다. 


미간에 모이는 불편한 기억들. 


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주워먹고 자랐다. 


어른들은 자기가 한 말의 앞뒤 맥락을 생각해보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에게 한 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짓과 진실이 따로 없으며, 한 말을 잊고 안 한말을 했다고 믿는다. 어른들과 논리적인 대화를 하는 일을 정말로 어렵다. 


이 마음은 돌봄일까 사랑일까. 


어둠 속에서, 내가 홀로 언덕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뒷문에 서 있던 루비가 엎드린 내 언덕을 바라보다 천천히, 자기 언덕으로 돌아가는 풍경이 보였다. 


우리는 웃었다. 무엇도 이해하지 못한 채 터져나오는 웃음이었다. 크게 손을 흔들고, 전화하라는 말을 열 번도 더 하고, 견디기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오라고 말하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고 또하고, 웃다가, 우리는 돌아섰다. 각자의 집을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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